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D-Day. 퇴사하는 날이다. 나는 이 회사와 관계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회사를 상징하는 그 어떤 물건도 집에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나의 작두콩.
퇴사하기 7개월 전. 얼떨결에 나는 작두콩을 심었다. 광고주의 브랜드 명이 새겨진 작두콩을 소비자에게 나눠주는 이벤트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참나, 진짜 하다 하다 별걸 다하네. 이제 회사에서 작두콩까지 심어?'
슬리퍼를 느리게 질질 끌며 작두콩 3개를 들고 탕비실 구석으로 가서 사용설명서를 펼쳤다. '흙 속에 엄지손가락 만한 구멍을 만들어 작두콩을 쏙 넣어주세요. 작두콩을 흙으로 충분히 덮어주고 3~4일 동안 물을 충분히 주세요.' 설명서에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화분마다 네임펜으로 1번, 2번까지 적다가 휙 지웠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내 이름과 팀원들의 이름을 적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자라라. 물을 흠뻑 적셔주었다.
관찰일기를 쓰는 초등학생이 된 것 마냥 3일 동안 작두콩을 지켜보다 4일째 되는 날 소리쳤다. "이거 봐봐요! 내 이름이 적힌 화분에만 싹이 났어요!" 호들갑을 떨며, 나머지 2명을 불러 모았다. 팀원들은 그냥 쓱 한번 쳐다보고 '정말 그렇네요.' 같은 무미건조한 말만 남기고 스르륵 사라졌다. 내 작두콩은 유튜브 재생속도를 2배로 설정해놓은 것 마냥 성장 속도가 빨랐다. 어제는 분명 손톱만 했는데, 다음날은 검지만 해지더니, 그다음 주에는 팔뚝만 해졌다. 지나가다 내 작두콩을 본 대표님은 한마디 했다. "아니 이거 원래 이렇게 길게 자라는 거야?" 그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아니 최대리, 언제 그렇게 일을 잘 배워서 쑥쑥 큰 거야?'
작두콩은 이제 지지대가 없으면 휘청거릴 정도의 높이가 되었다. 빨대와 나무젓가락을 이어 테이프로 칭칭 감아주었다. 출근하면 분무기로 잎사귀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오자마자 커피를 수혈받는 환자로 하루를 밍기적 밍기적 시작했다면, 이제는 작두콩 관리자이자 재배인으로써 하루를 품격 있게 시작했다. 작두콩은 잭과 콩나무에서 '콩나무'처럼 내 허리 높이 까지 쑥쑥 자랐다.
드디어 마지막 날. 2년 동안 사용했던 책상을 물티슈로 쓱쓱 닦았다. 창가 옆에 있는 작두콩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작두콩의 시선을 피하려고 애써 노력했다. 저렇게 긴 걸 들고 어떻게 지하철에 타.. 무엇보다 집에서 작두콩을 볼 때마다 회사 생각이 떠오를 것 같았다. 퇴사까지 했는데 집에서도 회사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나 없이 홀로 남은 작두콩을 상상했다. 한 달이 지나면 잎이 노래지고 시들시들해지겠지. 그다음에는 비쩍 말라서 쪼그라들겠지. 그다음에는? "야, 저거 좀 쓰레기통에 버려라" 소리를 듣게 되겠지.
작두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작두콩을 반으로 접어서 집으로 가져가라고 말했다. '작두콩 = 회사'로 생각하지 말라고. 작두콩은 작두콩이고, 회사는 회사라고. 맞아. 정말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작두콩을 조심스럽게 반으로 접어서 큰 봉투에 넣었다. 혹시나 줄기가 완전히 꺾일까 봐 조마조마한 채 마지막 퇴근길 지하철을 탔다. 의자에 앉자마자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갑자기 나를 공격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누가 봐도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초록색 잎사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쇼핑백을 들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여자. 마치 나이 많은 한국인 마틸다 같았다.
봉투 밖으로 튀어나온 작두콩의 잎사귀가 이 회사에 다녔던 2년간의 복잡한 내 마음을 응축하고 있었다.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과하게 노력했던 마음,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던 마음,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한 마음, 일을 계획하는 것과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느꼈던 뿌듯한 마음까지.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느끼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마음들을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들을 한꺼번에 마우스로 드래그 한 뒤 딜리트 키를 눌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작두콩은 죄가 없었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작두콩을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작두콩은 다행히 구부러지지도 않았고 지금까지도 잘 자라고 있다. 작두콩을 볼 때마다 매번 회사 생각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종종 회사 생각이 났다. 친구가 말했던 '작두콩 ≠ 회사' 공식을 떠올렸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작두콩 = 나' 자세로 작두콩을 대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도 잘 자라는 작두콩을 보니 나는 묘하게 안심이 됐다. 지금의 나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작두콩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보야. 모르겠어? 2년간의 너도 너고, 지금의 너도 너야.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모든 것을 잊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실패했다. 이번 회사에서의 2년간의 시간은 나에게 진한 자국을 남겼다. 어떤 성장의 증거인 것 같다가도, 상처의 자국 같기도 하고, 성취의 흔적인 것 같다가도, 모자람과 비난의 흔적인 것 같기도 했다. 베란다 한구석에 꼿꼿이 서 있는 키다리 작두콩은 계속 나에게 말하고 있다. 그냥 그 자국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면 된다고. 너는 상처와, 성장과, 모자람과, 성취와, 비난의 자국을 지닌 채로 오늘도 어김없이 잘 자라고 있다고. 아무래도 작두콩을 집으로 데려오길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