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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Sep 12. 2024

인생의 목표가 없어서 허무한 사람들을 위해

공허의 시대,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달리기와 존재하기


요즘 나는 무기력하다. 일은 예전같이 재미가 없고, 삶의 목표가 뭘까 희미해지고,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를 스스로 되묻고 있다. 고민해봐도 쉽게 답은 나오지 않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누워서 쇼츠를 보고 있다. 한바탕 쇼츠를 보고 나면 또 허무해진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앞으로도 이렇게 살게 될 건가 하면서 비척댄다.


그러던 와중, 스터디코드 조남호 대표의 강연 <공허의 시대>를 봤다. 이 영상을 보게 된건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인간이 마땅히 삶을 통해서 추구해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인트로의 이 문장에 꽂혀서 1시간 넘는 영상을 앉은 자리에서 다 봤다. 영상을 다 보고도 또 돌려봤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목표? 삶의 목적? 그런 건 없다. 오히려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다."


(그에 따르면)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고, 또 다음 목표로 나아가는 목적주의는 고성장시대를 거치면서 정설로 자리잡았다. 고성장시대엔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고, 내집마련을 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련의 과정, 즉 '성취'가 너무도 당연하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고성장시대는 끝났다. 더이상 목적주의라는 마법의 공식은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예전 공식을 답습하고 있다. 목표가 없으면 불안하다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지 못하면 우울하다가, 목표를 이루고 나면 허무해진다. 그래서 자주 길을 잃어버린다. 마치 검색창 앞에서 검색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나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내가 뭐 하려고 했더라?"

그걸 '인터넷 미아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그렇다. 인생의 많은 고뇌가 목표에서 온다.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강박,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 목표를 이루고 나서 오는 허무에서 온다. 결국 목표 자체가 문제다. 조남호 대표는 목적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대신 '이걸' 찾으라고 한다. 그게 뭐냐고? 강연에서 확인하시라. (영상으로 확인해야 울림이 있다) 열심히는 사는 거 같은데 허무함이 가시지 않는 분들께 특히 추천. 두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 

<공허의 시대> 보러가기


목적주의가 아닌 현존주의를 추구하라




마침 이 강연과 이어지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바로,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산책을 사랑한다.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그것은 출장이다. (...) 나는 산책하러 나갈 때 누가 뭘 시키는 것을 싫어한다. 산책하는 김에 쓰레기 좀 버려줘. 곡괭이 하나만 사다 줘. 손도끼 하나만 사다 줘. 텍사스 전기톱 하나만 사다 줘. 어차피 나가는 김인데. 나는 이런 요구가 싫다. 물론 그런 물건들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부여되면 산책은 더 이상 산책이 아니라 출장이다. 애써 내 산책의 소중함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다. 

산책. 그러니까 누군가가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 산책, 특별한 목적지 없이 자유롭게 거니는 산책,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산책이 그가 원하는 전부다. '그 산책'은 그가 추구하고 원하는 '삶'의 은유이기도 할 것이다. 목표를 위한 세부 과업들에 짓눌리지 않는 삶, 원대한 목표를 위해 당장을 희생할 필요가 없는 삶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 아니었나?


물론, 목적 없는 삶이라고 해서 꿀 빨겠다는 건 아니다




최근 어떤 동료 원장님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최종 목표가 뭐에요?" 


진료를 하지 않고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걸 보니, 뭔가 비범한 꿈이 있지 않겠나 하는 눈치였다. 그러고보니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목표를 물어본다. 뭘 하려고 지금 거기 있어요? 어떤 목표가 있어요? 남들과 다른 꿈이 있나요? 10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거 같으세요? 등등. 


근데 놀랍게도, 그런 건 없다. (하하)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별 생각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다만 성실하고 열심히 살 뿐. 생각해보면 처음 스타트업에 합류할 때도 그랬다. 나는 내가 (면허 없이도) 사회에서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다는 걸 검증하고 싶었고, 더 큰 조직에서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여기서 잘 배워서 창업을 해야지, 그리고 엑싯을 해서 1000억 부자가 돼야지 하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난 그냥 내 쓸모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지금 그걸 어느 정도 해나가고 있다. 그럼 됐다. 


물론 아주 자주 '목표 없음'에 결핍을 느낀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목표가 없다는 사실에 고뇌하기도 한다. 지금 무기력증을 느끼는 것도 그렇고, '나는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단추를 반쯤 덜 채운 셔츠를 입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대부분 일평생 입시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끊임없이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을 테니까. 인생에서 많은 마일스톤을 세우고, 그걸 하나씩 깨고, 얼마간의 성취를 누리다가 금세 온통 허무해지고. 그리고 또다시 몸을 일으켜 목표를 세우는 일을 반복했을 테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삶을 살고자' 한다. 그건 가만히 있으면 얻어지는 경지는 아닌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공자처럼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에 이르는 것이 아니듯이. (지하철 1호선을 보라) 시간을 들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다. 번뇌를 다스리고 나 자신과 더 고요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한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삶을, 삶의 풍경들을 많이 느끼면서 살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깔깔 웃고, 햇살을 충분히 쬐고,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최선의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그렇게 말이다. 살아내는 것도 아니고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것으로서의 삶을 말이다. 무기력증이 찾아올 틈이 없도록.


오늘 글은 도통 마땅한 맺음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또다른 책 추천으로 마무리.

우리는 의과대학에 다닐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의과대학에 들어와 의과대학을 졸업합니다. 인성이니 생명의 소중함이니 따위는 배울 겨를이 없어요. 알다시피 과학자란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배우는 공부 속에 과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성공하고 싶다면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합니다. 뭐가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해놓으세요.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하루에 한 시간은 마련하세요. 그 60분 동안에는 신이든, 국가든, 가족이든, 일이든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꼭 혼자서만 보내십시오. 자신을 아끼는 법을,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도 자기 삶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이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온갖 일들을 들고 와서 여러분들의 삶을 뺏으려 드는 사람이 세상에는 수두룩합니다. 

그 모든 것에 분연히 맞서십시오. 자신의 삶을 사십시오. 성공은 자로 잴 수도, 몸에 걸칠 수도, 두고 바라볼 수도, 벽에 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동료들의 찬사, 사회의 존경, 환자들의 감사 인사가 성공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성공이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똑똑하게 아는 일, 자신이 원했던 모습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다운스테이트 의과대학 졸업생 축사 중 
<달리기와 존재하기>


P.S. 다음부터는 누군가 내게 삶의 목표를 물어본다면, 핑계 대지 않고 자신있게 말하리라. 
"목표? 그딴 건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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