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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잡으면 대충 흘러요

by 카르멘

"오늘 혼자 셔서, 친구분 아령까지 들어볼게요"


당첨됐다!

분명 같이 오기로 했던 필라테스 동기의 부재로 그룹레슨에서 개인레슨으로!


컨디션 난조, 날씨의 난조(?)로 유독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는데 역시 운수 좋은 날.


핑크빛 어여쁜 아령 두 개가 다소곳이 리포머 위에 놓여있었다.

"원래 두 분이 오시는 줄 알고 두 개 준비한 건데, 회원님 잘하시니까 친구분 꺼까지 들고 근성장

두 배 하고 가세요! 힘들지만, 무게가 있어야 성장이 더 되니까요~"


나도 모르게 미간은 찌푸려졌지만, 어차피 온 걸 어쩌겠는가, 기왕 온 거 성장하고 가야지.

이때 아니면 내 불쌍한 근육들은 성장할 순간이 없다.


리포머 위에 올라선다.

아령을 양손에 들고 귀옆으로 붙이고 내리며 하체는 런지 시작.


"팔의 수직운동이 전신의 관절과 근육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 줄 거예요"


제자리??

거울 속 내 몸엔 튀어나온 관절, 제자리를 잃은 근육은 보이지 않는데?




한 손에 쥔 작은 아령 하나. 그리고 그걸 천천히 들어 올리는 동작.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움직임이 ‘수직저항운동’이다.


팔근육은 이두, 삼두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만은 아니지 않은가. 운전대를 잡고, 문을 열고, 아이를 안고, 악수를 하고, 짐을 들고, 손을 흔들 때 모두 내 팔은 필요한 힘을 내야 하니까.


그리고 팔은 비단 팔의 힘만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팔을 들어 올릴 때 우리의 자세가 달라진다.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코어 근육과 등 근육이 함께 활성화된다. 척추를 바르게 세우는 근육도 함께 단련되기 마련.


그래서 팔에 아령을 들고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내 온몸의 근육의 정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새끼손가락 뭐해요? 새끼손가락까지 꽉 정성껏 아령을 쥐어야죠. 그래서 엄지로 검지 라킹(locking)하세요. 힘이 달라져요"


아령을 쥔 내 손가락을 처음 들여다봤다.

나는 내가 아령을 꽉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새끼손가락은 제대로 다 구부러지지 않은 채 아령에 걸치고만 있었다.


'아, 너 거기 그러고 있었니?'


미처 새끼손가락까지 인지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라킹? 엄지로 검지손가락 손톱을 눌렀다. 엄지로 검지를 잠근 거다.


사소한 그 라킹이 갑자기 내 손가락 관절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게 느껴졌다.


아, 이제야 내가 아령을 꽉 쥐었구나.

제대로 쥐었구나.

꼭 쥐었구나.


대충 잡으면, 대충 흐른다.

대충 보면, 대충 보인다.


내가 아령을 대충 봐서 아령을 잡은 내손도 대충 보였다. 새끼손가락까진 보지 못했다.


내가 아령을 대충 잡으니 내 손가락 관절부터 내 팔과 전신의 힘이 대충 흘렀다.

잠금장치 없는 신체는 중력에 저항하는 힘 없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나는 요새 종종 운전을 할 때도 핸들을 꽉 쥐어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운전할때 종종 핸들을 잡고있는데도 계기판에 '핸들을 잡으세요'라는 알림이 종종 뜬다...

그래서, 일부러 손가락 관절을 하나하나 폈다 굽히며 핸들을 움켜잡는다.

대충 잡으면 대충 흐르니까.


그 손가락 관절들의 제자리가 내 팔과 어깨 그리고 어깨 위 세워진 내정신의 제자리를 잡아준다.


‘내가 대충 잡고 있지 않다'는 그 감각을 살려

제자리를 잃어버리곤 하는 내 삶에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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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