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

by 카르멘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게 하는 방법은 바람개비를 들고 내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아들에게 물었다.


"바람개비 있잖아. 바람이 안 불 때 바람개비가 돌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아이의 의아한 눈초리.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준이가 뛰면 된대. 바람개비를 들고, 뛰어!"


내가 초중고대(원)를 거치며 직장에 정착하고 나는 내 연봉의 가치를 갖게 됐다.

들인 시간, 노력,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은 편이냐?

아쉽게도 "아니요"라는 즉답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하라"라고 건넬 답안지를 쥐고 있지 않다.

현재는 변하고 있고, 미래는 모른다.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그 증거가 되진 않았으므로.


그렇다고 "무조건 놀라"라고 말할 배짱도 없다.

나 스스로 그래본 적이 없으므로.


그래서 결국은 그냥 나는 지켜볼 뿐이다.

다만 아이가 크므로 나도 커야 할 뿐이다.

그리고 다만 이 책에서 말하듯 내가 나의 가치와 한계를 규정하는 순간, 분명 거기서 나는 멈춘다. 어쩌면 기성세대인 나는 이미 위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고명환 작가의 <고전이 답했다>



금은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지.
치장하는 것밖에 용도가 없잖아.
하지만 흙은 생명력이 있어.
흙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우잖아.
금보다 흙이 훨씬 좋은 거야.


조민수 배우가 말했다.

최근 말하는 흙수저, 금수저 논란에 대한 말.


난 '금도끼, 은도끼' 전래동화가 떠올랐다.

산신령을 속인 나무꾼과 정직한 나무꾼을 비교한 이야기지만, 사실 거짓말을 한 나무꾼이 속인 건 자기 자신이었다.

거짓으로 도끼를 던지고, 거짓으로 금도끼와 은도끼가 자신의 도끼라고 말한 것.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믿은 것.

그리하여 결국 쇠도끼마저 잃게 된 것.

나무꾼이 도끼를 잃는다는 건 그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흙수저, 금수저 논란을 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의 본질이 흙이냐 금이냐가 아니라 수저를 쥐고 밥을 먹느냐에 달려있음에도 수저의 색깔에 너무 많은 논쟁을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반면, 무조건 금이 흙보다 가치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그 본질이 다를 뿐이다.

흙은 생명력을 갖고 무언가를 생산한다.

금은 희소성을 갖고 무언가를 재생산한다.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겐 금이, 누군가에겐 흙이 더 중할 뿐이다.


그것을 구별하는 능력, 그게 어쩌면 부의 첫 번째 소양이다.



배움이 없는 선의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알베르 카뮈, 페스트)


카뮈가 말하는 가장 큰 잘못은 "무지"였다.

과거 페스트가 쥐로 인해 퍼져나갔듯, 그로부터 엄청난 세월이 지나고 우리가 겪은 꽤 긴 기간의 코로나는 박쥐에서 기인했다. 인간이 몰랐는가? 아니면 모른 척한 것인가?

어찌 됐든 가장 큰 잘못은 몰랐고, 모른 척했던 일일 것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치가 허물어내렸는 지는 모를 일이다. 물론 그 허물어짐 속에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렇다 하여 그 긴 터널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 우리가 똑같은 잘못을 안 하고 있는가?

요새 말하는 ESG경영과 인권경영이 아직 실질적 파괴력을 갖지 못하고, 지구상 가장 힘이 센 나라에선 오히려 역행하는 흐름이 생성되고 있으니 우리는 여전히 무지한 쪽에 가깝다.


자연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반응할 뿐이다. 인간의 무지가 동물의 무지와 다른 이유는 이기심 때문이다. 우리는 미리 대응할 수 있음에도 끝까지 몰아붙인 후 반응만 한다.

결국 자연재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일천한 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장기적 부는 지속가능성에 배팅해야만 한다.



자세가 기세다. 구부정한 자세에서 에너지가 나올 리가 없다.


핸드폰을 보지 마라.
핸드폰을 보면 당연히 고개가 숙여진다. 핸드폰을 볼수록 돈이 안 벌리는 이유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기회가 찾아와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자세는 기세다. 기세는 기회다.
(P.76~78)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에 빗대 작가 고명환이 말한다.


내가 벌어들이는 돈의 종류가
내 부의 한계다


그는 지금 유튜브로 달러, 해외 판권을 팔아 수출되는 책으로 러시아의 루블과 대만달러, 베트남의 동과 일본의 엔화를 번다.


참 재밌는 발상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원화 외에 벌어본 적이 없다.

그저 출장이나 여행으로 다른 나라 돈을 소비해 본 적만 있을 뿐이다.

아. 생각해 보니 있긴 하다. 미국 주식을 사서 소액의 배당금을 달러로 받긴 한다.

아주 소소하게 미국주식을 사더라도 그 나라의 기업과 시장상황을 살피게 된다.

그러니 벌어들이는 돈의 종류는 분명 나의 시야와 부의 다양성을 확보해 준다.


이 좁디좁은 나라에서 원화만 벌겠다고 하면 안 되는 시대다.

여러 종류의 화폐를 벌어들이는 것, 부의 새로운 법칙이다.



