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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계속 하실 건가요?

by 카르멘

"집필 계속 하실건가요?"


지난주 금요일, 편집장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전자도서, 오디오도서 등 정책지원사업에 운이 좋게도 내 첫 책이 선정 됐었는데 최근 사서 추천 도서로도 올랐다고 한다.


첫 계약을 한 출판사는 1인 출판사에 가깝다 보니 편집장님과 긴밀하고 솔직한 소통이 가능했다.

디자인부터 표지 색상(심지어 표지 사진은 셀카) 등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며 조율하다 보니,

첫 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 애정은 내 책의 판매량과 상관없다.

내 책의 판매량은 매주 문자로 온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도서판매부수를 알려주는 덕분.

(출판사에서 등록을 하고, 작가가 신청을 하면, 출간작가에게 문자로 판매량이 보고되는 시스템)


내 책은 출간 후 3개월 동안 150권 정도 팔렸다. 한 달에 평균 50권 정도가 팔린 셈이다.

내게 인세로 돌아오는 돈은 약 25만 원 정도다.


결론적으로 나는 전업작가로 절대 못 먹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이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기에 150권이나 팔렸다고 생각한다.

내 글이 나만의 사적인 이야기였다면, 남들이 돈을 내며 읽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거다.


솔직히 나 살기도 바쁜 세상 아닌가.

누구나의 삶 모두가 드라마가 아닌가.

남의 드라마가 내 드라마보다 특별히 특별할 이유도 없다.


결국 글이 책이 되고, 책이 판매가 되려면 내 삶의 이야기가 그 누군가의 삶을 대변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뜬금없지만, 올해 새롭게 맡게 된 업무 중 '양성평등' 업무가 있다.

어제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에도 다녀왔는데, 꽤 먼 거리라 오며 가며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최근의 통계자료를 살펴봤다.

<2025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비율 2024년 59%(2015년 47%)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경력단절여성 비율 2024년 23%( 2023년 25%)

맞벌이 가구 가사시간 2024년 여성 2시간 50분, 남성 59분.

사회인식면에서는 남녀 모두 '일 우선' 선호가 감소, '가정 우선' 선호 증가.


통계에서 나온 수치들을 대충만 훑어봐도 감이 온다.

우리 사회에 맞벌이 가정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

그게 내가 첫 책을 쓴 이유였다.

나는 내 개인의 삶을 살아가며 글을 썼지만, 그건 결국 우리 사회 구조와 인식의 한 조각이었던 거다.

이런 사회적 흐름에 맞아 내 책이 세상이 나왔을 거다.

아주 특별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줄 수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든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누군가가 읽고 싶은 글.

내가 써야 하는 글,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는 글.

써서 돈이 되는 글, 써도 돈이 안 되는 글.


그 사이의 교집합에 대해 고민한다.


작년 가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열심히 씨앗을 심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드니 가을 하늘이다.

아이유의 가을아침이 듣고 싶어지는 걸 보니, 분명 가을이 오고 있다.


새로운 계절, 씨앗을 심기 시작했던 그 계절이 다시 오고 있다.

편집장님의 한마디가 메아리처럼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집필 활동을 더 해보시는 게 어때요?"


거창하게 집필은 아니더라도, 글쓰기는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주 3회 브런치와 격주 1회 오마이뉴스 기고문.

하지만 어떤 책을 내기 위한, 글을 쓰고 있는진 모르겠다.


매년 이맘때쯤 돌아오는 브런치 대상 프로젝트 광고를 봤다.


새롭게 쓸 이야기가 내 속에 있을까.

세상에 내놓을 만한 글이 내 안에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쓰고, 꺼내보지 않는 한 말이다.

결국 그냥 써보고 꺼내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스테르담 작가님 말처럼 업세이를 쓸 수도 있다.

내 관점을 담은 직장인 에세이가 아마 가장 만만한(?) 영역일 것이다.


우리 남편은 돈 되는 글을 쓰라고 한다.

그러니까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웹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거 말이다.

OTT 시장에 판권이 팔려야 귀여운 인세 말고 멋있는 저작권료를 받는다고 말이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은 '본질'이나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고,

세상에 던져져 존재할 뿐이다.

내가 한 선택과 행동으로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본질을 가질지를 만들어 간다.


글도 마찬가지다.

일단 존재로서 쓴다.

나를 쓰다 보면 거기에 여러 갈래의 본질이 담긴다.

안 과장, 엄마, 여성이라는 본질.


<빽 없는 워킹맘의 육아 X직장 생존비책>은 안 과장, 엄마, 여성 세 가지 본질의 종합 버전이다.

<엄마의 유산 : 우주의 핵은 네 안에 있어>는 안 과장과 엄마라는 두 가지 본질의 합체 버전이다.


세 번째 책은 어떤 본질의 변형일까, 혹은 새로운 본질의 발굴일까.


쓰고 보니, 꽤 궁금하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말처럼, 매일 바람이 불어줄 수는 없을 거다.

그럴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 바람개비를 잡고 뛰는 방법뿐.


내 글이 모두 책이 될 수는 없을 거다.

그럴 때 책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쓰는 방법뿐이다.


결국, 내가 어떤 글을 쓸까를 고민하기 앞서 글을 계속해서 써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본질을 뛰어넘을, 글을 써야 할 존재의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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