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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Nov 29. 2020

마이너의 기쁨과 슬픔

21세기에 한의사로 산다는 것



누군가는 한의사를 마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의료계에서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단순히 의사와 한의사의 수(123,173 vs 24,885 , KOSIS 2018년 기준)나 한 해 배출되는 의사와 한의사의 수(대략 3000 vs 750)를 비교해봐도 그렇다. 한 해 내원하는 환자 수나 지출하는 비용 역시 규모에서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마이너의 길을 택했냐고? 그건 지금부터 밝히면 재미없으니까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 마이너의 슬픔


부푼 가슴을 안고 들어온 대학. 공부와 군역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사회로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바야흐로 2000년대 초반, 드라마 <허준>이 한바탕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감동은 순간이었을 뿐, 기억이 희미해진 자리엔 낡은 이미지만이 그림자처럼 남았다. 초가집에서 부채질해가며 탕약을 끓이는 이미지, 개량 한복을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이미지, 진득하고 퀴퀴한 한약 냄새가 날 것 같은 이미지 등등.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한의사들의 헛발질도 한몫했다. 문호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전통의 수호자인양 굴었다. 점점 한의학은 낡은 것, 뒤떨어진 것, 현대와는 맞지 않는 것의 대표 명사로 자리 잡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해묵은 의사/한의사 사이의 갈등에 의해 일방적인 폄훼가 이어졌다. 비과학이라고 몰아세우는 무개념 안티들에 의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젠장,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이너잖아.

않이.. 광렬이형.. 이건 아니잖아..

암울했다. 나는 나의 꿈을 위해서 힘찬 한 발을 내디뎠는데. 사회는 나를 응원해주지 않는 기분이었다. 인터넷 상의 누군가에게 '무당' 소리를 듣는 건 예사고, 심지어는 암환자였던 아버지의 주치의가 내 소속을 알고는 면전에서 무례하게 군 적도 있다. 하지만 더욱 뼈아픈 것은 주변 이들의 무지였다. 가까운 친구들이 '침이 효과가 있어?'하고 물어본다지, 처음 만난 사람이 '맥 짚고 아픈 곳 맞봐요~'하고 농을 건넨다지 하는, 순수한 무지에서 비롯된 궁금증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궁금할 수 있기에 답을 미리 알려드리자면, 1. 침은 효과가 있고 (없겠냐?) 2. 맥만 짚고는 병을 맞 수 없다. (있겠냐?) 타인 내 직업에 갖는 신비감은 오히려 소외감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물론, 호기심 많은 그들에게 잘못은 없다.

이제 이런 거 퍼나르기도 지친다


# 마이너의 기쁨


내가 일하는 병원은 비용 부담이 적고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단 장점 덕에 생계 때문에 바쁜 환자들이 많이 내원하는 편이다. 당장 내일 일을 해야 하는데 오늘 허리를 다친 사람이나 매일 반복되는 업무로 어깨 근육이 뭉쳐 두통까지 호소하는 경우들, 실제로 아주 아주 많다. 다른 심각한 문제가 의심되는 경우엔 상급병원으로 인계하지만 대부분의 근육통이나 관절통 등에서 제법 빠르게 효과를 보는 편이다. 대단한 건 아니라도 그들이 오늘보단 좀 더 편하게 내일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 수술실에서 피를 튀겨가며 장시간 수술을 하거나 응급실에서 촌각을 다투는 처치를 하는 처럼 멋지거나 돋보이지 않는다는 걸 안다. 가끔은 관심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들이 부러워 조금 삐죽대는 날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나의 쓰임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누군가의 긴박한 생사를 책임질 사람도, 누군가의 일상 속 불편함을 해결해 줄 사람도 모두 꼭 필요한 법이다.

한의사들을 뜨악하게 만든 드라마 속 혈자리 키스신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지만 병원 문턱이 닳도록 넘나들었음에도 뾰족한 수를 얻지 못한 이들도 많다. 각종 수술 끝에도 불편감이 남은 환자들이나, 본인은 괴로운데 자꾸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나와서 억울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제 끝입니다, 라거나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라고 말하기보단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는 이런 시각에서 치료합니다, 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서 좋다. 실제로 꽤 많은 환자그렇게 내원해서 효과를 본다. 눈에 보이는 진단 영상이나 명확한 검사 수치에만 매달렸다면 놓쳤을 이들이다.




마이너를 선택한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인기 종목 스포츠, 돈이 되지 않는 취미,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은 늘 그런 쪽이었다. 지금도 영상 매체의 시대에 굳이 밤잠을 줄여가며 글을 쓰 있노라면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난 틀려먹었다. 돈 벌기는 단단히 틀려먹었다. (사주 아저씨가 분명히 재벌 사주라 했는데..)


그러나 어쩌면 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택트 시대와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혹은 다가올 미래에도, 사가 있어야 할 곳 환자 곁이는 사실엔 변함이 없. 누가 뭐래도 체온을 나누고 직접 맞닿아야만 가능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의 발전으로 인체와 질병이 아무리 체계화되고, 수치화되고, 평균화되고, 더 잘게 분석되더라도, 사람의 몸을 한낱 유기물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전체로서 파악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오히려 미래엔 그런 접근법이 더욱 소중해질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리고 전통의 혜안과 과학적 사고력을 함께 갖추고 있는 현대 한의사들이 그런 일을 아주 잘 해낼 수 있. 손끝으로 꼼꼼히 병소를 살피고 귀찮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를 물어봐가면서 결국 사람을 치유해내는 일을 말이다. 그러니까 마이너 우의 역할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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