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화 장기투자 법칙』을 읽고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장 위험한 자산은 현금이다.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현금이 위험하다고? 오히려 현금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게 아닌가.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문장이 점점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저자 임인홍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에스오일을 거쳐 현재 쿠웨이트 국영석유기업에 재직 중이다. 전형적인 엘리트 직장인처럼 들리지만, 그의 진짜 이야기는 2014년에 시작된다.
그해 에스오일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주가는 3년 연속 하락했다. 언론은 '34년 만의 적자'라는 헤드라인을 뽑아냈고,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저자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34년 만에 온 기회.
그는 아파트를 담보로 2억 원을 대출받았다. 금리는 3.35%였다. 원유 가격이 반드시 반등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2014년 주당 150원이던 배당금은 2017년 6,000원까지 치솟았다. 2018년, 그의 총 매도금은 약 10억 5천만 원이었다.
2014년부터 시작한 '잃지 않는 투자'는 2025년 2월 기준 주식 자산 40억 원, 10년 연평균 수익률 24%라는 숫자로 이어졌다.
OECD 노인빈곤율 1위. 이게 우리나라 얘기다.
그 이유가 이 책 안에 있다. 한국의 퇴직연금은 자산의 약 89%를 예금, 채권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넣어두고 있다. 그 결과 연평균 수익률은 고작 1.9%다. 반면 미국과 호주는 자산의 70%를 주식에 투자하고, 수익률은 우리의 약 4배에 달한다.
더 뼈아픈 건 물가다.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 우리 연금의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모은 돈이 해마다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동산에 자산을 묻어두고, 통장에 현금을 쌓아두며 안심한다.
저자는 말한다. 전 세계 자산가 중 주식이 아닌 부자는 없다고.
피터 린치는 말했다.
"투자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의 비관론을 무시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장기투자란 그 불확실성을 오랫동안 껴안고 가는 일이다. 매일 흔들리는 주가를 보면서 '지금 팔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충동과 싸워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간단하고 강력하다. 주가 대신 주식 수를 보라는 것이다.
주가는 매일 변한다. 평가금액도 매일 변한다. 하지만 내가 보유한 주식 수는 변하지 않는다. 기업의 오너처럼 생각하면 일상의 주가 변동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워런 버핏은 지금 94세다. 그의 자산 99%는 65세 이후에 만들어졌다. 우리는 버핏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엘리베이터는 적정 인원 무게보다 11배까지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게 승강기 케이블의 안전 계수다.
투자에도 안전마진이 있다. 본질 가치가 1만 원인 주식을 5천 원에 샀다면 안전마진은 5천 원이다. 하지만 주식의 적정 가격을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저자가 찾아낸 대안은 배당이다.
배당은 주식을 팔지 않아도 확정된 금액이 통장에 꽂힌다. 보유를 유지하는 한 배당금은 계속 누적된다. 그 누적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때부터는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는 투자가 된다.
예를 들어 누적 배당금 수익률이 42%라면, 주가가 평균 매수 단가보다 42% 하락해도 실질 손실이 없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안전마진도 덩달아 커진다. 워런 버핏의 코카콜라가 바로 그런 투자다.
연 배당 수익률 10%. 매달 꽂히는 월 배당금. 광고는 화려하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경고한다. 이른바 월배당 ETF 대부분은 '커버드콜' 구조다.
커버드콜은 기초자산을 매수하면서 동시에 콜옵션을 판다. 콜옵션 매도로 소소한 프리미엄을 챙기지만, 기초자산이 가파르게 오르면 오히려 큰 손실이 발생한다. 구조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상방은 막혀 있고, 하방은 뚫려 있다.
ETF 가격이 서서히 떨어지면 높은 배당 수익률을 자랑해도 실제로 받는 배당금 역시 점점 줄어든다. 당신의 투자금을 조금씩 돌려주면서 배당인 척 생색내는 것이다. 물론 운용사 수수료는 꼬박꼬박 가져간다.
지수 추종 ETF도 마냥 좋은 답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찰리 멍거의 말처럼, "대중을 따라 하는 것은 평균으로 후퇴하겠다는 말"이다. 수수료는 장기로 갈수록 누적되고, 분배 수익률은 배당소득세를 제하면 물가상승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은 딱 두 가지다.
제1원칙: 돈을 잃지 말라.
제2원칙: 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말라.
복리의 마법은 마이너스 한 번에 크게 흔들린다. 연 수익률이 낮더라도 꾸준히 플러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끔 높은 수익을 내다가 한 번 크게 잃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저자가 제안하는 종목 선정 기준도 이 원칙에서 출발한다. EPS(주당순이익)는 3년간 10~15% 이상 성장해야 하고, PER은 10 이하, PBR은 1 이하여야 한다. 주주환원율은 40% 이상을 본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에게 얼마나 이익을 돌려주는지가 핵심이다. 저자가 실제 적용한 종목으로는 포스코홀딩스, 4대 금융지주회사 등이 있다.
덧붙여 ISA 계좌 활용도 빼놓지 않는다. 연간 비과세 한도 2천만 원에는 배당금도 포함되기 때문에, 연초에 배당이 들어오는 시점을 고려해 가능한 한 빨리 한도를 채우는 것이 유리하다.
저자가 말한다.
타이밍이 아닌, 타임에 투자하라
화려한 수익 스토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단타, 레버리지, 테마주. 빠르게 벌겠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이 책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느리게, 오래, 잃지 않으면서.
결국 투자는 세상의 비관론을 얼마나 오래 무시할 수 있는지의 싸움이라고 피터 린치는 말했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기준과 시간이다.
통장에 쌓인 현금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임인홍, 『가속화 장기투자 법칙』, 길벗,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