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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an 16. 2021

병원에서 VIP 환자로 대접받는 법



환자도 좋은 의사를 만나야겠지만 의사 역시 좋은 환자를 만나야 한다. 진료는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마운 환자를 만나면 죽어가다가도 기운이 나는 반면에 진상 환자를 만나면 의욕이 샘솟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진다. 오늘은 병원에서 지켜주셨으면 하는 아주 사소한 태도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것만 지켜도 떡 하나 더 얻어먹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1. 애매한 부사어 사용하지 않기


진료는 1) 증상의 양상과 2) 경과에 대해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아픈지 얼마나 되었는지. 첫 번째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는 환자는 거의 없다. 자기가 불편해서 왔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증상이 얼마나 됐는지 하는 물음에 꽤 됐어요, 쫌 지났어요, 며칠 된 것 같은데요, 하며 대충 에두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럼 나는 또 물어야 한다. 당신이 말하는 며칠이 대략 몇일인지. 당신이 말하는 쫌이 반나절의 쫌인지 사흘 밤낮의 쫌인지. 나는 점심 먹은 지도 꽤 됐고 면허 딴 지도 꽤 됐고 태어난 지도 꽤 됐는데, 당신의 꽤는 과연 어디와 어디 사이에 위치하는지. 앞으로도 증상에 관해서 물어볼 게 산더민데 업다운 게임을 하듯 onset 따위를 맞추고 있자면 속이 터진다. 메뉴 정할 때 '아무거나'를 외치는 애인을 만날 때의 심정이랄까.

부들..

그래, 발병일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거 안다. 대뜸 묻는 질문에 바로 하기 당황스럽다는 것도. 갑작스럽게 발생한 증상이나 원인이 명확한 사고가 아닌 경우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정확한 날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건 아니다. 의사들이 원하는 건 대략적인 경과와 시간이다. 약 3일, 2주, 한 달, 세 달 등 대충이라도 가늠할 수 있는 '숫자' 말이다. 급/만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치료 계획 수립과 예후 판단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비단 병원뿐일까. 식당에서, 마트에서, 서비스를 주고받는 모든 곳마찬가지다. 필수적인 정보를 뭉뚱그리는 것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나에겐 한 마디의 추가 대답일 뿐이지만 그에겐 수백 마디의 반복 질문일 테니까. 이걸 깨닫고 난 뒤로는 나도 일상에서 그러지 않으려 많이 노력한다. 예컨대 식당 예약을 할 때 인원과 시간을 먼저 언급하며 물어본다가, 세트 메뉴 주문을 할 때 세부 선택 사항―콜라인지 스프라이트인지, 먹고 갈 건지 테이크 아웃을 할 건지―부터 적립 카드 유무, 영수증 수령 여부까지 쭉 말해버리는 식이다. 그러면 그도 기계처럼 똑같은 물음을 반복하지 않아서 좋고, 나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 편하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당부드린다. 기억이 잘 나지 않거나 다소 당혹스러울지라도 대략적인 날짜를 숫자로 말해주기를. 그리고 저녁 메뉴를 정할 때도 무작정 '아무거나'를 외치지 말아주기를.




2. 의심과 불안의 눈초리 거두기


이건 나도 반성하는 부분이다. 나는 원체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초행길에 택시를 탈 때나 처음 방문하는 미용실에선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인 그들을 온전히 믿으면 나도 마음이 편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계속 도끼눈을 뜨게 된다. 최단 거리로 잘 가고 있는지, 머리를 스타일에 맞게 잘 자르고 있는지 감시하듯 살피곤 하는 것이다. (매우 매우 반성중이다) 그러나 내가 막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되어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눈빛이 얼마나 서늘하고 마음 아픈 것이었는지.


의심의 눈초리는 순수한 호기심이나 막연한 두려움의 눈빛과는 확연히 다르다. 잔뜩 긴장한 몸, 꾹 다문 입, 경계심 가득한 눈, 사뭇 방어적이 공격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어디 한번 해봐, 근데 아프게 하기만 해 봐!'라고 몰아붙이는 느낌. 치료실에서 그런 환자들을 만나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내가 못 미덥구나.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간혹 대놓고 눈을 치켜뜨곤 내 손이 머무는 곳을 분주하게 살피는 사람도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영화 <타짜>의 아귀 같은 그런 눈으로. 그런 심각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어김없이 긴장하게 된다. 밑장을 뺀 적이 없는데도 그렇다. (싸늘하다. 손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손목을 덥석 잡히는 게 아닌가 내가 다 불안해진다. 오히려 안 하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아프게 놓는다가..

