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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ug 09. 2022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벌써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게 

칠레 클래스메이트의 인스타그램에서 멋진 핑크색 후드티를 사입은 아내와 딸의 모습을 보았다. 하트 뿅뿅 이모지를 섞어 댓글을 달았다. 


"너무 예쁜데? 어디서 산거야?"


몇 시간 후, 친구의 댓글이 달렸다. "5주년 기념행사에 갔다가 샀어! JM 너도 왔었어야 하는데!"


MBA를 졸업한 지 만 5년이 지났다.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졸업이 5년 전이니, 입학은 7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 사이에 하릴없이 나이를 먹었고, 어느새 앞자리가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어제 일처럼 기억되지 않는, 조금은 애써 기억을 더듬어야만 퍼즐이 맞춰지는 기억이 된 그 25개월간의 삶.


해외 MBA를 나왔다고 해서 예전처럼 누구라 할 것 없이 연봉이 수직 상승하고, 고위 임원이 되지는 않는다. 2022년 현시점에서 해외 MBA, 특히 미국 MBA는 과거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커리어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선택하는 여러 종류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도 한다. MBA를 다녀왔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점은 더 이상 MBA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물론 직급이나 연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고 어학연수 한 번 없이 곧바로 직장인이 되었던 나였다. 그래서 미국으로 MBA 과정을 밟기 위해 떠났던 25개월은 전에는 일에 생활에 치여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그러니까 나 스스로에 대해서, 나다운 삶은 과연 무엇 일지에 대해서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였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조금 떨어져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처음 갈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랬다.)


몇 달 전 같이 일하던 직장 후배 하나가 내가 공부하던 학교로 MBA 과정에 진학하게 되어 출국 전 인사를 하러 왔던 적이 있다. 회사 앞 카페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설렘 반 걱정 반 눈빛인 후배에게 진심을 담아 축하인사를 건넸다. 인생에 다시없을 너무 좋은 기회다, 너무 부럽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그 시간들을 마음껏 잘 활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고 돌아왔다. 


후배를 배웅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오며 7년 전 여름, 7월 그 첫 수업을 떠올렸다. 학교 주차장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수업에 늦을 세라 공항에서 빌린 렌터카를 허겁지겁 대놓은 채 강의실로 달려갔었다. 반원형으로 좌석이 세팅되어 있는 강의실에는 중국, 일본, 태국, 브라질, 스페인, 러시아... 전 세계에서 경영학을 배우러 온 친구들이 한 데 앉아 앞으로 2년간 같이 공부하게 될 클래스메이트들을 반겼다. 각자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첫 수업을 들었다. 다양한 피부색의 클래스메이트들이 모여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던 그날 강의실에서는 기대감으로 두근대는 가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7년 전 그날, 내가 뭐라고 자기소개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쭈뼛쭈뼛 떠듬떠듬 영어로 뭐라고 말은 했겠지. 그러나 함께 2년간 공부하게 된 한국인 동기 형이 지나가듯 옆에서 했던 한 마디는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와, 내가 정말 미국에 오다니.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같은 강의실에 앉아 MBA를 하게 되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형은 뭘 그런 것 가지고 감격하냐고, 애써 시크해 보이려 하긴 했지만 실은 나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을 게다. 그러니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겠지. 


강렬했던 첫 수업의 기억 이후로 25개월간 미국에서 경험한 것들은 이후의 내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았다. 하나하나 분명히 나란 존재를 한 뼘씩 성장시켜주었던 경험들이었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그 25개월의 경험들을, 모든 것을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세월이라는 무서운 적 앞에서 지켜내고자 글로 남겨본다. 앞으로 기록해둘 경험들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논픽션 저널리스트 존 맥피의 말마따나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서. (여전히 내 작업실은 없지만.) 


*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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