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민 Aug 13. 2022

세상의 중심이 대서양이라고?

삼십 년 넘게 태평양인 줄 알고 살았는데

유격훈련, 아니 팀 트레이닝 데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 한다. 이날은 클래스메이트의 손을 빌어 그간 있었던 마음속 부담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던 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후로 계속 겪게 될 '이방인'으로서의 위치에 대해 예전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기 때문에.


팀 챌린지 데이라고 명명된 그날에는 외줄 타기 외에도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몸을 부대껴가며 팀워크를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는 액티비티들이 주를 이뤘는데, 그래도 아직 서먹한 만큼 서로에 대해 소개하는 세션이 맨 처음에 있었다. 담당 교관은 열 명이 조금 넘는 우리 그룹 멤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 지금 여러분 앞의 땅에 세계지도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각자 자기가 온 지역에 가서 서 보는 겁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주저 없이 내 앞에 펼쳐진 가상의 세계지도 한가운데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세계지도에서 한국은 늘 태평양 옆에, 한가운데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뉴욕과 보스턴, 그리고 다른 미 동부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뭔데? 이것들 지리 공부를... 아!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서양 친구들이 머릿속에 그린 지도는 세상의 중심에 태평양이 아니라 대서양이 있는 지도였던 것이다. 북미 대륙유럽 대륙이 대서양을 가운데 두고 중심에 사이좋게 그려져 있는 세계지도.


상황을 파악한 나는 마지못해 지도의  오른쪽, 그러니까 대서양 중심 세계지도 상에서 '극동(Far East)'에 해당하는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상하이에서  S 역시  바로 옆에 섰다. 못내 마뜩잖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서. (나도 같은 심정이야.)


지도 위에 서 자기소개 차례를 기다리며 나도 모르게 미드 '왕좌의 게임' 떠올렸다. 세상의 중심 칠왕국에서 줄곧 살아온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장벽 바깥에서 사는 야인이었던 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발디딘 곳을 중심으로 사고를 확장해가기 마련이다.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동설을 믿었던 오래전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의심없이 믿어왔던 생각에 균열이 일어나면,  충격은 생각보다 크다.




세상이  넓고도 좁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떠났던 입사동기 C 마침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MBA 공부하러 왔다고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니 C 미국에서  정도 거리면 옆동네나 마찬가지라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것도 모자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허기진  까지 가득 채워줬다. 은인이 따로 없다.


이미 수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며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유학 선배 C 식사를 하며 내게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의 삶이 아마 한국이랑 똑같진 않을 거야."


C의 말인즉, 그동안 공부하며 한국 유학생들을 적잖이 봐왔는데, 남자와 여자가 적응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거다. 한국사회 내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에 내성이 생긴 여자들이야 이곳에서 생겨나는 여러 차별 아닌 차별에도 그러려니 하고 그나마 그럭저럭 버티는데, 남자들은 자기네 사회에서 도통 그런 경험을 못해봐서 그런지 적응하는데 꽤나 애를 먹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통계적으로 엄밀한 연구결과 같은 건 아니고 그저 자기 개인 경험에 따른 짐작이라고 가볍게 넘기긴 했지만.


NC 도착해서 며칠 안되었을 때였고, 동네에서 제일이라는 프렌치 식당에서 맛난 음식들을 앞에 두고 들은 이야기라 처음부터  말이 와닿았던  같지는 않다. '그래, 그렇겠지...'라고 대꾸야 했지만, 한편에는 결국  사람 사는 곳인데 비슷하지  하는 마음도 있었던  같다. 게다가 지금이 대체  년인데.


그런데  챌린징 데이 , 지도 가장자리에  있으면서야 비로소 C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익숙했던 사람이 갑자기 변방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상황의 어색함이라고 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대학을 나오고 직장 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처음부터 그 세계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경험이 많지는 않았던 거다. 그래서 전혀 다른 세계관이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일 테고. (그나마 이전에 겪은 비슷한 경험이라면 지방에서 살다 대학 때문에 처음 서울에 왔던 새내기 시절 정도였을 것인데, 그때와 비교하기에는 농도의 수준이 달랐다.)


그리고, 그제야, 한국에서 만났던 이방인들을 다시 떠올렸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만났던 교포 친구들,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 북한이탈주민 친구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지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박혀있었던 삼십여 년이었다. 내가 무얼 깨닫지 하고 사는 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자신이 살던 세상을 떠나 한국을 찾은 사람들의 심정을 과연 얼마나 진심으로 이해해보려 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그때서야 슬며시 올라왔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텐데, 나란 존재가 가진 공감 능력이라는  고작  그만큼이었던 게다.


이후로, 신영복 선생님이 말했던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말을 종종  안에굴려본다. 타인과 완전히 동일할 없더라도, 최대한 비슷한 입장이나마 되어야  마음을 가까이 이해할  있게 된다. 생택쥐페리 '인간의 대지'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가 이후에 쓴 ‘어린 왕자’ 속 우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도 아마 바로  제대로 된 ‘관계맺음’에 대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서른을 훌쩍 넘겨 늦깍이 유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관계에 대한, 을 바라보는 방향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마주하고 있었다. 헛살았다는  이럴  쓰는 말이려나. 어렸을  '어린 왕자' 제대로 읽었어야 했다.


* Photo by Brett Zeck on Unsplash

이전 03화 가면 증후군을 겪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