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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l 23. 2019

8. 라이온킹을 찾아서

에토샤 국립공원, 나미비아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장면이 무엇일까? 아마도 '동물의 왕국'이라는 문구와 거칠게 달리는 야생 동물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수많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영향 때문인지 '아프리카 = 동물의 왕국'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여정에서는 동물의 왕국은커녕 황량한 사막뿐이었기에 도대체 언제쯤 아프리카의 진짜 주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 여행지를 선정하기 위해 지도를 펼치고, 머물고 있던 스바코프문트의 북쪽을 보니 거대한 크기의 에토샤 국립공원(Etosha National Park)이 눈에 들어왔다. 나미비아 관광청에서 준 지도에는 에토샤 국립공원 아래에 세계 최대의 야생동물 보호 구역이라는 수식어가 쓰여있었다. '두근두근'. 원래 계획되어 있었던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는 과감히 패스하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당연스럽게 에토샤로 결정되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스바코프문트에서 에토샤까지는 500 km가 조금 넘게 떨어져 있었다. 부지런히 달리면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었지만 시간이 넉넉한 장기 여행자는 그리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야생의 세계에 해질 무렵에 도착하는 것이 살짝 겁이 나기도 했고, 비싼 입장료를 생각하면 에토샤 직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들어가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느긋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캠핑 장비를 걷어서 차에 싣고 스바코프문트를 떠났다. 역시나 나미비아의 도로 위에서는 지평선 넘어까지도 인적을 찾기 힘들었고, 아주 가끔씩 반대 차선에 차가 지나갈 때면 반갑기까지 했다. 한참을 운전하다가 왠지 휴게소 호두과자를 먹어야 할 것 같은 시점에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었다. 가끔씩 'Rest Area'라는 도로 표지판으로 나를 설레게 해 놓고는 덩그러니 벤치만 있는 곳이 전부였다. 아침에 길을 떠날 때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참 배고픈 이동이 될 뻔했었다.


나미비아 고속도로(?)의 휴게소. 그나마 그늘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너무 느긋하게 달렸던 탓인지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100 km 정도 떨어진 아웃조(Outjo)라는 동네에 도착할 때쯤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캠핑 여행자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몹시 조급해진다. 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에 텐트를 완성하고 식사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주변 캠핑장을 찾다가 꽤 괜찮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을 만날 수 있었다. 캠핑장에는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불을 지피며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내일 아침이면 에토샤로 향하는 듯이 언뜻 봐도 '우리 내일 사파리 가요~'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도 질 수 없어 장작을 활활 태우고 발갛게 달아오른 숯 위에 고기를 구우면서 야생의 삶을 따랐다.


느지막이 도착했던 아웃조의 캠핑장. 아프리카 캠핑장에는 어느 곳이나 바베큐 그릴이 있다.


 요란한 새소리에 일찍 일어났다.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 드디어 라이언킹을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에 자연스레 서두르게 되었다. 이제 텐트를 정리하고 차에 짐을 싣는 일은 너무도 익숙해졌다. 내가 텐트를 정리할 동안 아내가 아침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하고 같이 식사를 마친 후에 교대로 씻고 짐 정리를 하면 1시간 이내에 출발 준비가 완료된다. 곧장 쉬지 않고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에토샤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소문대로 입구에는 긴 자동차 행렬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야생 동물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생고기 같은 음식이나 사냥 도구 등을 지니고 있지 않은지 꼼꼼하게 검문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드론 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 수색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에토샤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일출 시간에 열리는 에토샤 국립공원의 입구. 검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우리나라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합친 크기의 지상 최대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에토샤 국립공원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350km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넓다. 그래서 에토샤에서는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하며 공원의 곳곳을 누비면서 야생 동물을 관찰하는 셀프 사파리 투어가 일반적인 여행 방식이다. 물론 공원에서 운영하는 사파리 투어가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야생 동물을 만나는 여행을 선호한다. 광대한 규모의 공원에서 동물들을 만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동물들은 목을 축이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물 웅덩이를 찾기 때문에 공원 입구에서 나눠준 지도를 보고 물 웅덩이(이하 워터홀)만 잘 찾아다니면 야생 상태의 동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공원 내에는 6개의 캠프 시설이 있고, 몇몇 캠프는 야간에도 안전하게 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워터홀을 끼고 있어서 야행성 동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에토샤 동부 지역. 파란색 점이 동물들이 모여드는 물 웅덩이를 표시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주인공들이 공룡의 세계에 들어가는 장면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야생의 세계에 입장했다. 워낙 넓은 공간이기에 쉽사리 동물 들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쪽 입구인 안데르손 게이트로 입장해서 가장 가까운 캠프인 오카우쿠에조(Okaukuejo)까지 가는 길을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룩말 무리를 발견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얼룩말 친구들은 너무 자주 만나서 처음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얼룩말, 스프링복, 쿠두 무리를 지나칠 때마다 가서 서다를 반복하며 오카우쿠에조 캠프에 도착하니, 이미 우리처럼 들뜬 모습의 여행자들이 서로가 본 동물들을 자랑하기 여념이 없었다. 우리도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고 워터홀 탐사에 나섰다.


