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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Jun 14. 2016

정신적 왼손잡이 #28. 생일의 변천사

 20160610. 생일의 변천사

20130610. 2N번째 생일.
휴학생. 


생일 종료 약 30분 전. 

생일이라는 것은 어릴 때부터 늘 특별하게 챙겨 왔다. 그래서 혼자 서울로 대학을 왔을 땐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그 쓸쓸함에 익숙해져야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 생일마다 난 어떤 계기로든 생일 케이크와 다양한 선물들을 받았고, 내 고등학교 한 학급 수 이상을 넘는 사람들에게서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생각보다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은, 아주 진귀한 날을 보냈다.


모든 특별한 일들이 그렇듯이, 이것이 끝나갈 즈음이 보이면 참 허무하고 허탈해지기 일쑤다. 번아웃 신드롬이라 하던가 그걸? 돌아보면 오늘 과연 기억에 남을 일을 했는지, 뭘 했는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참 오늘도 여느 주말, 혹은 여느 평일과 다름없는 어느 하루였다. 내심 '아 뭔가 생산적인, 혹은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할걸'이라는 강박도 든다. 사실 내게 필요한 건, 수많은 사람들의 인사에도 그랬듯이, 나로부터 사람들이 보고 있는 '열심히 산다'는 모습, 그것도 중요하다. 그만큼 열심히 일도 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놀기도 해야', '쉬기도 해야'한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수많은 축하와 인사, 정다운 선물과 말들, 눈빛과 손길 속에서 잘 '쉬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생일이 아닌 다른 날들이 펼쳐지겠지만. 또 변함없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치열하게 부딪히는 날들이 올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전해준 오늘의 다정함과 사랑과 휴식을 잊지 않을게요.




20140610. 2N+1 번째 생일. 
가정의학과 1차 치료 시작.


돌아온 2N+1 번째 생일이다. 나는 항상 생일이란 생의 확인이라 생각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호사스럽게 축하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로 흘려보내기도 아까운 그런 애매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모든 '~번 째 생일'이란, 내가 그 기한까지 무사히 살아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데 그걸 공공연히 생각하는 사람은 잘 없고. 나는 아마 내 인생 최악의 어느 시기를 겪고 나서 그런 전제를 평소에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아주 열심히 살지는 않지만.) 내가 소심하고 다소 음침한 면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나의 고민과 하루, 넓게는 인생을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전제다. 


 올해도 수많은 일과 사람들이 함께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새로운 일도 가득하다. 그 일들을 헤쳐나가는 동안 저항을 통과하는 전하가 열을 내듯이 여러 가지 열병도 앓아야 할 것이다. 역시, 4학년 1학기이고, 이제 정말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에 뭔가 말년 증후군(면제자 주제에 이런 단어 선택이 건방질 수 있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가장 적확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사용합니다) 같이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혼란에 휩싸여 있다. 비록 작년 휴학 때 옴팡지게 게으름을 피웠긴 하지만 그 게으름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당장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모든 게으름도 허튼짓도 지금의 나에게 좋은 자양분과 뿌리가 되어있다. 즉, 게으름도 인생에서 중요하다. 


생일이 지나가는 아쉬움은 해마다 줄어든다. 조금씩 생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되고 있다. 시험기간 탓인지도 모른다. 생일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내가 어느 나라의 왕비급으로 성대하게 추대받으며 고가의 선물을 누려야 할 날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그렇게 나를 특별하게 생각이라도 해주길 바란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내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내 일생에 위잉위잉,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로 대단하고, 내 곁에 두고 싶고, 많이 고마운 사람입니다,라고.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문구점에서 반짝이 포장지로 포장한 각종 노트와 색연필을 팔 한가득 받았을 때의 그 환희는 다른 형태로 자랐다. 2N+1살의 나에게 그런 생일의 환희란, 좀 더 추상적이고 미묘한, 다소 자위적인 부분도 있는 것이다. 남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 말지 알게 뭐야. 그렇지만 생일의 24시간 동안, 나는 타인에게 있을 가장 간단하고 가느다란 선과 사랑을 믿는 기회를 얻는다. 그래도, 인생에 그런 날 하루쯤은 있어도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지나가는 시간을 목도하면서.


작년도, 그리고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타인의 생일에 너무나 무감하고, 나의 생일에는 스스로에게 천착하곤 합니다. 감사함과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어리숙한 부분 때문입니다. 2N+1번째 나의 고민과, 나의 생애와, 그리고 그런 사랑과 선을 베풀어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20150610. 2N+2번째 생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시작.


