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수성의 원천
: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스.케.치.북. 영어라고는 접해본 적이 없던 일곱 살에게도 '스케치북'이라는 말은 왠지 신나는 일이 가득할 것 같은, 별사탕이 입 속에서 톡톡 터지는 듯한 명랑한 느낌의 단어였다. 말에서 오는 기운 그대로, 새 스케치북을 손에 쥔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이 좋았다.
크.레.파.스. '크레파스'는 또 어떤가?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을까? 크레파스를 품고 잠에 들면, 밤새 꿈나라에서 아기 코끼리와 크레파스 병정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순수했고,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름만 불러도 좋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가지고 깨끗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었다. 흰 종이에 노란색 크레파스로 밑그림을 그리는 일은 특히 신났다. 아무것도 없던 흰 종이 위에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노랗게 펼쳐지는 그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흰 눈밭을 걷는 일보다 신나는 일이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종이 위에서는 불가능이란 없었다. 내가 초대하고 싶은 동물 친구들도 초대하고, 책 속 주인공들도 초대하고, 만나고 싶은 왕자님, 해님, 달님은 물론 우주의 먼 행성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렇게 종이 위의 세상에 한계는 없었다. 그렇게 꿈을 키우고, 상상력을 키우고, 마음을 키워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크레파스 냄새가 코 끝을 맴도는 듯하다. 새로 산 인형에서 나는 듯한 냄새, 공장에서 갓 생산해 나온 듯한 냄새, 그렇게 인공적이던 그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올해 일곱 살이 된 아들은 삼십 년 전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삼십 년 전의 내가 실컷 그리고 나면 온 손에 다 묻어나던 그 크레파스가 이제는 손에 묻어나지 않는 새로운 타입으로 바뀌었다. 그 때문에 손에 크레파스가 가득 묻어나는 추억은 나만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종이 앞에서 느끼던 황홀감, 행복감은 지금 같은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도 분명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초등학생 시절 전학을 몇 차례 다녔다. 옮기던 학교마다 지역 문화제의 일환으로 열리던 어린이 사생대회에 참석하곤 했다. 어느 날은 춘천의 의암 문화제에서 류인석 선생의 동상을 그리며 얼을 기리기도 했고, 영덕의 복사꽃 축제에서는 행진하는 취타대의 장면을 종이 위에 담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소양강 댐 아래에서 초록과 파랑 물감에 물을 흠뻑 묻혀서 산과 강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동상을 바라보던 나의 눈, 취타대의 음악을 듣던 나의 귀, 수채화를 그리느라 준비했던 자바라식 물통을 휘휘 젓던 붓을 쥔 나의 손이다. 그렇게 내 몸은 삼십 년 전에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만져본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사실이 나를 참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림 그릴 때 가장 순수하고,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빵집 중 '크라운 베이커리'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 당시에는 다니는 곳마다 눈에 자주 보이던 유명한 빵집이었다. 전국적인 체인점을 운영하던 그 빵집에서는 '어린이 그림 잔치'라는 이름의 그리기 대회를 열었었고, 부모님과 함께 빵집에 들어가서 대회 응시용 도화지를 받아왔던 적이 있었다. 그 도화지를 고이 집으로 가져와서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제출한 후에 받았던 진초록색 천가방은 초등학생 시절 내내 나의 보물이었다. 그렇게 그림과 얽힌 나의 추억은 시골에서 살던 소녀의 감성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고, 그때의 추억은 아무런 때 묻은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지 않은 순수한 열매의 속처럼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살던 지역의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참가했었고, 그 덕분에 아침 조회 시간에 상을 받는 일, 대회에 응시했던 나의 그림이 전시되는 일도 가끔 있었다. 하루는 교장실에 전시해둘 그림을 그려오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은 날이 있었다. 아침 등굣길이 되어서야 그 생각이 났고, 허겁지겁 커다란 종이에 크레파스 병정들을 나뭇잎에 태워주고, 바탕은 하늘색 물감으로 쓱쓱 칠했던 적이 있다. 아마 숱하게 그렸던 그림 중 잊혀질 그림이었을 수도 있는데, 엄마는 나의 성장 과정 중간중간에 그날의 일을 말씀하시며, 너는 그렇게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아침 등교시간 5분 만에 종이를 가득 채워 너의 세상을 펼치던 아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종이와 그림 도구들 한가운데에서,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는 냄새, 소리, 촉감, 모습, 맛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어쩌면 일곱 여덟 살 무렵 당시의 그림 소재들과 그림 도구들에 그 뿌리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내가 화폭에 담던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때 했던 상상력만큼 나는 상상할 수 있으며, 그때 내가 눈으로 보았던 것만큼을 관찰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나의 오감으로 느끼고 모두 그림으로 표현하던 일곱 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손짓을 한다. 더욱 마음껏 그리고, 더욱 상상하고 싶은 만큼 상상하라고. 그림을 그리는 만큼, 표현할 수 있는 만큼 나의 삶도 자유로워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