"아시죠? 파주에 사람 별로 없는거.
하루는 제가 파주 발령 후에 한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성인 남자 두명이 거기서 맥주마시고 있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발길을 돌렸어요.
근데 어느날은 거기에 킥보드 타는 아이랑 가족들이 앉아있는거에요.
신기하게 '안심'이 되는거에요.
제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들고요.
그래서 저는 결혼 안해도 싱글세 내려고요. 이게 가정의 사회적 순기능이구나 싶어서"
후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내몸의 긴장도도 낮아졌다.
생면부지의 지역에 가면 모두가 낯설다.
그리고 타인의 성별에 따라 나의 긴장도가 달라진다.
특히 여성에게는 본능적인 사회적 감수성이 탑재돼 있다.
그런데 타인의 구성형태에 따라서도 다를수 있겠구나 싶었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내 신경망 안에 '위험' 경보가 꺼진다.
그리고 '안심'의 그린라이트가 켜진다.
아주 직관적인 이야기다.
후배는 나와 한살차이.
학번으로는 같은 학번이다(현재는 없어진 '빠른' 제도 덕분에)
후배는 본인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의 개인주의적인 성향, 민폐를 주지도 받기도 싫어하는 깔끔한 성격,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 하는 세계관 등.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본인에게 맞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결혼은 재벌이랑 해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거렁뱅이랑 해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또한 현재 싱글로서의 삶이 만족스럽고 평화롭다면 굳이 리스크를 안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될 필요도 없으니.
그런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느낀 가정의 안정감.
그건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걸까.
그건 아마도 그녀도 가정의 구성원이었기에 유전적으로 느끼는 그무언가다.
누군가가 나를 케어해주고, 보호자로서 존재해줌으로써 얻었던 안정감.
특별한 의도나 이해타산 없이 전인적 지원과 지지를 받았던 경험.
그게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 담겨있는 베이직 노트note다.
현실적인 그녀 답게 그녀가 싱글의 삶을 유지할때 걱정되는게 딱 두가진데.
하나는 실버타운 할인가 문제고(부부의 경우 할인이 25% 된다고 한다)
하나는 아플 때 보호자가 없는 문제라고 한다.
우리는 둘다 웃었고, 곧 그제도마저 바뀔거라고 말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안전성에는 둘다 동의했다.
나 역시 동화속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을 믿지 않았고,
아이를 좋아하는 성향도 아니었지만,
분명 나에겐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찾아오는 '옥시토신 모먼트'들이 있다.
옥시토신 모먼트가 뭔가 하면,
아이가 아빠 등에 올라타서 깔깔대고, 까꿍놀이를 하며 뒤로 넘어가게 웃어대는 순간들이다.
옥시토신은 다름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안정감(유대감)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사람들간의 신뢰와 유대를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바로 이 옥시토신 모먼트들이 모여, 어떤 힘든순간이나 긴장되는 순간들을 극복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그 순간들을 눈에 담고, 귀에 담고, 마음에 꼭꼭 눌러담곤 한다.
물론 마음이 정말 잘 맞는 친구와의 유대관계로도 가능하다. 그녀 또한 동갑인 싱글의 회사동기와
아주 좋은 옥시토신 관계망을 갖고 있다.
내가정이 나뿐 아닌 누군가에게 옥시토신을 주는 기능을 할수 있다는 걸 대화를 통해 깨달으며,
왜 저출산 위기극복에 다함께 동참 해야하는지 하나의 이유를 찾은듯 하다.
비록 나는 기혼여성이고, 부모로서 저출산 위기 극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내가 1인 가구였으면 '왜?'라고 반문했을 것 같았기에.
보통의 부모들은 내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보여주고, 체험해주고싶어 한다.
그러려면 부모만의 능력으로 가능할까?
재벌도 불가능하다.
왜냐면 내가 그랬듯 내 아이도 가정밖의 관계망에서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와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으로 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 있는 지역은 보통 우범지역이 아니고, 유흥업소 등이 가까이 있지 않다.
후배가 아이가 있는 가정을 목격하며 안정감을 느낀건 이런 사회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에는, 내아이가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동기가 존재한다.
때문에 아이가 있는 세상의 환경과 아이가 없는 세상의 환경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30년 이상 '나'로서만 살아온 개인이 누군가의 부모가 되면서 변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아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되고
아이 앞에서 가급적 예쁜말만 쓰려고 하고
괜히 남에게 나쁜 소리 않고, 가급적 험한 일에 휘말리려 하지 않는다.
아이와 가정을 이루는 것이
부모인 나와 환경을 바뀌게 하는 위대한 동기가 되는 셈이다.
이게 후배가 말한 가정의 순기능일테다.
사회에서 경험하는 옥시토신 모먼트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긴장도는 떨어진다.
내가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일회용 사회가 아니라
나와 관계된 그 누군가가 살아갈 다회용 사회라면 현재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개선할 동기가 강화된다.
나는 그게 내가 하고 있는 개인사의 사회적 순기능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