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 이야기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장 관련 보도들을 볼 때마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거든요. 하지만, 북한이 남한과 얼마나 정치적, 경제적으로 다른 생각의 기반 위에 구축되어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북한 뉴스를 볼 때 좀 더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하냐고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죠.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당장 답을 찾기도 쉽지 않아 들여다 보기 싫지만, 꾸준히 관심과 시간을 두고 노력해야 해결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 기후 변화 문제와 마찬가지로, 평화는 언제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니까요.
앞으로 두 화에 걸쳐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 체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북한이 미사일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볼게요.
한 번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체제는 굉장히 어색한 옷과 같습니다. 이웃나라 중국이나, 가끔 여행으로 가는 베트남만 봐도 어색한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세습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은 더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려면, 북한 사회의 의사결정 체제(Governance)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자유주의 국가와 무엇이 가장 다를까요?
정치적으로는 공산당(혹은 노동당) 단일 정당 구조라는 점이고,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원칙상 불허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지점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살아온 국민 입장에서는 꽤나 생소한 관념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동안 살면서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부터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 체제부터 먼저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정치 체제가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조직 구성상의 차이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고, 세상을 보는 시각과 원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보이니, 선거 이야기라고 해볼게요.
선거 때마다 투표가 참 어렵습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시장 선거, 시의원 선거… 어디에 투표를 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 정당에서 보내는 공보물은 어찌나 많은지 당적과 얼굴을 매칭하는 것만 해도 하세월입니다. 후보별 공약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은 여간한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선거에 따라 다르지만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투표를 하지 않는, 그래서 투표율이 50%가 안되는 선거도 많죠. 그래도 매번 귀찮음을 감수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치르고 투표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로 여기는 선거 제도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산물입니다. 선거라는 제도를 하나 하나 잘 뜯어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사회적 합의 하에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주된 선거의 종류를 봅시다. ‘대통령’을 선거로 뽑습니다. ‘국회의원’도 선거로 뽑지요.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기도 하지만, ‘행정수반’이기도 합니다. 행정부의 대표를 뽑는 것이죠.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으로서 입법부를 구성합니다. 그러니까 선거는 삼권분립의 원칙 하에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국민의 손으로 뽑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사법부의 경우 한국은 선거를 통하지 않지만, 미국과 같이 검사장 등 일부 법관 선출 과정에서 선거 제도를 활용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한국은 건국 이후 입법부인 국회의원을 선거로 선출해왔고, 대통령 역시 1987년 개헌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해 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선거는 제헌헌법에서부터 명시된 국민의 권한이었기 때문에, 독재정권 시기 유신정우회 등 흑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에도 선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국가의 존립 근거였으니까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국민들이 선거로 뽑지 그럼 뭘로 정하냐 별 이상한 소리를 다한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행정부와 입법부 대표를 국민이 직접 뽑지 않는 정치 구조는 적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회주의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죠. ‘공산당’ 입니다.
아마 ‘공산당’ 하면 여전히 부정적인 감정이 자연스레 올라오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참고로 사회주의 각국 공산당의 명칭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중국의 경우는 중국공산당, 베트남의 경우는 베트남공산당인데 반해, 북한은 조선로동당이라는 명칭을 씁니다(이번 화에서는 편의상 ‘공산당’으로 통칭하겠습니다).
공산당은 공산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유일 정당입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구소련, 중국, 베트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주의 강령을 따르는 공산당이 정부를 이끕니다. 공산주의는 기존의 자본주의 세상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나눠져 있다고 보고, 이러한 계급이 완전히 철폐된 사회를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다만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한 번에 이행할 수 없으므로 중간에 노동자, 농민 등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이 되고 부르주아가 피지배 계급이 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뤄지는 사회주의 국가를 중간 이정표로 둔다고 설명합니다. 공산당은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뤄지는 사회주의 국가를 구현하기 위한 조직이고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혁명을 이끄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공산당은 비록 ‘당’이라고 지칭되지만 일반적인 정당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쩌면 ‘당’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우리가 이해하는 데 더욱 혼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히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이 갖는 위치는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정당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전혀 다릅니다. 다른 정당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주의 국가들처럼 공산당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국민들이 선거로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공산당은 이렇게 국가의 운영을 담당하는 것 외에 합법적 무장 조직인 군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방부를 통해 군을 통제하는 한국과는 구조가 달라도 너무 다르죠.
조금 더 부연하자면 이렇습니다. 복수 정당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국민의 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과 같은 정당은 각자 동등한 위치에서 정치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대중 조직입니다. 이 정당들은 각자의 이념과 정책을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획득, 정부를 운영하고자 경쟁합니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정당, 즉 공산당은 정부의 상위에 존재하면서 정부를 이끄는 조직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자유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획득하는 경쟁 과정이 생략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가 존속하는 한 그 국가의 공산당은 입법과 사법, 행정 권력을 영구히 관할합니다. 이론상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구현되면 계급이 사라지고 중간 단계인 사회주의 국가도 사라지겠지만, 그런 세상은 현실 세계에서는 찾기 힘들겠죠.
당이 국가의 상위에 있는 이러한 정치구조를 학계에서는 ‘당-국가 체제’라고 부릅니다. 공산당이 사회 전체를 이끈다는 이러한 사회주의의 관념은 엘리트주의의 산물입니다.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이 나머지 다수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엘리트주의는 사회 속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은연중에 스티브 잡스, 정주영 같은 카리스마 있는 창업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사고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그러한 관념을 정치 체제 속에 제도화한 시스템인 것이죠.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 체제는 한국인들이 그동안 살면서 몸으로 겪은 경험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흡사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북한은 성립 이후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또 다른 경로를 걷습니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각국에서 당-국가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대체로 공산당을 정치 체제의 정점으로 하는 과두정 형태를 띄게 됩니다. 반면 북한의 정치 체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국가 지도자가 혈연을 바탕으로 세습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이번 화에서 당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 구조를 알아봤다면, 다음 화에서는 당보다 지도자가 우위에 있는 북한 특유의 정치 체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북한 미사일 시위의 맥락도 보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