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수술 이후 달라진 신체 운동의 기준
어렸을 때 무슨 운동하셨었어요?
초중고 합이 12년 동안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 계단을 오르내린 덕분이었지 난 유난히 하체 근육이 발달했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내 장단지를 보고 씨름선수 이만기 다리를 보는 것 같다고 했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큰 키에 빡빡머리에 여드름이 온 얼굴을 도배하다시피 한 내 얼굴이 농구선수 허재 닮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다.
운동을 좀 했을 것 같은(?) 신체를 물려받은 나는 사실 운동을 꾸준히 한 적이 거의 없다.
근력운동 조금만 해도 주변에서는 운동 좀 하셨냐며 몸 좋다고 하기도 했고,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운동을 꾸준히 할만한 끈기가 부족하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그때는 건강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수영이든 헬스든 시작할 때는 굳은 의지로 3개월치를 끊고, 회사일로 바빠서 못 가고 어제 마셨던 술 때문에 속 쓰려서 못 가고, 머리 속에는 있는 핑계 없는 핑계로 출석하는 날보다 빠진 날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걸 좋아해서일까? 꾸준히 한 운동은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많이 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한 농구
올림픽 때 대한민국 금메달 획득과 함께 시작한 탁구/배드민턴/볼링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장님 덕분에 시작한 골프/웨이크보드/스노우보드/10km 마라톤/등산/야간 산행
개인적인 굳은 의지로 시작한 당구/수영/헬스 개인 PT/자전거 전국일주
하체에 비해 상체가 빈약한 난 몸에 갑빠를 키워보겠다고 무리하게 상체 근력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3대 웨이트 운동이라고 하는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중 벤치 프레스 비중을 높이기도 했는데, 이 운동이 바른 자세로 잘만 하면 가슴 운동 효과가 있는데, 내가 하면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힘줄이 튀어나올 듯하고 얼굴이 뻘게지기 일쑤였고, 또 바벨을 잡고 있는 두 주먹에 힘을 너무 꽉 쥔 나머지 1세트를 마칠 때면 손이 너무 아파서 중도 포기하는 일이 빈번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 신체에 근육 생기라고 했던 운동이 내 머리 속 뇌압 상승으로 머리 속 어딘가는 아파한 것은 아니었는지.. 나 스스로 병을 키운 것은 아니었는지.. 씁쓸하기도 하고 잘못된 운동 자세가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뇌압 상승을 주는 운동은 절대 안 한다
뇌종양 수술 이후 주로 하는 신체 운동의 기준이 달라졌다.
큰 근육 운동 대신 잔 근육 운동 위주로.
나에게는 방사선 치료 이후 온몸의 근육이 다 빠져서 근력운동은 필요하다. 다만, 벤치 프레스, 데드 리프트처럼 무거운 역기를 활용해서 큰 근육을 키우는 운동 대신에 아령 같은 가벼운 기구를 활용해서 횟수를 많이 반복하는 운동을 한다. 스쿼드 같은 하체 운동은 천천히 호흡에 신경 쓰면서 하는 편이다. 그리고 수건을 이용해서 스트레칭이나 등근육을 간헐적으로 하는 편이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침대에서 바로 내려오지 말고 기지개를 쫙 펴고 아이들 쭉쭉쭉하듯이 온 몸을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하면 개운함이 느껴진다.
역기 보단 걷기
원래도 걸음걸이가 느릿느릿 걷는 편이었지만, 마음은 느릿느릿 여유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특히 출근 시간 전에 출근 기록 카드에 사원증을 대려면 '아 5분 남았는데 빠른 걸음으로 걷을까?' '뛰어갈까? 포기할까?' '지각하고 말까?'라고 걷고는 있지만 생각은 많았다. 이제는 산이든 산책로든 강남거리든 걷고 있을 때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을 하면서 걷는다. 산을 걸을 때는 주변에 경치들을 하나하나 느끼려고 노력한다. 전에는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면서 걸었지만, 이제는 옆에 나무들도 보면서 걷고, 나무 꼭대기로 살짝살짝 보이는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걷기도 하고, 저 멀리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올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감은체 바람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30분쯤 걷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잡념이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말 그대로 뇌가 정화되는 순간이다.
뇌압 상승을 주는 운동은 절대 안 한다.
뇌압 상승 두통이란 머리에 갑자기 피가 쏠리거나 압력이 몰려서 어지러움을 느끼는 증상이다. 보통 몸에 열이 많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는 편인데, 내 경우는 오랜 시간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또는 발굽 혀 펴기와 같은 운동을 할 때 주로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노션 재직 시절 점심시간에 요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요가 동작 상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등 내 머리의 높이 에너지가 변하는 동작들이 많아서 중단한 적이 있었다. 모든 운동은 내 몸 상태를 관찰하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게 중요하다.
체온상승으로 면역력 증대 효과 운동 위주로.
뇌종양 수술 이후 자연스럽게 체온, 자연치유력, 면역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 몸속에 암세포가 없다고 잘못 알고 있다. 암세포가 없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의 몸속에는 암세포, 면역세포가 존재하고 있는데, 대부분 암 환자들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면역 세포 세력보다 암세포 세력이 커지면서 발병했을 확률이 높다. 어릴 적부터 손발이 찬 수족냉증이 있었는데, 그냥 '난 원래 손발이 찬 사람'으로 생각만 했지, 원인에 대해서 찾아보고 대응방안을 찾을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 체온 1도가 떨어지면 면역력 30%가 하락한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체온 1도를 올리면 면역력이 30%가 상승하니 운동이든 음식이든 체온상승효과 중심으로 찾게 되었다. (참고로 새집으로 이사 가면 어머니랑 부부 모두 사용할 돌침대를 어제 거금 주고 계약했다)
발끝 치기는 체온상승효과를 내는 가장 쉽고 간편한 운동이다. 말 그대로 양발 끝을 부딪치면 되는 운동이다. 발끝 치기는 혈액순환, 노안 개선, 불면증에도 좋은데 한 3천 번쯤 하면 허벅지가 탄탄해져서 남자에 특히 좋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는 1초에 2회 박자로 하면 딱 좋고, 숫자를 일일이 세면서 할 수는 없으니 108배 어플을 설치하고 소리에 맞춰서 한다. 맨 발로 하면 아플 수 있으니 수면양말 신은 체 하고, tv 보면서 앉아서도 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한다.
뇌종양 수술 이후 난 더 건강해졌다.
외형적으로는 과체중이었던 몸매가 표준체중으로 변했고, 살에 묻혀있던 안 보이는 턱선도 살아났다. 아직 몸의 근력량이 부족해서 근력운동이 필요하지만, 지금도 '어렸을 때 무슨 운동하셨어요?'라는 말을 여전히 듣기도 한다. 앞으로 더 건강해질 생각이다. 술도 끊고 운동도 하니 안 건강해지려야 안 건강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