나의 요원한 목표는, 생일날과 제삿날을 최대한 같게 맞추는 일이다. 후세의 사람의 편의, 혹은 시대의 천 위에 나의 얼룩을 최대한 덜 남기고 싶어서다. 그래서 T.S.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지만 난 6월 1일이 밝아오는 그 날부터 늘 긴장하고 있는 편이다. 현충일이 국내 유일하게 조기를 게양하는 국경일인 것도 나의 공포에 한몫을 해준다.


생일이 일 년의 한 분절점 즈음에 있는 것은 더욱 나를 자극한다. 지난날 동안 뭘 했는지를 생각하고, 앞으로 더 살아도 좋을지, 뭔가가 얼마나 나아질지를 점쳐보기 좋은 시기다. 난 몇 가지를 내려놓고 몇 가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것이 잘한 일인지를 돌아보며 오늘의 피로를 즐겼다.


네 시간 동안 드럼 셋을 두들긴 후유증도 오래간만에 단골 일식집에서 즐긴 청하도, 별처럼 헬 수 없이 많은 이야기도 내일 찾아올 숙취도 다 즐겁기만 하다. 이것이 몇 번째 생일인지도 앞으로는 어떨지도 느끼지 못할 , 그냥 술이 당겼던 어떤 날, 몸을 마구 움직이고 싶었던 그런 날이기를. 난 생일이 특별하길 바란 지 오래지만 이젠 생일이란 것이 평범해질수록 더욱 편안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수년 전의 이날엔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백성이 땅을 구르며 일어났다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최후의 외침으로 시민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오늘의 난 황제도 백성도 시민도 못될 세계의 작디작은 한 편린이다. 그저 소실되지 않고 어느 자리에 있음을 진득하게 바라고, 그것에 밀착하고 생의 갈구를 계속하는 일로 그만한 대의를 스스로 얻는 자기 위안을 갖는다. 


난 어떤 연유로든 작년보다 더 살고 싶어 졌다. 숫자와 시간과 수량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그것을 떨쳐야 함을 안다. 떨치고 일어나지 못해 넘어질지라도, 20대의 어느 등분점에서 새로운 시기-어느 분수령에 왔음을 인정하고 그걸 이겨야 함을 안다. 넘어지더라도 깨지지 말아야겠다. 깨지더라도 흩어지지 말고, 흩어지더라도 피 흘리지 말고, 피를 흘리더라도 스스로 포기하진 말아야겠다.


2N+2번째.

잘 살아남았다.




2016년 6월 10일. 2N+3번째 생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1년 차


 새벽에 종로 한복판에 넘어졌다. 요 몇 주 내내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이며 썼던 글들, 내뜻대로 하나도 되는 게 없는 일상, 먹고 자고 숨 쉬는 것도 힘든 저질체력, 꾸준한 가난에 야위어가는 이상향 같은 것들이 함께- 콘크리트 바닥 위로 넘어졌다. 처음엔 웃었다. 시X 내가 새벽에 길바닥에 넘어지기를 다 하네, 하고. 근데 나중엔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대로 엉엉 울었다. 이게 뭐냐고, 이게 뭐 하는 인생이냐고, 자살해버리고 싶다, 자살해버릴 거다, 죽어버릴 거다, 살기 싫다, 소리를 꽥꽥 질렀다. 울었다. 그렇게 2N+3번째 생일은 수미상관의 구조로 시작했다. 태어났을 때도 열심히 울었을 테니까.

갓 태어난 아기가 울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목에 이물질이 걸려 질식사하는 경우. 새벽의 난 뭘 뱉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정작 지금은 목이 잠겼지만.) 이렇게 살기 싫고, 지금보다 달라진 나로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어서 화가 났나. 게다가 새벽의 동행인은 그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차라리 더 개운하게 공룡처럼 엉엉 울 걸. 그러면 오후가 좀 덜 쓸쓸할 텐데.

  

생일에 죽음을 함께 떠올리는 건, 아무래도 철학을 가장한 허세 같지만. 생일이 1년의 중간쯤이라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돌아보기가 좋다. 더 살만한 여력이 있나? 살 이유와 기력이 있나? 2년 전쯤부터는 그 대답에 확신이 없어서, 축하에 감사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생일을 숨기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리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힘이 들어도 고마운 날이었는데, 올해는 아무래도 - 목적도 없이 미안한 날이다. 


생일은 4시간 30분 남았다. 저녁밥이라도 챙겨 먹으면 미안함이 덜어질까.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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