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되고 난 뒤 각양각색의 질문을 많이도 받았다.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꽤 심도 있는 분야까지. 그만큼 이 직역에 대한 인식적 허들이 높다는 걸 실감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여러분들이 갖고 있을 법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드리고자 한다. 그 허들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다면 좋겠다.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래도 사견이 조금 담겼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들어주시길.
Q. TV에서 보면 막 팔 들고 체질 맞히고 귀 찌르고 아픈 곳 맞히고 하던데?
후.. 가장 스트레스 받는 질문이다. 쇼닥터 중의 쇼닥터사기꾼, 한의사가 버린 한의사돌팔이로 유명한 모 방송인의 작품인데, 왜 그가 싸질러놓은 똥을 나머지 한의사들이 치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그는 정체불명의 진단법으로 패널들의 건강 상태를 때려 맞추기로 유명하다. <무한도전>으로 한 번 홍역을 치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최근 예능에 또 나왔다고 한다. 또 어떤 헛소리를 늘어놨는지 들여다보기도 싫다. 뻔하지 뭐. 답을 알려드리자면 그가 행하는 방법들은 대부분 과학적 근거가 없고 임상적으로도 가치가 희박한, 이른바 구라다. 그렇게 단순하게 병을 맞힐 거 같았으면 아픈 사람들이 왜 있겠나. 대중에게 잘못된 건강 상식을 심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가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의사의 이미지를 싸구려로 소비해버린다는 점이 가장 화난다.
이제 그만 봤으면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진료에 매진하는 한의사들은 결코 그런 무책임한 진단이나 치료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정상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다만 본업에 충실하느라 티비에 나오지 않을 뿐. 주변 전문직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각자 자기네 분야의 쇼닥터들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쯤 되면 티비에 나오면 걸러야 하나?) 오늘도 열심히 방송활동에 열중하시는 그가 궁금하다. 그에게도 의료인이라는 자각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돈만 벌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Q. 내 체질은 뭐야?
체질론이란 인간을 특징에 따라 범주화하여 치료에 응용하는 이론로, 대표적인 이론 '사상체질학'은 같은 동아시아 의학(중의학/일본 kampo의학) 사이에서도 한의학을 구분 짓는 특징이다. 인간의 체질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는데, 외부 환경에 대한 반응 차이(추위/더위 등), 주로 발생하는 질환의 양상(소화/배설, 상체/하체 등), 타고난 성정(외향형/내향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그러나 모든 분류가 그렇듯 딱 잘라서 인간을 가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전형적으로 한 체질에 부합하는 인간도 존재하는 반면 어떤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명쾌하게 나누기 어려운 사람도 많다.
조금 더 얘기해 보자. 체질론이건 MBTI건 인간을 카테고리화하여 파악하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을 분류화하여 이름표를 붙이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뭐, 나는 뭐, 그런 식의 기계적 분류는 오히려 인간의 우열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될 위험성도 있다) 어떤 경향성을 파악하여 병리적 상황에서의 길잡이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이런 기본 상식을 초월하는 이론들은 글쎄, 난 개인적으로 못 믿겠다. 당신은 죽었다 깨나도 어떤 체질입니다! 라고 단언하는 사람을 멀리하라. 그는 그렇게 단언하기 좋아하다가 이미 주식에서 된통 당했을 확률이 높다. 어떤 체질은 이러저러한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의심하라. 그도 술을 진탕 먹은 다음 날엔 칼칼한 짬뽕을 시킬 것이다. 체질을 절대 불변의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적어도 내겐) 마치 MBTI 맹신론자가 '너는 ISTJ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이 부분은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체질론에 관해 가장 공감 가는 비유는 이거다. 체질은 오히려 계절 같은 것이라고. 각 계절들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지만, 3월 초의 찬바람이나 9월 초의 늦더위를 떠올려보면 계절 간 경계가 명확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우리도 대체로 계절에 순응하며 나아가지만 그렇다고 계절에 매몰되어 옷차림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봄 초순에도 눈이 오면 패딩을 꺼낼 수 있고, 초겨울에도 볕이 쨍쨍하면 맨다리로 나갈 수도 있다. 요컨대, 계절이나 체질이 중요한 건 사실이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란 뜻이다. 무엇보다 그렇게나 복잡한 당신이, 고작 몇십 가지 기준만으로 완벽히 파악될 수 있을 거라는 어설픈 기대조차 말라.