인생은 바둑판과 같다. 당신과 싸우는 상대방은 바로 시간이다.
멈칫거리거나 망설인다면 바둑판 위의 당신 돌은 모두 없어질 것이다.
(나폴레온 힐 성공의 법칙)


빠른 결단력과 실행력 외에 준비는 필요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위대한 3분의 법칙'을 소개한다.

아침에 일어나 3분 후 알람을 맞춘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질문하고 답하는 3분.


나는 지금 한번 3분을 설정해 본다.

나는 오늘 어떻게 보낼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오늘 아침은 '다정한 아침'을 이야기했고, 오늘 오후는 결심한 '브런치북 완결 프로젝트를 위한 독서'를 했고, 저녁엔 장을 봐서 아이와 '편안한 저녁'을 할 거다.

일주일은 '지덕체'의 테마를 균형 있게 갖는 게 목표다.

지- 도서관에서 읽은 책을 읽고, 정리해 두기, 가급적 브런치북으로 활용, 재테크 점검

덕-감사일기, 걱정해소일기를 매일 쓰기

체-필라테스, 스쿼트

그리고 한 달은 그런 하루하루, 일주일의 총합이다.


휘슬이 울린다.

딱 3분이 되었다.


하루의 시간을 관리하면, 일주일의 시간을 관리할 수 있고, 한 달의 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

시간이 돈이니, 시간의 관리는 부의 관리의 첫걸음.



한 단어.

올해의 한 단어.

나에게 작년 한 단어는 씨앗이었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의 큰 줄기는 씨앗, 파종 등이었다.

진짜 그런 일이 생겨서 그리 믿은 건지, 그리 믿어서 그런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 두 가지 모두일 듯싶다.


그리고 내가 아이와 함께 가장 많이 쓰려고 했던 문장은 "다정한 아침이야"였다.

나에겐 아침이 가장 쉬웠는데 다정한 아침은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가장 입으로 많이 내뱉고 싶은 문장은

"이게 어디냐"이다.

이건 솔직히 말하자면 모방이다. 방송인 정선희 씨가 유튜브에 나와서 습관적으로 의식적으로 쓰는 말이라고 한다.


추위에 떨어도 "이게 어디냐. 추위에 떨 수 있을 몸뚱이가 있으니, 이게 어디냐"


너무 멋진 말. 그리고 지금의 내게 너무 와닿는 말이니, 더욱 멋진 말.


독서라는 고상한 취미를 목표로 갖고 실행할 수 있으니, 이게 어디냐.

브런치라는 우아한 공간이 있고 글을 쓸 수 있으니, 이게 어디냐.

부를 고민할 만큼 부가 있으니, 이게 어디냐.

매일 육아를 고민할 만큼 사랑하는 아이가 있으니, 이게 어디냐.

이모두를 할 수 있는 제정신의 내가 있으니, 이게 어디냐.


낙타, 사자, 어린아이.

낙타는 '나는 해야 한다'

사자는 '나는 할 것이다'

어린아이는 '나는 즐긴다'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이는 어린 아이다.

이를 깨달았으니, 이게 어디냐.


내 성공으로 나를 판단하지 말고, 내가 몇 번이나 넘어졌다가 일어섰는지로
나를 판단하라(넬슨 만델라)


올해의 성공지표는 이거다.

얼마나 일어섰는지.

그럼 얼마만큼은 넘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넘어짐, 실패, 좌절, 시행착오 그 어떤 이름의 장애나 난관도 성공을 위한 밑밥에 불과하겠지.


그리고, 덧붙이자면 작가가 말했듯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나온 '곰스크(이상향)'은 여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나'였듯 곰스크는 지금 여기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지 않은 자가 언젠가 거기에서 행복할리 없겠지.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랄프 왈도 애머슨의 '자기 신뢰'에서 말한 신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함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어린아이가 가장 위대한 걸지도.


김구 선생이 말씀하시길,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결국 그러려면 읽고, 행해야 한다.

혹은 행하고, 읽어야 한다.

나를.




책을 덮는다.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녀가 한 말이 떠오른다.


'결국에 모두 죽고 모든 게 사라질 거라는 사실, 아무리 멋진 일을 해도 아무리 이상한 일을 해도 결국엔 우리 모두 사라질 거라는 사실'은 큰 위안이라는.


홈스쿨링을 통해 독학으로 팝의 현재이자 미래가 된 그녀의 노래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유퀴즈에 나온 그녀에게서는 '소탈함'과 '깊이'가 보였다.

그녀 집안의 가훈은 '1만 시간'이라고 한다.

바로 그 1만 시간의 법칙의 1만 시간.


그녀는 천재가 맞다.

하지만 노력 없는 천재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녀는 성공한 천재다.


천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지 않는 다면 실패가 당연하다.

다만 그 실패도 성공도 결국은 사라진다는 결론에는 가닿는 건 참 큰 위안이다.

그러니 이 모두가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나아갈밖에.


방향을 잃지만 않는다면, 된다.

나를 풍요롭게 하는 방향, 그건 나를 아는데서 시작하고,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나의 실천에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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