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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필라테스

보수 BOSU 하세요!

by 카르멘

보수

01. 보전하여 지킴.

02. 건물이나 시설 따위의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침.

03. 고맙게 해 준 데 대하여 보답을 함.

04. 한쪽은 평평하고 반대쪽은 반구 형태로 볼록 튀어나온 운동도구.


내가 최근 보수한 것은? 4번.

BOSU는 Both Side Up의 약자로 양면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뜻.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그것은 당신이 서있는 기반을 흔드는 질문이 된다.

자, 당신이 보수볼 위에 서있다고 생각해 보자.

"눈을 감으세요. 5초 셉니다. "


우선 인지가 부정한다.

눈을 감으라고?

흔들릴 거 같은데?


"자, 이제 10초 셉니다."


인지가 의심한다.

5초도 힘든데, 버틸 수 있을까?

떨어지면 어떡해?


"자, 이제 15초 갑니다."


의식으로 넘어간다.

원래 흔들리는 거잖아?

자연스러운 일이야.


"자, 마지막 20초"


무의식으로 느낀다.

생각보다 별일 없네.

다리는 후들거려도. 이 정도면 평화지.

눈뜨고 돌부처처럼 모니터 앞에 붙어있는 것보단.


단순히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눈을 뜨고도 흔들리는 보수볼 위에서

눈을 감는 순간, 그 변화가 시작된다.


먼저, 두려움이 덮친다.

그리고, 조금씩 받아들인다.

그러고 나서, 균형과 불균형 사이에 자리 잡는다.

내 몸이, 내 인식이, 내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면, 그때부터 다시 공포와 불안이 덮쳐온다.


그냥 다리가 흔들리게 두면, 그제야 평화가 조금씩 스며든다.


흔들리면 어때? 어떻게 안 흔들려?

떨어져 봐야 매트 위.


그렇게 받아들이는 순간, 정말 눈을 감아서 편안한 상태가 된다.


눈 뜨고 눈 아픈 일들을 보는 게 더 내 몸에 해로운 일이니까.

눈감고 몸이 흔들리는 일이 내 몸에 이로운 일임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시각 능력은 눈을 통해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첫 관문이다.


자세조절(균형)에는 시각, 전정계, 고유감각의 통합작용이 필요한데

전정계는 귀에 있는 전정기관을 말하고, 고유감각은 근육, 관절, 인대 등에서 나오는 감각 정보로 몸의 각 부위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뇌가 인식하게 해주는 감각이다.

눈을 감고 한 발로 섰을 때 균형 잡기가 어려운 건,

시각 없이 전정계와 고유감각만으로 자세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

결국, 시각이 차단되면 균형 유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요가에는 드리시티(drishiti)라는 용어가 있다. 응시점이라는 말이다.
한 발로 몸을 버틸 때, 혹은 팔로 몸을 지탱할 때 등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 바라봐야 하는 응시점이다.
그 응시점은 본인만이 알고, 정하는 점이다.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아야 덜 흔들리고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다.

(드리시티는 내 브런치 주소로, 그만큼 드리시티를 중요시해서 쓴 글은 아래 참고

당신의 응시점)


보수볼은 그 훈련을 시켜준다. 시각을 차단하고 전정기관과 고유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준다.


두발을 땅 위에 딛고 서보자.

다리를 들거나, 보수볼 위에 올라서지 않아도 두 눈을 감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순간 흔들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흔들리는 보수볼 위에서라면?


사정없이 흔들린다.

내 사지가, 그리고 내 마음과 정신도.


필라테스는 그렇게 흔들림을 받아들이게 해 준다. 내 몸의 회복탄력성을 높여가며.


근육뿐 아닌 신경의 균형감각을 세워준다.

그렇게 나를 세운다.


삐끗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

흔들리는 모든 순간에.

흔들리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아니다.

그저 흔들림이 두렵지 않도록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서면 된다는 걸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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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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