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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Nov 30. 2016

이노션 퇴사 5개월 후

참 궁금한데, 아무도 안 알려주는 퇴사 이후 이야기

외동아들로 자랐기 때문일까?

난 어릴 적부터 누군가의 '조언' '가이드'에 항상 목말라했다.

학창 시절 형 누나에게 연애/공부/친구 관계 조언을 받는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누가 퇴사 이후 얘기를 해 주면 좋겠는데, 누구 없나?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노션 재직 시절, 힘들어하는 내게 아내가 해 준 얘기가 있다.

"이노션 좋은 회사야. 자기 또래 나이 직장인 중에서 연봉도 높은 편이고. 복지도 얼마나 좋아.

자기는 지금 힘들어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회사일 거야"

남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광고회사 이노션을 자발적으로 그만뒀다. 아내가 한마디 덧붙인다.

"요즘 얼굴에 뭐가 나네. 자기 힘들면 그만둬. 내가 벌면 되지"


여러 업계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공유를 받은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작성일이 6월 30일이니 오늘자로 정확하게 퇴사 5개월째다. 다시 보기 :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이노시안 포함해서 현재 광고회사에 재직 중이거나, 혹은 이러려고 16년 빡시게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업했나 자괴감 드는 사람이거나, 혹은 회사라는 이윤을 남겨야 살아남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지난 5개월 시간들을 돌이켜보려 한다. 지극히 개인 스토리이고 각자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내 히스토리를 통해서 각자의 삶을 한 번쯤 되돌이켜보거나 현재를 반추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5개월 전 많은 분들이 "이노션 그만두면 뭐 할래?" 물으면 자동반사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책 쓰고 집 지으려고요" 

그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것만 하고 싶었다. 나머지 수입적인 면이나 향후 직업에 대한 걱정을 미리 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1인 기업가다' 팟캐스트를 듣으며 출근하고, 요즘은 1인 기업으로 활동 가능한 시대라는 확신이 있었다. 40대 중후반에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할 바에는 40대 초반에 자발적으로 나와서 기질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게 좋다는 당위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간점검을 해보자.

Q. 5개월 후의 결론은?

A. 집만 잘 지어지고 있다.


나머지는 오리무중, 사면초가, 깜깜무소식, 장기전돌입 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 아니고 작금의 ㅂㄱㅎ보다는 희망적이다. 페이스북에 종종 따로家치(상현동 우리집 애칭이다) 진행률을 업데이트하면서 여러 가정에 염장질 했지만, 7월 중순 착공하고 12월 초에 입주 예정이니 애초 계획대로 된 셈이다. 역시 돈이 들어가면 알아서 진행된다.


단독주택 짓기 를 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어서 공유한다.


첫 번째. 건축주가 돼보니 클라이언트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

왜 견적서는 항목마다 따져 드는지, 왜 실행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의사전달이 안되는지, 왜 몇 번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지 광고회사에서도 기획과 제작이 불편하듯이 건축사와 시공사 관계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알겠더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 간의 클라이언트에게 좀 더 잘해줄껄 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두 번째. 일단 질러라. 지르면 방법이 생긴다. 

ㅂㄱㅎ처럼 우주의 기운까지는 아니지만 방법이 생기더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땅 바로 앞 놀이터에 꽂혀서 덜컥 계약했을 때부터 연초에 세웠던 자금계획보다 턱없이 부족한 금전적 위기가 몇 번 있었으나 (이걸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목돈이 생겼다. 좋은 건축사와 좋은 시공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건축사 재귀당 박 소장님, 시공사 맑은 주택 변 소장님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큰 결단과 아내의 큰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오는 12월 10일은 4번째 MRI를 촬영하려 강남 세브란스에 가는 날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병원에 가기 전이면 늘 긴장이 된다. 9시간 수술+27회 방사선 치료를 마친 후 두 번째 MRI를 찍었을 때다. 그 결과를 보고 주치의 홍창기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참 누가 수술했는지 깨끗하네요. 이제 99% 완치예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아프고 난 이후에는 건강을 제일 1순위에 두고 생활하고 있고,
현재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려 한다. 2년 넘게 아침저녁 녹즙을 갈아준 아내가 일등공신이다.

다시 보기 : 매일 아내의 정성을 마신다


비록 치맥 끊기가 힘들어서 무알코올 맥주에 치킨을 먹어도,

비록 혈액순환에 와인 한 잔에 좋다는 알면서도 시작하면 반 병을 마셔야 직성이 풀려도,

2014년 8월 25일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음을 자부한다. 항상 방심은 금물이라는 교수님 말을 되새기면서.

