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 발견한
색채의 바다

컬러의 발견, 눈을 더 크게 뜨고 살게 된 계기

by 바이올렛


200406_Brandon.png 나의 비주얼 씽킹 (바이올렛)





어른이 되어서 발견한 색채의 바다



어릴 때는 온 정성을 다해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하더라도, 크면서 그림을 이어서 그린다는 것은 그것을 전공으로 삼느냐 아니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좋아하던 소녀의 마음은 점점 작아지게 되었다. 그때의 마음이 작은 불씨였다면, 그 불씨는 서서히 작아지다가 심지에만 빨간 기운을 머금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후 학업과 취업의 바다에서 열심히 노를 저으며 내가 머물 수 있는 작은 섬을 찾던 결과 나에게는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고, 그때 '색채'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호기심을 안은채 참여하게 되었다. 서울의 한 여대에서 받았던 그 교육은 학부 시절 공대를 졸업한 나에게 무척 새로운 장소였다. 교육 그 자체보다, 어쩌면 그 내용이 담기는 학교라는 그릇에 더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군대를 다녀온 고학번 선배들밖에 보이지 않았던 나의 대학 생활과는 다르게 캠퍼스 곳곳, 학교 앞 거리에는 온통 감성적인 대학생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그런 장소에서 받았던 교육이어서였을까? '색채, 컬러'라는 단어는 내게 그렇게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강사님 한 분 한 분께 들었던 색채가 활용되는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 색채를 주제로 한 연구 이야기, 색채의 변화에 따른 사용자의 심리 등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다양한 컬러 이야기들로 나는 매주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의 강의 내용도 인상 깊었지만, '색채'를 이야기하는 강사님들의 공통점을 찾는 일도 내겐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고 조용한 듯했지만 자신의 업무, 연구 주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또렷하게 강조해서 말씀하셨었고, 색을 직업적으로 관찰하고 탐구하는 분들이었기에 연구실은 색채 자극이 적은 회색으로 꾸며두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색 사이에서 미묘한 변화를 찾고, 때로는 측색기를 이용해서 색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일은 내게 아주 매력 있는 일로 인식되었고, 호기심을 안고 시작했던 과정은 '색채디자인 전문가'라는 거창한 이름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컬러리스트


색채의 매력, 색채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매력, 색채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매력에 빠져서 나도 어떻게 하면 교육 이후에 이 분야를 더 확장해볼 수 있을까 하다가, '컬러리스트 기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교육을 마치고 아직 배운 지식이 다 사라지기 전에 자격증을 준비하면 공부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고, 좋은 결과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퇴근 후에 기출문제를 살펴보고, 주말에는 재료를 준비해서 책상 가득 종이와 포스터 칼라, 붓, 물통을 펼쳐두고 본격적으로 색을 만들고, 섞고, 칠했다. 어쩌면 그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평일 낮의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일,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때로는 우리를 잘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포스터 칼라의 색깔을 그대로 칠해보고, 내 눈과 마음에 그 색을 그대로 저장시켰다. 더 옅은 색과도 섞어보고, 더 짙은 색과도 섞어보고, 때로는 흰색, 때로는 검은색을 섞어보며 기존에 알고 있는 순색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나의 붓으로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색깔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필기시험은 기출문제를 살펴보며 색채 교육에서 받았던 내용을 상기하며 합격할 수 있었지만, 정말 난관은 실기 시험 두 번째 시간인 조색 영역이었다. '조색'은 제시된 색을 눈으로 파악한 후, 포스터 칼라의 색을 조합해서 똑같은 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분명 내 눈에는 오렌지 색으로 보이는데, 그 속에는 '파란색'이 한 방울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빨간색도 다 같은 빨간색이 아니라, 파란색이 섞인 빨강, 노란색이 섞인 빨강이 다 다르다는 것을 수도 없이 연습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조색'을 하면서 처음에는 좌절했다. 색을 눈으로 보고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것을 파악했다고 해도 다시 물감으로 똑같이 재현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색채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보고 싶은 나의 마음, 단 한 방울의 물감이 섞여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어 하던 나의 눈, 물통과 마른 수건, 새로운 물감 사이를 분주하게 누비던 나의 손은 차츰 조색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는 와중에 몇 번의 주말을 물감과 씨름하며, 물통을 수차례 비우고 새로 맑은 물을 떠 오던 과정에서 나는 색채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생소해하던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그동안 보던 세상이 온통 다른 수만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더 생생히 느끼게 되었고, 자연이 만들어낸 색,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색 사이의 관계 속에서 오는 조화와 어색함을 더 눈여겨보게 되기도 했다. 꼭 인간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 건 그때쯤부터였다. 서로 다른 빛깔, 색깔을 간직한 우리들은 때로는 색상 조화를, 때로는 극명한 색상 대비를 이루기도 하지만 자신의 색을 내뿜으며 살아간다는 큰 공통점을 가지고 이 세상을 구성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색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있고, 다양한 인생관,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며, 그렇게 나의 색채를 향한 사랑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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