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주 : 퇴근
직장인이 저녁을 차려 먹는다는 건 맘처럼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시 퇴근을 해야 하고,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지 않아야 하며, 퇴근 후 요리를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약간의 요리 실력까지 더해진다면 조금 더 만족스러운 저녁을 차려 먹을 수 있겠지만, 일단 퇴근부터 제때 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2019년의 나는 위에 나열한 '저녁을 차려먹기 위한 직장인의 기본 조건'과 정확히 반대였다. 정시 퇴근이란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였고, 출퇴근 시간은 왕복 4시간이나 됐다. 그럼에도 나름 체력은 있었는지 9시쯤 집에 도착하면 가방만 벗어둔 채 저녁을 차려 먹곤 했다.
당시에는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리 실력이 부족했지만, 차려 먹는 저녁은 매번 맛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2시에 점심을 먹고 9시간 만에 텅텅 빈 위장을 채웠으니까, 뭔들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포식을 하고 10시쯤 되면 소화를 시켜야 한다는 명분과 여가 생활을 즐겨야 된다는 압박감이 더해져 한참을 사부작 거리다 새벽 1시가 넘어 잠들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지루한 생활의 반복. 피로가 복리로 쌓이는 마법 같은 생활 패턴이었다.
그렇게 자취를 시작한 이후 퇴사하기 전까지 약 1년간 신체적, 정신적 피로가 켜켜이 쌓이는 생활을 했다. 지금은 출퇴근 시간이 왕복 1시간이기에 과거의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주린 배를 부여잡고 도로 위에서 보냈을까.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저녁을 차려 먹는 일이 조금은 버틸 힘을 줬던 것 같다. 지칠 대로 지친 사회 초년생에게 차려먹는 저녁 한 끼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유일한 보상이자 일종의 탈출구이지 않았을까.
여전히 저녁은 차려 먹는 편이지만, 출퇴근 시간이 짧아지며 예전의 저녁밥 맛이 나지는 않는다. 소박한 저녁이 보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덜 피곤한 건지, 그저 나이를 먹고 감정이 무뎌지고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글쓰기 모임 <이주>
이 주에 한 편씩 생각을 글로 옮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