Q. <동의보감>에서 ~라고 하던데 진짜 그래?
드라마 허준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중은 유독 <동의보감>에 익숙한 것 같다. 문제는 1. 그것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고 2. 그것 말고는 한의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동의보감>은 그 시대의 위키피디아다. 더 자세히 말하면 17세기 초, 당대의 의서와 경험 처방 등을 여러 기준에 맞춰 총망라한 임상의료 지침서이다. 이 서적의 가치는 (그 내용뿐 아니라) 동시대의 정보를 빠짐없이 모아 표준을 만들려는 시도에 있다. 정보의 중앙화 및 공인된 기준의 제정이야말로 해당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한의학 역시 <동의보감> 편찬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 이론이 반박당하고 보완되면서 점점 진보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보다 더 널리 알려진 한의학 서적이 없을 뿐, 한의학 자체는 책 한 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된 것은 그 텍스트의 완전무결함 때문이 아니라, 17세기 국가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임상의료 지침서 발간 및 배포―를 선도적으로 진행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의학은 책 한 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건 진짜 개인적인 바람인데, 나는 <동의보감>에 대한 대중의 맹목적인 기대가 좀 사그라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역사적 저작물로서 가치가 높고 현재의 임상까지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무슨 성경처럼 반박 불가한 원전은 또 아니다. 대중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1610년 서적에 머물러 있는 한, 현대 한의학의 가치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봐도 앞으로 나아가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음식점에 붙어있는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효능 어쩌고 저쩌고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Q. 한약이 간에 안 좋다던데?
그만 듣고 싶은 질문 1위다. 한약이 간에 좋지 않다는 프레임은 90년대 의사 vs 한의사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한약과 한의사를 폄훼하려는 시커먼 의도에 의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것으로 안다. 한약을 먹으면 간부전이 온다느니, 오래 복용하면 간이 녹는다느니 하는 비과학적 공포 마케팅이 횡행했다. 이 유치한 전략은 (놀랍게도) 여태까지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도 환자들이 심심치 않게 물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매우 심한 말) 첫째, 일부의 흠을 싸잡아 전체를 매도하는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간독성을 일으키는 일부 한약재가 있으나, 안전한 투약 기준에 대한 연구와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한약/양약 할 것 없이 체내로 들어온 모든 약물은 대부분 간 효소에 의해 대사되므로 간에 부담을 가할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양약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의 성분명)이 간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누구도 양약 혹은 타이레놀을 퇴출시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복용 시 적정 용량과 유의사항에 대해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할 뿐.
둘째, 실제 연구 결과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인성 간 손상(Drug Induced Liver Injury, DILI)중 한약인성 간 손상(Herbal medicine Induced Liver Injury, HILI)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저히 낮으며(국내 연구 0.6%, 해외 연구 1.2-1.4% 등), 그마저도 Herbal medicine의 범주에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 이외에 민간요법으로 섭취하는 생약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이 포함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좀 많이 억울하겠죠?
한의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미신적인 이론에 빠져 혹세무민하는 몇몇 한의사들이 있었고 그렇게 부각된 단면을 붙잡고 늘어지는 맹목적인 안티들도 있었다. '옛 것은 낡은 것, 낡은 것은 폐기해야 할 것'이라는 그릇된 사고 회로도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적으로는 편견과 맞서기 위해 많은 한의사와 업계 인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혹여나 잔존할지 모르는 비합리성을 타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쇄신하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 열심히 진료하는 것부터 실험실에서 연구 과제에 밤낮으로 몰두하는 것까지. 이렇게 짬을 내서 아무도 관심 없을 글을 쓰는 나까지도.
이어서 다음 편은 과학과 만난 한의학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실제 임상 한의사의 진료 현장에서 과학 기술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침을 놓고 맥을 짚는 데에 과학 기술이라니 감이 잘 오지 않죠? 커밍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