 지도로 봤을 때는 금세 다 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에토샤 국립공원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워터홀 간의 거리는 웬만한 도시 간의 거리였기에 비포장 도로를 한참을 달려야 다음 워터홀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중간중간에도 수많은 동물 들을 만날 수 있기에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지체되지 않도록 시간 관리가 필요했다. 오카우쿠에조 캠프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첫 번째 워터홀인 Nebrownii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수많은 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워터홀 근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이 물가에 모여 목을 축이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속의 장면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생경한 풍경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야생 동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동물원의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슬픈 눈의 동물들이 떠올랐다. 물론 안전한 환경에서 먹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내고 있겠지만 그들이 원래 어떤 곳에 있었는지를 보고 나니 다시는 편안한 마음으로 동물원에서 그들을 마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동물의 왕국의 한 장면 같지만 에토샤에서는 평범한 풍경이다.


 한참 넋을 놓고 무리를 바라보다가 다음 워터홀로 향하기 위해 차를 돌리던 중에 길 가운데에 멈춰서 있는 앞차를 보고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사바나의 왕! 사자가 어슬렁 거리며 앞차의 옆을 지나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사자는 에버랜드 사파리에 있는 사자와 달리 언제든지 사람을 향해 발톱을 세울 수 있는 야생 동물이기에 바짝 긴장이 되었다. 커다란 몸집과 고약한 악취에 저절로 몸이 움츠려들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공원 입구에서 안내하던 직원이 절대 차에서 내리면 안 된다고 경고했던 말이 실감이 되었다. 야생 동물과 인증 사진을 찍으려다 자칫 영정 사진이 될 수도 있기에 아무리 답답해도 안전한 캠프가 아닌 곳에서는 절대 차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라이언킹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관광객을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나무 그늘로 들어가 누웠다. 다행히 사자는 배가 고프지 않았나 보다. 근처의 얼룩말이나 스프링복과 같은 초식동물들도 긴장한 기색 없이 사자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먹을 만큼만 사냥을 하고 불필요하게 다른 동물을 해치지는 않는 것이 이곳의 규칙인 듯했다.


에버랜드 사파리 아니다. 진짜 야생 사자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 백수의 왕. 내가 아는 어느 백수의 모습과도 비슷한 듯.


 숙박지로 잡은 나무토니(Namutoni) 캠프는 동쪽 끝에 있었기에 워터홀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동쪽으로 이동했다. 찾아간 워터홀마다 다양한 동물들이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기린 가족들이 모여 넓게 다리를 찢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무리 지어 나타난 얼룩말들에게 자리를 뺏겨 삐죽거리며 도망가는 멧돼지 형제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했다. 우리도 물을 마시고 점심을 먹기 위해 중간 기점으로 잡은 할라리(Halali) 캠프를 방문했다. 앞서 말한 대로 에토샤의 캠프에는 동물들의 모습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워터홀이 붙어 있다. 할라리 캠프의 뒤편에는 Moringa라는 이름의 워터홀이 있었고 워터홀이 내려다 보이는 얕은 언덕 위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늘에 몸을 숨기고 쉬고 있는 동안에도 많은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오고 갔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을 텐데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을 마시고 시크하게 쳐다보고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동물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들이 우리를 관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라리 캠프 뒤편의 모링가 워터홀. 저기 벤치에 앉아 있으면 알아서 동물들이 방문해 주는 자동 사파리.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사바나를 차를 타고 돌아보는 사파리 투어를 게임 드라이브라고 하는데, 게임 드라이브에서 만나는 동물 중에 가장 인기 있는 녀석들을 Big 5라고 부른다. 보통은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를 말하는데 에토샤에는 버팔로가 없기 때문에 나머지 넷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은 주변을 열심히 둘러본다. 역시나 육식동물은 개체수가 적고 항상 숨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사자나 표범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운 좋게도 사자 가족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표범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Big 5 중에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동물은 사자가 아니라 코끼리였다. 덩치도 크고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이라서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계속 비포장 도로를 차로 달려서 조금 지쳐 있을 무렵, 초식 동물들이 모여있는 작은 워터홀 앞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동물들을 바라보며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워터홀 너머의 숲이 흔들리더니 코리끼 가족들이 숲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내가 타고 있는 차를 한참을 응시하더니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다가와 물을 마시고 진흙 샤워를 시작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야생의 쇼가 정말 놀라웠다. 한참을 머물던 코끼리 가족은 다시 몸을 돌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산신령이 다녀간 듯한 신비로운 현장 앞에서 아내와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가 대장이다. 나타나면 모두 길을 비켜준다. 사람도 예외 없다.


