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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ug 11. 2022

노스캐롤라이나가 어디야

노스코리아가 아니다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MBA를 했던 듀크대학교가 있는 미국 남부 지역 주 이름이다. 약자로는 NC. 미국에 50개 주가 있다는 건 다들 알지만, 사실 뉴욕과 캘리포니아, 하와이 정도를 빼놓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명칭과 위치를 맞추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기야 한국에 살고 있어도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면 광역시급 대도시마저도 정확히 위치를 짚는 게 어려운데, 하물며 태평양 건너 미국이야 어련할까. 


그전에 여행과 출장을 통해 몇 차례 미국을 오간 적은 있었지만 노스캐롤라이나는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었다. 입학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름 앞에 '노스'가 붙어 있어서 조건반사적으로 미국 지도 북쪽부터 찾아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라는 지명이 좀 더 실질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은 학교 지원에 한창이던 1월 초, 한겨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들에서 요구하는 GMAT 등 각종 시험 점수 커트라인을 맞출 수 있었다. 물론 어느 곳도 합격을 장담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서류에서 통과해도 인터뷰가 남아 있었다. 학교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적어도 직접 가서 둘러보면 뭔가 하나라도 더 느낌이 오겠지 싶었다. 휴가를 내고 지원 예정인 학교들을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짧은 시간 안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들을 최대한 돌아봐야 했으므로 이미 빡빡한 일정이었다. 학교 입학처에 미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거나, 그해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 인터뷰라도 잡았다. 그렇게 뉴욕과 보스턴을 거쳐 노스캐롤라이나의 롤리더럼 공항에 도착했다. 


듀크대 방문을 위해 공항명을 찾아보니 '롤리-더럼'이라는 처음 듣는 명칭이 나왔다. 공항 코드는 RDU. 학교가 위치한 더럼 시와 인근 대도시인 롤리의 이름을 함께 이용하는 공항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천안아산 역과 같은 느낌이랄까. 지역명도 생소한데, 공항명은 더더욱 생소했다. 


사실, 롤리더럼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심상찮은(?) 조짐이 있었다. 1월 뉴욕은 꽤나 추웠고, 그 위에 있는 보스턴은 한층 더 추웠다. 강추위에 견디다 못해 손이라도 보호하려고 백화점에 들러 검은색 노스페이스 장갑을 사서 끼고 다녔다. 그렇게 보스턴 로건 공항 좌석에 앉아 RDU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 출입구가 부산해지더니 비행기 출발 시간이 바뀌었다. 세 시간 연착. 


예상치 못한 연착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정을 타이트하게 짜느라 더럼에서는 1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부리나케 만나기로 한 학교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노심초사하며 회신을 기다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처 담당자로부터 답신이 왔다. 다정하게도 약속을 뒤로 미룰테니, 너무 걱정말고 조심히 오라는 메일이었다. 


그래도 지원자 입장에서는 책잡히기라도 했을까 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롤리더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탔다. 간신히 약속시간에 맞춰 담당자 R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편안한 옷차림에 편안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고, 학교에 대해 궁금해하던 내게 여러 유익한 답변을 해줬다. 아쉽게도 오늘 오자마자 바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더니, 듀크에 왔는데 이곳 명물인 채플도 못 보고 가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며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연착으로 인해 시간이 촉박해져서 여유 있게 잡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인 재학생 선배들과의 만남도 떠나기 직전 짧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는 지원자와의 만남이고, 그조차 청한 사람 일정이 꼬여버렸으니 못 만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두 분 모두 너무나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전에 온라인으로만 미리 연락을 하고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는데도. 그중 한 선배님은 그 와중에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나를 직접 배웅해주겠다며 라이드를 자청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날씨 이야기가 나왔다. 


"동부에 있다 남부 오니 따뜻하죠?"

"네! 그러네요!" 

"살아보니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아요. 여간해서 두꺼운 외투 입을 일은 없어요."

"...! 그렇군요!"


겨우 한나절 학교에 들렀을 뿐인 지원자를 친절히 맞아준 한국인 선배들 덕분에, 나는 촉박한 방문 일정 속에서도 짧게나마 학교를 둘러보고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허겁지겁 도착했을 땐 미처 몰랐는데, 떠날 때 다시 마주한 롤리더럼 공항은 오크 빛 원목 지붕이 아담하면서도 인상적인, 아름다운 공항이었다. 


이륙하는 비행기 위에서 바라본 노스캐롤라이나는 겨울임에도 푸른 숲으로 가득했다. 일주일여의 짧은 여정 동안 추위에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왠지 조금 푸근해진 것도 같았다. 상대적으로 포근한 날씨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곳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마주했던 환대 덕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몇 군데 학교와 인터뷰를 봤다. 그리고 봄이 되자 합격과 불합격 소식이 연이어 전해져 왔다. 운 좋게 복수의 학교로부터 오퍼를 받았고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순간 떠올렸던 것은 롤리더럼 공항에서 나를 감싸던 그날의 포근한 느낌이었다. 다정한 사람들로부터 전해받았던 그날의 따스한 온기가 결국 나를 2년 넘는 시간동안 노스캐롤라이나 거주민으로 만들었던 셈이다. 


물론 이후 '아임 프롬 노스캐롤라이나'라고 말해야지 생각하고, 정작 말할 때 '아임 프롬 코리아'와 섞인 '아임 프롬 노스 코리아..?'라고 말이 꼬여 대략 난감했던 경우가 몇 번 생기긴 했지만. 



* Photo by Elijah Mear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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