어이 으사양반 동작그만

물론 치료에 익숙하지 않거나 통증에 예민한 분들은 불안할 수 있다. 그런 환자를 안심시켜주고 편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이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의사와 만나면 어떨까. 환자를 아프게 하려고 가운을 입은 의사는 없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침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3. 아 몰랑 고쳐줘~ 하는 태도 버리기


가끔 일부 환자들은 '돈을 냈으니 어서 건강을 내놔!' 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맡겨놓으셨습니까? 아, 물론 드려야죠. 그런데 단순히 병원에 간다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 의사가 건강을 품에 안겨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자판기가 아니고 건강은 음료수가 아니니까. 물론 우리는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려 힘쓰지만, 환자도 많은 부분에서 노력해야 한다. 만성 질환인 경우엔 특히 그렇다. 의사가 아픈 환자 쪽으로 한 걸음 가고, 환자가 건강(a.k.a 불편하지만 좋은 습관) 쪽으로 한 걸음 와야 한다. 그렇게 둘이 만난 지점에서 비로소 치료는 시작된다. 그 말인즉슨, 만나지 못하면 시작도 없다는 뜻. 개선해야 할 나쁜 습관, 시도해야 할 스트레칭, 운동, 생활 수칙 등등 환자가 능동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 많다. 환자분들께 늘 말씀드리는 게 있다. 건강은 공부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셔야 되는 겁니다. 

..봉황 찾는 척이라도 좀 해보세요

그러나 환자들은 대부분 귀찮아하는 것 같다. 정말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본인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데, 생판 남인 의사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건 너무 커다란 욕심이 아닐까? 혹여나 관심을 가지려다가도 당신의 냉담한 반응을 보면 절망하기 마련이다. 나도 초기엔 열의가 넘쳐서 굳이 없는 시간 쪼개가면서 직접 스트레칭을 알려주기도 하고 유익한 영상 링크를 포스트잇으로 일부러 적어주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거 지키는 환자 5%는커녕 1%도 못 봤다. 이젠 무언가 숙제를 알려주면서도 '어차피 안 지키시겠지만..'이라고 서두를 깐다. 이 말에 환자는 피식 웃는다. 아무래도 찔려서 한 번이라도 하시겠지, 나는 속으로 바란다. 


혹시 의사가 진료실에서 쓸데없이 잔소리가 많다면, 약 처방이나 내고 치료나 해줄 것이지 올바른 생활 수칙을 읊어대면서 귀찮게 군다면, 그 병원을 절대 놓치지 마라. 연차가 꽤 되어 보이는데도 갈 때마다 한결같이 입 아프게 떠들어댄다면, 그를 당신의 평생 주치의로 모셔야 한다. 그야말로 히포크라테스 또는 허준의 현신일지 모른다. 




이번 글은 철저히 의료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쓰였고, 그래, 나 예민한 의사 맞다. 뭐 저런 사소한 것들을 걸고넘어지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약하자면 결국 이 모든 건 '배려'에 관한 얘기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릴 수 있는 태도와 여유. 환자들은 대부분 본인이 아프고 불편하다 보니까 그런 넉넉함을 보여주기 어렵다. 의사도 다양한 호소를 하는 여러 군상의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까 날카로워지는 경향도 있다. 결국 서로 배려가 부족한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더욱 힘든 게 아닌가 싶다)


어제는 당근마켓 매너 온도에 관한 기사를 봤다. 매너 온도 99.9도, 상위 0.01%의 매너를 갖춘 유저들의 사례를 읽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런 분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이 좀 더 살만하겠다 싶었다. 사람 간의 배려가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호의를 베풀기도 쉬워진다. 그렇게 낯선 관계에 신뢰가 쌓이고 상호 교류의 품격이 높아질수록 혜택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구성원인 우리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제공자이자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 병원 안에서는 내가 제공자지만, 나도 언젠간 다른 병원에서 환자 신세를 질 수도 있다. 당장 병원 문 밖을 나서면 나는 어떤 승객이자, 지나가는 손님이자, 평범한 고객이 된다. 과연 나는 잘 하고 있는가. 글을 써놓고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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