 코끼리 가족이 떠나고 우리도 차를 돌려 해가 지기 전에 나무토니(Namutoni) 캠프로 들어갔다. 나무토니 캠프는 독일 식민지 시절에 세운 요새에 만들어져 있어서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몬스터들을 피해 마을로 피신하는 느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사바나 초원 가운데 하얀색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 주변으로 넓은 캠핑장과 숙소, 수영장, 레스토랑이 깔끔하게 갖춰져 있었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던 중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얼른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고 요새의 성곽으로 올라갔다. 해가 지는 모습은 어디서 봐도 황홀하지만, 멀리 코끼리와 기린의 실루엣이 보일 것만 같은 아프리카 초원의 석양은 더 신비로웠다. 해가 지자마자 멀리서 길게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밤 동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100여 년 전 독일군이 세운 요새를 아직도 잘 보존하여 활용되고 있는 나무토니 캠프


아프리카 사바나의 석양


 저녁을 먹고 정리를 마칠 때쯤에는 해가 완전히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어스름한 가로등 길을 따라 나무토니 캠프에 붙어있는 King Nehale 워터홀에 찾아가 어둠 속에 숨을 죽이고 동물들을 기다렸다. 낮에 비해 찾아오는 수는 적었지만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동물들이 보였다. 실루엣 만으로는 무슨 동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칼이나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들이 빛나는 눈을 가지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워터홀과 캠프 사이에는 전기 담장이 있지만 언제라도 훌쩍 넘어서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올 것만 같았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텐트로 돌아왔다. 자려고 누웠지만 얇은 텐트의 천 너머로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이라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실감 나는 야생의 캠핑이었다. 텐트 문을 열고 동물들이 보고 있을 하늘을 나도 같이 보면서 잠들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캠프에 붙어있는 워터홀은 야간에도 문전성시. 그런데 잘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토니 캠핑장. 다들 셀프 게임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자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 사이에 손님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었다. 대충 정리해 놓은 식기들은 잔디 위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고 여기저기 음식을 찾아 물건들을 흐트러트린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캠프의 경계를 피해서 들어올 수 있는 작은 자칼이나 원숭이들의 소행이었으리라. 문을 열고 잤더라면 밤의 불청객을 만날 뻔했다는 생각이 드니 섬뜩했다. 아침을 챙겨 먹기 전에 얼른 모자를 눌러쓰고 캠프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이른 아침의 사바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동물들은 부지런했다. 캠프 밖에서 제일 먼저 만난 기린 가족은 긴 목을 휘청이며 워터홀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따라간 워터홀에는 일출과 함께 기상한 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북적이고 있었다. 뜨거운 낮에는 어디 숨었었는지 보이지 않았던 새들도 잔뜩 몰려나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도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초원에는 이미 활기가 가득했다.


이른 아침에 만난 기린 가족을 따라가 보았다.
아침 일찍부터 워터홀은 동물들로 활기차다.


 워터홀의 아침 손님들이 뜸해지자 우리도 캠프로 돌아가 식사를 했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짐을 정리하고 아직 만나지 못한 Big 5를 찾으러 나섰다. 떠나기 전에 표범을 만나고 싶었지만, 숨은 그림 찾기 하는 심정으로 풀숲과 나무를 유심히 살펴봐도 도무지 표범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못 가봤던 워터홀을 방문하는데 반대 차선에서 오던 차가 멈추더니 흥분한 표정으로 앞쪽에 사자가 나타났다며 얼른 가보라고 손짓을 해줬다. 어디서 사자가 덮쳐올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100미터 정도 가니 멀리 작은 풀숲에 앉아있는 사자가 보였다. 저 사자는 배가 고픈 사자일까? 아닐까? 나를 노려보면서도 가만히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배가 부른 사자인 것 같았다. 그는 필요한 것 이상을 바라지 않고 만족이라는 느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앉아서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위엄과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힘이 센 맹수라서가 아니라 사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특별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기가 빠져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게 차를 돌려 나왔다.


그늘 아래에서 나를 노려보던 배부른 사자.


 에토샤 국립공원은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처음 호랑이를 봤던 나로 되돌아 가게 만들어 주었다. '와! 기린이다!', '얼룩말이 달린다!' 하며 아이처럼 좋아하며 동물을 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어릴 때와 달리 내가 어른되고 나니 저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동물원의 동물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동감 넘치는 활기 뒤에는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었다. 문득 잠시 동물원을 벗어난 나에게는 저들과 같은 생동감이 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긴 여행 끝에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생각이 많아지는 곳이었다. 부디 언제 어디서든 야생의 활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에토샤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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