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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pr 10. 2021

일생의 목표보다 일상의 목표를 위해

아이 보며 애니 보기 13 - 소울(2020)

영화는, 두 시간 동안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기대감을 품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의 시간을 '순삭'시키기 위해, 영화는 곧잘 장대한 판타지 서사와 매혹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래서 많은 영화 속에 드래곤과 로봇이, 외계인과 은하계가 등장한다. 조금이라도 현실을 잊기 위해 영화 속 이야기에 접속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꼭 마블과 디씨 시리즈 덕후들이 아니더라도, 영웅들이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보면 통쾌하기 그지없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봤던 성룡과 이연걸의 홍콩 영화들도, 아이들이 매일같이 보는 <미라큘러스>와 <명탐정 코난> 극장판도 비슷한 구성이다.


잠시라도 현실을 떠올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스릴과 유쾌함을 느낀다. 시간당 지불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영화는 비슷한 효용을 제공하는 다른 엔터테인먼트보다 가성비가 뛰어난 훌륭한 오락거리다.


자고로 영화 주인공들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그런데 슈퍼 히어로들도 아니고 겉보기엔 어디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배 나온 아저씨가 올 초 국내 극장가를 휘어잡았다. 팬데믹 상황을 뚫고 <겨울왕국 2> 이후 해외 영화로는 첫 2백만 명 고지를 밟은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 안팎으로 꽤나 화제였던지라 얼마 전 주말에 시간을 내어 보러 갔다. 오랜만에 찾은 극장이었다. 거리두기 좌석을 빼고 보면 생각보다 관객들이 들어차 있는 편이어서 조금 놀랐다. 역시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오는 건가.


보는 사람들마다 평이 살짝 엇갈리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울>이 너무 좋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소재를 잔잔하게 풀어가는 방식이 적잖이 마음에 들었다. 내세를 그린 판타지이지만 <신과 함께> 같은 부류는 아니다. 무엇보다,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보는 내내 마음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꿈과 목표에 대한 영화 <소울>


일생일대의 꿈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주인공인 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재즈로 최고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비정규직 음악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조는 우연찮게 꿈에도 그리던 유명 재즈 클럽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날 사고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재즈 공연'이라는 꿈을 위해 어떻게든 다시 내세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는 와중에 벌어지는 만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가 두 시간 동안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재즈 클럽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나오며 조와 도로테아가 나누는 대화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피트 닥터의 돌직구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을 보니 아직도 상영중인 극장이 꽤 있다. 그래서 ... 더이상의 자세한 스포는 생략한다.)


그 장면은 적어도 내겐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너,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살고 있느냐?"하고 갑자기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공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채 나는 ‘어어...’하고 머뭇거렸다.




수능 전날이었나, 예비소집 후 하교길에 학교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내일 준비 잘해라 시험 잘 봐라 이런 뻔한 덕담을 주고받던 와중에 그분께 들은 말 한마디는 살면서 이후로도 가끔씩 떠오르곤 했다.


"인생이라는 게, 언덕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언덕 하나가 기다리더라고."


수능 잘 보라는 말 치고는 좀 무심한 이야기다. 시험만 마치면 원 없이 놀리라 이런 생각에 가득찬 고3 수험생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을리 만무하다. 이후 엇비슷한 길이의 시간을 또 한 바퀴 살아보고서야 그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떠나는 도로테아를 보는 영화 속 조의 얼굴을 보며, 영화를 보는 내 얼굴도 저런 표정이겠지 싶었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한 해동안 회사 일을 쉬며 마음속 버킷리스트에서 꽤 여러 가지를 지워냈다.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을 낼 수 있었고, 근 십 년을 끙끙 앓기만 하던 논문도 결국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매조지었다. 책이 나오던 순간, 논문을 제출하던 순간은 꽤나 오래도록 머릿속으로 상상해왔던 일이었다. 다시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앞으로 몇 번 오지 않을, 작지만 의미있는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인생은 클라이맥스 후에도 계속 흘러간다.


오랫동안 갈망해오던 목표를 이뤘고 안 이뤘고와는 상관없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라는 것이 그래서 재미있다. 목표를 이뤘기에 달라지는 것이 아주 없진 않겠지만, 그게 천지개벽할 만큼의 변화는 대개 아니다. 일고여덟 시간 잠을 자야 하는 것도, 세 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애당초 일생일대의 목표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 과연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질문할 법 하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이란 게 어디 그런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살기에 하루하루는 너무 바쁘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또 하루가 지난다. 일생일대의 목표를 이뤄야 하는데! 생각하다 잠이 들고, 깨어나면 아침이다.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소울>에 수북이 별을 달아주고 있는 것은, 현실을 잊고 싶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현실이 사실 얼마나 리얼한 것인지, 생생한 현실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굉장히 ‘현실감 있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 살아있어야 맛난 뉴욕 피자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의 디즈니식 해석이라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서점에 들렀다가 아침 네 시 삼십 분부터 일어나 치열하게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라는 책이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처량하게 슬펐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지 못하고, 다시 목표를 세우기를 반복하는 작심삼일 시지프스의 삶을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세상은 꽤 각박하다.


그저 햇살 좋은 날, 마음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싱그러운 바람을 쐬며 재잘재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전에는 감히 못했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수십 년 살아왔고, 여전히 그 생존 알고리즘이 한 편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소울>과 같은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꼭 비교와 경쟁과 성취만이 삶의 지상목표는 아님을 함께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소울>은 얼마전 김혜자, 한지민 배우가 열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




티격태격 쌓여가는 대화 속에 함께 성장하는 조와 22


소울이 재미지는 나이라는 건 썩 재미없는 일이지만 


애니메이션 방송으로 채널을 고정하고 리모컨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뉴스 좀 보자고 통사정하다 화딱지가 났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데 이 녀석... 하다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뉴스나 보려고 하는 아빠라니 얼마나 멋대가리 없느냔 말이다. 어릴 때 뉴스나 보고 있는 한심한 어른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차던 생각이 났다. 영락없이 어른이 되었구나 나는.


뉴스 속 세상은 감당키 어려운 현실들로 가득차 있다. 썩 유쾌하지 않은, 만화경 같은 현실이다. 그런 현실보다는 우리 편이 늘 백 프로 이기는 정의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 아이에게도 교육상 훨씬 좋을 것이다. 게임은 늘 백 프로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팀을 이뤄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해나간다는 차원에서 꼭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애니든 게임이든, 아이는 일생일대의 목표 따위 생각할 겨를 없이 오늘 하루하루의 즐거움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아빠랑 소울 볼까?"

"소울이라니... (정색) 아빠 그거 재미없대."


친구들 사이에선 이미 다 이야기가 돈 모양이다. 엄마 아빠들만 좋아하는 애니로 찍힌 <소울> 속 조나 22가 아이들의 최애 캐릭터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이 애니메이션도 아이와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시간이 꽤 흐른 후겠지. 어쩌면 아이는 지금보다 훌쩍 큰 어른으로 자라있고, 나는 허리가 점점 꼬부라져가는 노년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익숙진 않지만, 일생의 목표보다는 일상의 목표를 위해 페달을 밟는 삶으로 조금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조가 22 덕분에 인생의 의미를 깨우쳤듯이, 아이로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중 일은 그때 생각하자. 지금은 지금이다. 아이랑 신나게 주말을 즐기는 것만 생각하자. 자전거도 타고, 레고 블록도 쌓고, 함께 즐길 것들이 많다. 


순간이 모여 인생을 만든다. 아이와 함께 하며 깨달은 진리를, <소울>을 통해 재확인한다. 



소울(2020),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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