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발생한 정치사회적 사건 중 가장 황당한 일로 기록될 것 같다. 나중 역사가들은 2024년 12월 3일 밤 여섯 시간에 여의도에서 일어난 이 불행한 사태를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기존의 분석체계를 포기하고 새 이론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사태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정리된 자료와 관계자들의 신뢰할 만한 증언 또한 부족해 이해조차도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수의 언론 보도 등으로 확인된 사실들을 통해서 계엄령 주동자가 오랜 기간 폐쇄된 가상공간 안에서 극우 망상에 몰입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를 6일 공개했다. (행안위 제공)
가상공간은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유통되지만 언제나 이런 개방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가상공간 역시 물리적 공간처럼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실체라서 이 공간 안에도 권력과 자본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특정 상품을 한 번 검색하면 유사한 상품이 계속 노출되는 것은 자본이 이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권력 또는 이데올로기 역시 이 공간을 전유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 유통한다. 특정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하면 알고리즘에 의해 유사한 성향의 콘텐츠가 계속 이어진다.
알고리즘에 의해 계속 노출되는 정치 관련 콘텐츠를 무비판적으로 보게 되면 어느 순간 가상공간은 천사와 악마로 이분화된다. 자신과 뜻이 같은 사람들은 절대 선이 되고 반대편은 절대 악이 된다. 이런 이분법적 구별이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외교와 국방은 방향이 다를지라도 저출생과 주택문제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위해서 거짓 뉴스 생산도 개의치 않는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톡 등 개방형 SNS, 폐쇄형 SNS 모두 다 가짜뉴스 확산에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 가짜뉴스 중 하나가 부정선거 관련 내용이다. 계엄령 발동 원인 중 하나다.
SBS '8뉴스' 12월 5일 보도화면 갈무리
이번 계엄령 발령 시 과천 선거관리위원회 청사와 경기도 수원 선관위 연수원, 서울 관악구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총 297명의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계엄군이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297명은 국회로 파견된 계엄군보다 큰 규모다. 과천 선관위에 진입한 계엄군은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했고 서버 등 내부 장비를 촬영했다. 이들 정보사 소속 계엄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지시에 따라 선관위에 투입됐던 것으로 알려줬다. 김용현 전 장관이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낸 이유는 분명하다. 김 전장관은 SBS와 메신저 인터뷰에서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관련 수사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지난 4월 10일 총선에 부정행위가 있었고 현 사법기관 시스템으로는 ‘진실 규명’을 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특수 상황’을 만들어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총선 이후 극우 유튜버들의 단골 메뉴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혼란은 거대 야당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거대 야당은 선거 조작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만 이루어진다면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 이 혼란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끈질긴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일부 유튜버와 그들의 동조자만 믿는 가짜뉴스의 전형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부정선거가 가능하려면, 선관위 직원, 각 후보 측 참관인, 개표 위원장 등이 공모해야 한다.
[단독] 직원들 사진 들고 쫓아다녔다‥선관위 침탈 전모 (12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거짓 뉴스가 가득한 가상공간에서는 진실로 포장되어 끊임없이 유통된다. 이번 계엄령 주동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일부 주도 세력들은 이 가상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짜뉴스에 포섭되었다. 그나마 포섭된 상태에서 멈췄으면 좋았는데 이들은 일종의 광신도가 되어 현실 공간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광신도들에게 문제 해결 방법은 이교도 처벌밖에 없다. 가상공간에서 선과 악밖에 없는 것처럼 물리적 현실 공간에서도 선과 악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는 일종의 착각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 악은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니다. 총과 칼로 굴복시켜야 할 대상일 뿐이다.
계엄은 일부 유튜버들이 만든 가짜뉴스에 이성을 잃은 몇몇 사람이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을 구분하지 못한 망상 상태에서 벌인 끔찍한 반국가 행위다. 개인의 경우에는 악성댓글과 메시지 폭격으로 끝나지만, 권력의 경우 이처럼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든 국민에게 전가된다. 공간은 모두의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특정 계층 또는 집단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도구가 아니다. 가상공간과 물리적 현실 공간, 어느 경우에도 공간을 장악하려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유통되는 가짜뉴스의 폐해가 사람을 얼마나 극단적 선택으로 유도하는지 분명하게 목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