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의 꿈> 출품후기
꿈은 써야, 비로소 살아난다.
듣도 보지도 못한 사자성어라고요?
네, 오늘 아침 제가 생각한 사자성어입니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모방을 좀 했습니다.
평상시 제가 자주 떠올리는 사자성어 '용불용설' 에서요.
용불용설(用不用說)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가 주장한 진화 이론이죠.
“기관이나 능력은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유명한 말이죠.
그렇게 변화된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개념.
기린의 목은 높은 나무 잎을 따먹으려고 자꾸 뻗다 보니 길어졌고, 그 형질이 후손에게 전해졌다고 하죠.
다만, 현대 진화론(자연선택설, 다윈 이후의 이론)에 따르면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얼마 전 아들이 펭귄에 관한 영상을 봤는지 저에게 말해주더라고요.
"엄마, 펭귄도 원래는 날았어. 수영하면서 못 난거야"
오? 새로운 사실이 흥미로워 찾아보니 정말이었습니다.
펭귄의 조상은 약 6천만 년 전쯤, 다른 새들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변하면서 바닷속에서 먹이를 잡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해졌죠.
물고기를 잡으려면 빠르고 오래 잠수해야 했고, 그러려면 날개는 하늘을 나는 구조보다 물을 젓는 구조가 더 효율적이었어요.
그렇게 수백만 년 동안 자연선택을 거치면서 펭귄의 날개는 비행 기능을 잃고,
대신 물갈퀴 같은 ‘오리발 날개’로 바뀐 거예요.
펭귄은 날개를 안 썼다기보다는, 다르게 쓴 사례인 거죠.
결국 날개는 나는 날개가 아닌, 헤엄치는 노의 형태로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이쯤 되니,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느 쪽인가?
우리 누구에게나 꿈이라는 날개가 있었죠.
저는 아나운서, 기자가 꿈이었습니다.
20대 때 치열했지만, 그 꿈이 실현되지는 못했죠.
그래서 저는 제 꿈의 날개가 퇴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날개가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글>을 씁니다.
가나다라는 아니까 타이핑은 하니까, 못 쓸 이유는 없었죠.
쓰다 보니, 희喜도 담기고 노怒도 물들고 사랑哀 지어져 락樂이 되었죠.
하루, 일주일, 일 년의 일상들이 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꿈>을 씁니다.
꿈이란 글자를 알고 쓸 줄 아니까, 못 쓸 이유는 없었죠.
꿈을 쓰다 보니, 책이 되고 기사도 되고 방송도 되었죠.
하루, 일주일, 일 년의 글들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별 볼일 없던 하루도 쓰다 보면, 별 볼일 있어지고
별 볼일 있다고 여기면, 그 하루하루를 별처럼 쓰게 됩니다.
쓰면 쓰이고, 안 쓰면 안 쓰입니다.
꿈을 쓰면 쓰이고, 꿈을 안 쓰면 안 쓰입니다.
몽작몽용.
그렇게 한번 만들어봤네요.
저도 <작가의 꿈>에 제 날개를 출품했습니다.
100편의 글 중 제 글이 보이면 인증샷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 경복궁 근처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멋진 추억이 될 듯합니다.
제 글이 누군가 꿈에 쓰이길, 제 꿈이 누군가의 글에 쓰이길 바라봅니다.
<작가의 꿈> 선정 글
https://brunch.co.kr/@drishiti/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