한라산 겨울 산행, 제주도 자전거 여행, 댄스 스포츠, 브레인 트레이닝, Lumosity, 스도쿠 등이 뇌종양 수술 이후에 한 건강 관련 활동이다. 
어제 댄스 파티 모임이 있었는데 댄스 스포츠를 취미로 즐기는 50대 선배들이 있었다. 시범종목 이외 제너럴 타임 때 왈츠, 탱고, 자이브, 차차차, 룸바 등을 즐기는 모습들이 아주 좋아보였다. 2011년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프로그램할 때부터 아내가 같이 배우자고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며 거절했었다. 댄스 스포츠를 접한지 이제 정확히 1년 됐는데 요즘 너무 재미있다. 원래 당구도 5~80점 수준일 때 재밌다더니 댄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향후 댄스 스포츠 지도자 자격증 취득해서 <댄스 스포츠를 통한 부부 컨설팅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싶다. 일단 내년에 3급부터 도전!


많은 분들이 퇴사 이후에 수입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고정수입이 없다. 그렇다고 밥 굻고 사는 것은 아니다.

9월 중순에 잠시 '아 다시 재취업해서 10월 급여를 받아야 되나?'라고 흔들릴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이노션 퇴사할 당시의 기분/감정/각오를 떠올렸다. 

'아 내가 그때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려 했었지'

'내가 지금 겪는 시행착오 들이 남들보다 빨리 겪는 거자나. 그만큼 빨리 돌파구도 생길 거야'

'이렇게 힘든 거 예상 못한 거 아니잖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면 해결책이 있을 거야'


인생 1 모작이 광고회사였으니 당장 광고일에서 손 뗄 수는 없다.

몇몇 온라인 광고 업계 회사에서 영업이사 역할도 하고 있고

몇몇 수행사와 코웍해서 디지털본부가 없는 종대사를 지원하기도 하고

일부 인연이 있는 기관, 단체에서 마케팅 관련 강의도 한다.


그렇다고 광고일만 하면 인생 2 모작이 재미있겠나?

대학원 동기가 올 7월 론칭한 여성의류 브랜드 어바니썸의 페이스북, 롯데마트몰 운영을 맡고 있고

이노션 때 인연을 맺은 이사님을 도와 B.duck 캐릭터 마케팅에 관여하고 있다.

작년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과정에 이어 올해 '성공 책 쓰기 플러스' 과정을 통해 집필 작업 진행 중이고

지금 준비 중인 1인 비즈니스가 내년 책 출간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중학교때부터 하고 싶었던 치아교정도 했다. 무한도전 볼때마다 유재석, 정준하도 치아가 저래도 잘 사는데 나이 먹어서 굳이 해야되나? 라는 생각으로 여태까지 살았지만 지금 안 하면 더는 못 할것같았서 이노션 퇴사하고 1주일 뒤에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1년 남짓만 참으면 된다. 

집 다락방을 집필실 겸 홈오피스로 활용 이외 에이비앤비에 올려서 부가 수익을 올릴 예정이다.

최근 에어비앤비 개편에 맞춰서 에버랜드에 가고자 하는 외국인이 타겟이다. 다른 호스트 후기를 보면 외국인 이용이 깨끗하다는 평이고 아이들에게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주기 위함인데 수익을 떠나서 운영해 볼 생각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글을 작성하고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지만 지난주 이 시간에 뭐했는지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여러 선배들이 회사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하지만 내 생각엔 불가능한 일이다. 회사일도 벅찬데 어찌 다른 일을 준비하는게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두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본인 건강이 최우선이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들을 무시하지 말고 귀 기울이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밥을 먹고, 입에 침이 마르면 몸속 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니 생수 두 잔을 마셔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면 빨리 병원에 보자. 잠이 부족하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오늘 밤은 무조건 9시 이전에 자라. 왼쪽 허리가 아프면 너무 오래 꾸부정 자세로 앉아있었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밖으로 나와서 햇볕을 받으며 걸어라.


둘째. 생긴대로 겸손하게 베풀며 살자.

이 문구는 옛날 매경 논설 제목이었데, 그 뒤로 내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내가 지금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도 누군가에 아들딸이고 누군가의 엄마 아빠다.

난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을 믿는다.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고 보는 편이다.


사람 인생 어찌 될지 모른다. 착하게 살자

생물 시간에 배웠던 수억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난 소중하고 고귀한 인생인데 남들 욕하는 시간이 아깝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도 짧고 아까운 인생인데, 나랑 상관없는 일과 생각을 하는 게 얼마나 낭비스러운 일인가. 이렇게 말하는 나도 지금까지 정치에 관심이 없던 나도 요즘 뉴스가 웬만한 예능보다 재미있어서 끊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얘기했지만, 단숨에 써 내려간 글이니 후회는 없다.


마지막으로 잡스 형님의 한마디로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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