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내 잘못이 맞다. 내 선에서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정확하게 가늠해야 했다.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내가 놓친 것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겠지만,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갔고 직원들은 크리스마스에 한 시간 늦게 퇴근을 했다. 오지랖 부리지 말고 냉정하게 돌려보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실제 사건기록을 약간 각색한 시험용 기록을 주고 시험을 쳤다. 다양한 쟁점이 있긴 하지만 법리와 판례에 익숙하다면 답을 찾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다. 그러나 이와 흡사한 사건을 실제 재판에서 마주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판단이 훨씬 어렵다.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모든 사안을 법대로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법원칙이 법적 안정성의 문제라면, 유사해 보이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각 사건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거기에 맞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의 문제다.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주영 판사가 쓴 <어떤 양형 이유>의 일부분이다. 이는 의료의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환자가 어떤 증상과 어떤 검진 소견을 보일 때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가, 시험을 셀 수 없이 많이 봤다. 진단 기준과 처치 내용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달랐다. 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처치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고가의 정밀 검진을 타 병원에 먼저 의뢰하는 것이 옳은가. 비용적인 문제, 신체적인 제약, 낮은 확률이지만 악화의 가능성, 그렇다면 환자에게 가해질 피해, 혹여나 나에게 가해질 피해.... '개별 사안에 따라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일'이 매 환자를 만날 때마다 반복됐다. 교과서와 가이드라인과 논문같은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한 치료가 우선이지만, 거기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내 눈 앞에 있는 환자는 실험실에서 적극적으로 통제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가운을 걸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 있다. 결코 무감정해지지 말자. 환자를 편의점에 온 손님처럼 대하는 의사. 환자와 서로 규격화된 서비스 그 이상도 이하도 나누지 않는 의사. 그것만은 되지 말자. 그래서 환자는 처음 본 나를 못 믿고, 그런 환자를 나는 더 못 믿고, 그래서 서로 겉돌고 마는 관계로 남지 말자.
그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거기에 '너무 감정적이지도 말자'를 추가한다. 머리보다 감정이 앞서지 말자. 진짜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냉철하게 판단하자. 아직 초짜 한의사인 나에게는 멀고 먼 일이지만. 응급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그 환자분께 죄송한 마음을 담아, 그런 실수를 다신 반복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