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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an 26. 2021

크리스마스, 산타 대신 환자와



지난 크리스마스엔 이런 일이 있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한 환자가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허리 통증이 아주 심각한 모양이었다. 진료실까지 걸어오기 불편할 정도여 대기실에서 상담을 진행했다. 통증 정도와 양상 등 몇 가지를 여쭤보고 나니, 아, 응급실 가시는 게 맞겠다 었다. 아직은 괜찮을지 몰라도 여기서  해진다입원 치료도 고려해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응급실의 응 자를 꺼내려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환자가 볼멘소리를 한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또다시 어디로 가라는 거냐며 속상해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제일 난감하다.


그냥 버럭 소리라도 지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심적 근거까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환자의 현실적 상황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경우다. 이런 경엔 정말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진료를 봐드리려고 한다. 모든 건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 가볍게 검진과 처치를 한 뒤 증상의 예후에 대해 꼼꼼히 설명드리고 혹시라도 심해지는 경우엔 반드시 입원 치료를 진행하시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때가 이미 퇴근 시간을 넘겼지만 거기까진 좋았다. 내 일이란 게 그런 거지 뭐.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치료가 끝나고 이제 일어나셔야 하는데 환자분이 통증 때문에 아예 일어나질 못한다. 옆에서 부축하고 지지해줘도 힘을 전혀 못 쓴다. 일어나려다 다시 눕기를 반복하고 급기야 눈물까지 보이는 환자분. 결국 119를 불렀다. 구급차가 오는 동안 누워서 쉬고 계시라고 자리를 비켜드리는 찰나, 환자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가슴에 콱 박힌다.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응급실에 갈 걸.."

그러니까.. 첨부터 가시라고 흐쯔느여..

안다. 나를 향한 원망이 아니었음을. 한숨 섞인 푸념이었음을. 크리스마스에 그냥 아픈 것도 아니라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픈 환자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그는 이 상황이 답답하고 힘들었겠지. 그럼에도 나는 그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괴로웠다. 벌어진 이 상황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내 잘못이 맞다. 내 선에서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정확하게 가늠해야 했다.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내가 놓친 것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겠지만,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갔고 직원들은 크리스마스에 한 시간 늦게 퇴근을 했다. 오지랖 부리지 말고 냉정하게 돌려보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실제 사건기록을 약간 각색한 시험용 기록을 주고 시험을 쳤다. 다양한 쟁점이 있긴 하지만 법리와 판례에 익숙하다면 답을 찾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다. 그러나 이와 흡사한 사건을 실제 재판에서 마주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판단이 훨씬 어렵다.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모든 사안을 법대로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법원칙이 법적 안정성의 문제라면, 유사해 보이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각 사건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거기에 맞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의 문제다.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주영 판사가 쓴 <어떤 양형 이유>의 일부분이다. 이는 의료의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환자가 어떤 증상과 어떤 검진 소견을 보일 때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가, 시험을 셀 수 없이 많이 봤다. 진단 기준과 처치 내용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달랐다. 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처치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고가의 정밀 검진을 타 병원에 먼저 의뢰하는 것이 옳은가. 비용적인 문제, 신체적인 제약, 낮은 확률이지만 악화의 가능성, 그렇다면 환자에게 가해질 피해, 혹여나 나에게 가해질 피해.... '개별 사안에 따라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일'이 매 환자를 만날 때마다 반복됐다. 교과서와 가이드라인과 논문같은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한 치료가 우선이지만, 거기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내 눈 앞에 있는 환자는 실험실에서 적극적으로 통제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가운을 걸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 있다. 결코 무감정해지지 말자. 환자를 편의점에 온 손님처럼 대하는 의사. 환자와 서로 규격화된 서비스 그 이상도 이하도 나누지 않는 의사. 그것만은 되지 말자. 그래서 환자는 처음 본 나를 못 믿고, 그런 환자를 나는 더 못 믿고, 그래서 서로 겉돌고 마는 관계로 남지 말자. 


그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거기에 '너무 감정적이지도 말자'를 추가한다. 머리보다 감정이 앞서지 말자. 진짜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냉철하게 판단하자. 아직 초짜 한의사인 나에게는 멀고 먼 일이지만. 응급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그 환자분께 죄송한 마음을 담아, 그런 실수를 다신 반복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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