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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an 13. 2020

새해 복이 공평하다면



내가 섬마을 공중보건의로 일할 때의 이야기다. 


매주 월요일마다 방문진료 일정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사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로, 한 달의 간격을 두고 출장지가 바뀌는데 그 해 12월엔 하필이면 가장 멀고 외딴 섬마을로 배정이 됐다. 섬이라 해봤자 다리가 놓여있어 편도 20분 정도의 운전이면 갈 수 있는 거린데도, 사람 마음 참 치사해서 월요일만 되면 괜히 꾀가 났다.


이번에 뵙게 된 할머니는 아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파킨슨을 앓은 지 오래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아서 침대에서만 생활한다고 하셨다.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약 한 무더기가 오랜 병력을 짐작케 했다. 침대와 간이 요강과 휠체어만으로도 꽉 차는 방. 그 정도가 할머니에게 허용된 세상의 전부였다. 햇빛을 보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하루 3시간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도움 아래서만 가능했다. 


할머니는 그런 신체적 제약에 비해 정신이 아주 말짱하셨다. 84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오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물론 지난주에 했던 대화 내용도 잊지 않고 계셨다. 진료 중에 그러면 안되는데도 나는 몇 번이고 딴생각을 했다. 제어할 수 없는 육신에 갇혀 있는 영혼은 얼마나 고단할까. 이럴 바엔 치매를 앓는 것이 차라리 나은 일인가. 아냐 그건 아닐 거야. 그렇다면 암이 나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할머니는 요새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다. (병원의 실수로 누락된 건지 아니면 의사의 판단으로 투약을 중지한 건지는 몰라도) 원래 드시던 수면제를 끊은 이후로 잠드는 게 어렵다고 하셨다. 그마저도 눈을 감고 있으면 헛것이 보이고 귀신이 어른거려 눈을 말똥말똥 뜨고 밤을 꼬박 새다고 하셨다. 아마 기력이 쇠한 탓일 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해드릴 수 있치료 거의 없었다. 두꺼운 전공 서적들을 넘고 넘어 도달한 의료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말동무뿐이라니. 매주 월요일마다 흰 가운이 부끄러웠다.




한 달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연신 감사인사를 하셨다. '좋은 일 하니까 복 많이 받으실 거야.' 나는 과연 좋은 일을 하긴 한 것일까. 별로 해드린 게 없는데. 굳게 붙들린 손이 머쓱했다. 그리곤 답례로 건넬 적당한 새해 인삿말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 망설였다. 응당 그러하듯 장수와 건강을 비는 것이 과연 옳은가. 오래오래 사시라고 말하는 것은 도리어 실례인 것은 아닐까. 이미 되찾을 수 없는 건강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위선이 아닌가. 나는 그냥 내일부터는 더 푹 주무시길 바란다고, 부디 안녕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작은 방을 더 작은 마음으로 빠져나왔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엔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저무는 해를 보려고 모여든 이들이렷다. 그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저이들에게 바다가 더 가깝구나. 그에 반해 혼자 힘으로는 침대맡도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에게 집 앞 해변의 노을은 얼마나 먼가. 이 깡시골 구석구석까지 관광버스를 부리는 사람들의 새해와 옥살이를 하듯 시간과 대결하는 독거노인의 새해 사이는 또 얼마나 먼가. 나는 그 외딴 섬을 빠져나오면서 짧게 빌었다. 새해 복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를,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를. 그래서 할머니의 한 평 남짓한 방에도 그것이 깃든다면, 당신이 잠이라도 달게 주무실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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