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 이야기 II
북한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또 다른 경로를 걷습니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각국에서 당-국가체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대체로 공산당을 정치 체제의 정점으로 하는 과두정 형태를 띕니다. 반면 북한의 정치 체제는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으로 국가 지도자가 혈연을 바탕으로 세습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지난 화에서는 당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정치 구조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어 이번 화에서는 북한 특유의 정치체제와, 북한이 끊임없이 미사일 시위를 펴는 이유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도자가 당보다 우위에 있다는 관념
앞서 말했듯 사회주의 국가들은 당-국가 체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대체로 공산당을 정치 체제의 정점으로 하는 과두정 형태를 보입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쉽습니다. 두 나라의 경우 성립 초기 지도자 1인에 의한 장기 집권 구조가 형성된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공산당의 핵심 조직인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한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배 체제를 구축, 운영해 왔습니다.
중국의 경우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이 사망 전까지 27년간 재임한 것이 최장 기간이며 (1949-1976), 베트남은 역시 초대 주석인 호찌민이 사망 전까지 24년간 재임한 것이 최장 기간입니다 (1945-1969). 이후 두 나라의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총서기(또는 총비서) 직은 대체로 5년에서 10년 정도의 기간을 전후로 후계자에게 이양되고 있습니다. 물론 시진핑 주석에 대해서는 2022년 10월 23일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이러한 관례를 깨고 3회 연임이 결정됐지만요.
반면 북한의 정치 체제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세습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각국의 정치 체제를 컴퓨터나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비유하여 설명한다면, 북한은 사회주의라는 오픈소스 운영체제를 기본으로 채택했지만, 이걸 사용자인 자국 지도부 입맛에 맞게 자기식으로 뜯어고쳐 쓰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월 종파사건, 사라진 견제와 균형
현대 정치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중요합니다.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견제하며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실수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국가 권력은 잘못 운영될 경우 큰 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류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경험해왔기 때문에,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입법-사법-행정의 분리와 견제, 그리고 복수정당제를 통한 각 정당간의 견제를 통해 최악의 선택을 피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정치체제를 진화시켜왔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이러한 견제와 균형은 작동합니다. 공산당 일당체제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안에서 수많은 계파간에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일어납니다. 이론과 현실은 늘 다른 법이니까요.그런데 그중 한 파벌이 정권을 잡고 계속 유지하게 되면, 이는 독재, 즉 소수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에 가깝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과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인 1956년에 일어난 ‘8월 종파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는 북한이 건국된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으며,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김일성이 국가주석 직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북한 안에는 여러 공산주의 계파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 이전에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조직들은 남북은 물론 중국과 소련 지역에도 모두 존재했으니까요.
‘8월 종파사건’은 1956년 8월 연안파, 소련파 등 다른 역사적, 사상적 차이를 가진 파벌들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그룹에 반기를 들고 김일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모두 숙청된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지속적으로 남은 정적들을 숙청하며 권력을 강화해나갔습니다.
참고로 8월 종파사건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백석 시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김연수 소설가가 2020년에 출간한 <일곱 해의 마지막>은 당시 북한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영향을 받았던 백석의 삶을 모티프로 한 소설입니다.
주체사상과 ‘수령’
김일성은 이후로도 자신 중심의 체제 강화에 반대하는 다른 파벌들을 견제하고,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갈등 관계에 있었던 중국과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더욱 ‘주체사상’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의 북한이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 유사하게 ‘당이 사회를 영도하는 체제’에 가까웠다면,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자연인인 김일성에 대한 개인 숭배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죠.
주요 정적들이 모두 제거된 1970년대가 되면 주체사상은 북한의 중심 통치사상으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즉 자연인인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북한의 지도자인 ‘수령’의 지위를 이어 받아 당과 정부, 군대를 모두 지도하는 위치에 있음을 명문화한 것입니다. 1972년 북한 헌법 개정 과정 당시 주체사상 개념이 포함되기 시작했고, 1974년에는 노동당 강령으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발표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9년 가장 최근에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는 제3조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정치적 의사결정구조는 사회주의 형제국가들과도 다른 형태를 띠게 됩니다. 즉, 북한 역시 비슷한 시기에 성립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당이 국가에 우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들 국가와는 다르게 지도자가 당내 견제를 받지 않고 상위에 군림하는 구조가 명문화되어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당이 국가에 우선한다는 개념 조차도 생소한데, 지도자가 그렇게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진 당보다 상위에 있다는 개념은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념입니다.
북한의 정치 구조와 미사일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구조가 미사일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당의 영도 하에, 그리고 지도자의 영도 하에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당의 영도와 지도자의 영도가 절대로 틀려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합니다. 수많은 실패를 겪고, 그 과정에서 뼈아픈 반성을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지도자의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구조는 이러한 실패와 반성의 기회가 닫혀 있습니다.
북한을 영도하는 조선노동당의 최상위 직책인 당 총비서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헌법에 명시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만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계승하여 북한을 이끌어야 합니다.
선대의 두 지도자가 쌓은 업적을 부정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절대로 틀리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고독한 CEO라고 해야 할까요.
핵무기와 미사일은 김정일 시기 주체사상과 함께 통치이념의 중심에 있었던 ‘선군정치’의 완성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당이 통제하는 군대가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으니 미국은 물론, 전세계 어느 국가로부터도 조선인민공화국을 지켜낼 수 있다는 표현의 일환입니다. 김정은을 필두로 하는 북한 지도부는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군사력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외부 세계에도 강력한 제재에도 북한 정권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022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기존의 방침을 바꿔 언제든 임의로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도록 핵무기 사용에 관한 법령을 개정했습니다. 과거에는 선언적으로나마 상대가 핵무기 사용 시에만 핵을 사용하겠다는 제한적 사용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적대세력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해올 경우 자의적 판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표명한 것입니다. 핵무기를 아무때나 사용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상황입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의사결정라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한반도의 수면 아래에 긴장을 더하는 요소가 또 하나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북한의 정치체제는 남한의 그것과 일대일로 비교하기에는 너무 다른 사상적, 역사적 궤적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점점 더 남북문제 해결이 험난해지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게다가 남북 문제는 단순히 남한과 북한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중 관계 등 국제적인 이슈와도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차방정식과 같은 어려움이 큽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남북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는 시민들이 필요합니다. 자유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갖는 최대의 장점은, 늘 옳기만 한 리더십을 갖진 못하더라도, 그래서 비록 속도는 느릴 수 있더라도, 국가의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중간중간에 실패와 실수를 보완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일 테니까요.
사진: Unsplash의Teodor Kuduschi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