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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Oct 23. 2021

한의학이 비과학이라는 누명



한의학이 전통의학이라고 하여 과학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아직도 민간요법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니냐며. 정말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다. 현대 한의학 역시 다른 모든 실용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바탕하여 전진하고 있다. 한번 살펴보자.



맥을 짚는 가장 힙한 방법, 맥진기


한의사 하면 떠오르는 모습, 맥을 짚는 모습이다. 손목에 위치한 요골동맥의 박동을 관찰해 맥의 깊이, 빠르기, 세기, 모양을 관찰하는 진단법인데, 대부분 의사의 주관적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재현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3차원 맥 진단기'라고 하여 맥의 깊이, 빠르기, 세기, 모양은 물론이고 혈관의 경직도와 혈압까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활용한다. 맥 데이터를 숫자와 그래프로 시각화하여 치료 전후 변화를 비교하기에도 좋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진단 기기가 무려 국제 표준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

다양한 맥진 기계 (출처 : 대요메디)

그렇다면 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맥진은 다른 진단법과 마찬가지로 환자가 처한 상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툴이다. 많은 문헌에서 분석 방법이 매우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정리되어 있고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진 만큼 쌓여있는 데이터(raw 데이터긴 하지만)도 많다. 특히 한의학적인 진단 체계인 '변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증상과 다른 검사 결과가 동일한 두 환자가 있다고 치자. 맥을 보았을 때 세기가 세고 혈류를 힘차게 밀어내는 양상의 맥을 가진 환자와, 세기가 비교적 약하고 누르면 텅 빈듯한 모양의 맥을 가진 환자는 증상이 같더라도 처방하는 약재나 치료 방향을 다르게 설정한다.



침 + 전류의 환상 콜라보, 전침 요법

침 치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부위에 전기 자극을 주는 전침 요법을 시행한다. 침 끝에 자석 전극을 연결하여 미세 전류를 흘리는 방식. 전기 자극이라고 말씀드리면 무슨 고문용 전기의자 상상하시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해당 부위를 톡톡 건드리는 정도의 느낌이 전부다. 주파수에 따라 1-2hz의 저빈도부터 100hz 이상의 고빈도까지 있는데 (강도 아니고 빈도니까 안심하시라) 진통 기전이 서로 달라 질환 종류나 만성도에 따라 달리 응용한다.


근육에 작용하는 물리적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특정 경혈에 자극하여 전류를 흘리면 교감신경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심박 변이도를 개선하는 등 자율신경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엔 전침 치료가 뇌에 기능적, 구조적 변화를 유도해 치료 효과를 낸다는 기전이 밝혀지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단순한 염좌나 근골격계 질환 말고도 특히 불면증, 고혈압, 변비, 소화불량 등의 내과적 질환에 전침이 필수적인 이유다.



봉독, 더욱 안전하게!


진통 효과가 뛰어나 수천 년간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봉독. '멜리틴'이라는 아미노산 화합물이 주 성분이고, 이외에도 아파민, 아돌라핀 등의 펩타이드와 효소들이 함유되어 있다. 만성 통증 질환, 각종 염증 질환에 대해 특효를 보이는데 최근엔 신경세포 재생 효과까지 검증되어 추가로 해외 저널에 등재되었다. 한의원에서는 정제된 봉독을 주사기로 시술하는데, 순한 맛부터 매운 맛까지 봉독의 비율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부작용은 없냐고? 인체 면역 반응에 의해 맞은 부위가 가렵거나 붓거나, 아주아주 드물게 전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를 통해 그마저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좋은 소식. 효능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세포독성을 큰 폭으로 줄인 '완전 독성 제거 봉독'이 등장했다. 만성 관절염이나 디스크 환자분들 축하드립니다.   


Quantitative RT-PCR을 통한 염증 완화 효과 비교. 기존 봉독보다 염증성 사이토카인 TNF-α, IL-6, iNOS의 발현 억제 효과가 현저하다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다. 고전 경혈 포인트들을 해부학과 근육학을 활용하여 해석하고 정립했으며, 한약재의 유효 성분과 지표물질들을 꾸준히 탐구하여 한약의 약리활성을 규명해나가고 있다. 단일 물질 위주의 제약 시장에서 생약 성분의 처방이 활용되거나 한의학 원전 근거 처방 등이 상품화되는 경우도 이젠 결코 드물지 않다. 세계 유수의 메디컬 스쿨과 연계하여 국제적인 저널에도 꾸준히 연구 성과를 알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주로 까는 입장)는 한의학은 원래대로 전통의 길이나 갈 것이지 왜 과학의 열매를 훔쳐먹으려고 하냐고 비난한다. 그러나 과학이란 누구네 담벼락 너머에 열린 감나무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다. 강물 위에서는 오리배도, 제트스키도, 유선도 모두 평등하게 물결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모두 '과학'이라는 시대의 패러다임이자 현재를 꿰뚫고 흐르는 강물 위에 있다. 다들 물에 순응해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의학도, 한의학도, 어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사실에 태클을 거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지만. 누구의 말마따나 이날치가 판소리 하면서 앰프 쓴다고 뭐라고 하진 않잖아. 


이젠 락페스티벌에도 당당히 서고 유튜브계 월클의 반열에 올라가는 이날치 밴드처럼, 한의학도 과학적 접근을 통해 자랑스러운 하이브리드 K-의학으로 발돋움하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이 올 때까지, 한의사는 오늘도 열심히 뚠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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