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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Oct 17. 2021

침, 아파서 그걸 어떻게 맞아?



침 맞는 것이 무서워 한의원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이해한다. 바늘에 찔리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침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살짝 꼬집는 정도(?)와 비슷하다.


간혹 열 명 중 한 명 꼴로 유독 침을 무서워하는 분들이 가끔 있긴 다. 신기한 건 외모나 체격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 엊그제는 몸 구석구석 오색찬란한 문신을 새긴 덩치 형님이 치료 전에 벌벌 떨길래 달래드리느라 혼났다. (아니 문신은 어떻게 받으셨대..)

환자 : 선생님 저 너무 무서워요 / ??? : (저는 환자분이 더 무서워요..)

다행히 그 환자분은 생각보다 안 아프다며 치료를 받고 가셨다.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렇다. 막상 맞아보면 '어라? 별거 아니잖아?' 하는 반응이다. 아무래도 침으로 인한 통증 자체보다는 찔린다는 공포심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날카로운 것에 찔린다 = 여러 번 푹푹 쑤셔진다 = 고통 속에 죽는다'라는 무의식 속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걸까?


상상 vs 실제

그렇다면 대체 침은 몇 개나 맞아야 할까? 얼마나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할까? 지금부터 알아보자.




1. 침의 두께

이미지 출처 : 생명마루 한의원

침 두께는 매우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규격은 0.20mm 또는 0.25mm로, 보통 소아 환자나 안면 부위에는 더 얇은 규격(0.16mm)을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 머리카락 두께가 0.10~0.20mm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얇은지 아시겠죠? 가끔 유착된 조직을 물리적으로 박리하기 위해서 도침(0.5mm 이상)이라는 특수침을 사용할 때도 있지만, 미리 동의를 구하고 시술하므로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부위에 따라 침이 유독 아픈 곳은 있다. 피부 감각이 예민한 사지 말단부나 안면부로 갈수록 확실히 조금 더 아프다. 근육이 많이 굳어져서 근섬유가 뭉쳐있는 곳은 특히 더 뻐근하기도 하고 말이다. 일부러 그걸 풀기 위해서 자극을 주기도 하는데, 결코 환자분을 미워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2. 침의 개수


한 번에 놓는 침 개수도 중요하다. 의사의 스타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5개에서 20개 전후로 놓는다. 많이 놓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고? 한 번에 자극할 수 있는 수용체의 개수는 정해져 있다 보니, 침 개수에 효과가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왕이면 한두 개 만으로 효과를 낼 수는 없냐고? 글쎄, 그 부분이야말로 환자와 의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열 개도 많게 느껴지는 게 환자의 입장이지만 놓다 보면 스무 개도 적어 보일 때가 있는 게 의사의 입장이니까. 그래도 환자분께 일부러 고통을 주고 싶은 건 아니니 늘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많이 놓으면 놓을수록 우리도 힘들다.)

이 정도는 아님

침 치료 기간도 개수 못지않게 중요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주 1회씩 총 6주를 치료받았을 때 신체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꾸준히 치료받았을 때 효과는 더욱더 좋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컨대 편두통의 경우 16회 이상 치료받은 환자군이 12회 이하로 치료받은 환자군보다 진통 효과가 두 배나 컸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스무 번 가까이 내원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급성기에는 자주 는 게 회복을 위해 좋다고 설명드려도 도중에 이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인의 판단에 의해 중간에 치료를 중지하기도 하고 말이다. 한두 번 치료받고 낫지 않는다고 뭐라고 그러시면 저희가 많이 슬픕니다.


3. 정말 극한의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

샷 블로커

'샷 블로커'라는 도구가 있다. 표면의 돌기로 주변 피부를 동시에 자극해 바늘로 인한 통증을 줄이는 원리다. 주사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소아과에서 사용데 한의원에서도 종종 다. 보통 통증이 민감한 안면부에 침 치료 시 용하지만, 정말 바늘 공포증이 심한 분들은 일반적인 부위에 놓을 때 쓰기도 한다. 슷한 원리로 주변 피부를 지긋이 누르거나 살짝 꼬집어 자침하면 통증이 훨씬 덜하다. 그 밖에도 일부러 말을 걸 온갖 질문을 던져서 정신을 쏙 빼놓거나, 아이들을 다룰 때처럼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하는 방법다. 자 따끔~ 하나 둘 셋 뿅! 하나도 안 아프죠^^? 




하지만 우리도 인간인지라, 그리고 우리에게 이건 너무 반복적인 일인지라, 환자들의 고통에 무뎌지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루에 천 개 넘게 침을 놓다보 기계처럼 변하기도 한다. 괜.찮.아.요? 많.이.아.프.세.요?


오늘도 말로는 괜찮다지만 피부땀이 송글송글 맺환자 침을 잔뜩 꽂아놓고 나는 길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아, 나는 좋은 의사이기 전에 좋은 사람인가.


상적인 진료 상황에서 대단한 의술이나 거창한 스킬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임상의의 능력은 인간됨으로 가름다고도 한다. 치료 전에 늘 환자를 안심시켜주는 사람인지. 환자가 다음 진료를, 다다음 진료를 편한 마음으로 올 수 있도록 조금 더 배려하는 사람인지. 그래서 결국엔 치료라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끝까지 신경쓰는 사람인지. 우리에게는 결국 좋은 '사람' 의사가 필요한 것이니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오늘도 무뎌지지 않기로 다짐. 내 앞의 환자는 나에겐 수십 명의 환자 중 한 명이지만, 환자에게는 내가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의사라는 사실을 계속 되새기기로 다짐 또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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