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내가 물어봤어. 죽고 싶냐고.
그때 큰딸의 말투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건조했다.
작은딸이 우울증과 공황이라는 걸 알게 된 지 고작 며칠이 지났고, 집에 눌러앉아 작은딸의 근황을 핸드폰으로 듣는 중이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짧은 대답으로 불안함을 숨기는 중이었다.
그랬는데 죽음이라니.
이 말은 곧장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딸을 떠올리게 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절벽 꼭대기 끝에 서 있는 나의 딸, 한 발짝만 내디디면 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절박한 순간에 혼자 서 있는 나의 사랑하는 딸.
눈에 힘을 주고 잠시 이를 악문다. 큰딸처럼 건조하게 자연스레 말하자. 그러나 목구멍이 막혀서 소리가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아.
죽고 싶지는 않대. 그런 생각은 안 했대.
아, 다행이네.
중요한 거라 물어본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생각은 애초에 안 했다잖아.
아, 그래.
그래, 아직 우리 곁에 있잖아. 그럼 된 거지.
그래, 그래, 그럼 된 거지.
우리는 짜장면과 짬뽕을 고르듯 다소 명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우리 곁에 있잖아,라고 말하는 큰딸의 목소리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럼 된 거지,라고 맞장구치는 내 목소리도.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건 작은딸이 그만큼 위험해 보였다는 거고, 우리는 행간으로 그 사실이 공유되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나를 위로하려는 큰딸의 마음이 느껴져 내 속은 물 먹은 솜 마냥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 이제 들어가 봐야 돼. 내일 또 전화할게요.
큰딸은 동생을 피해 밖에서 통화를 하던 터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다행이다. 빨리 전화를 끊어줘서.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나는 잰걸음으로 아무도 없는 침대로 갔다. 결국 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질 것이므로. 약해지면 안 되는데,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갈 길이 먼데.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렴, 우리 집에서 제일 밝은 딸인데 죽음 따위 생각할 리 없지,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벼랑 끝에 혼자 서 있는 딸의 모습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엄마라는 작자가 딸이 그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전조증상이 없었나?
정말 그런 게 없었나?
작은딸을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추석이었다.
그러니까 보름 전쯤.
그때는 어땠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머릿속 어딘가에 있을 기억을 꺼내고 낱낱이 살펴야만 했다.
두 딸이 집에 오고 엄마도 오시고 남편과 나, 모두 모여 송편을 빚었지. 송편은 작고 예뻐야 한다는 엄마와 대충 하고 빨리 끝내자는 내가 식탁 앞에서 반죽을 떼어낸다. 남편과 큰딸은 엄마처럼 작고 예쁘게 만들었지만 녹은 설탕이 주르르 흐르는 걸 좋아하는 나와 작은딸은 미어지게 속을 채운 커다란 송편을 들고 흡족하게 웃었지.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오후에는 전 부치고 음식 몇 가지를 더 한 후 저녁을 먹었어. 맥주와 와인을 따고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도 하품을 하면서 늦게까지 함께 계셨지.
추석 내내 먹고 놀고 먹고 놀고, 꽤 기분 좋은 연휴를 보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때 작은딸은 어땠나?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조금 피곤해한 것 말고는.
일이 힘들다더니, 잘 적응하고 있구나, 나는 내심 안심하기까지 했었지.
그러나 표정은 좀 어두웠던 것 같다.
웃을 때 시원스레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도 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의아하기는 했어.
우리 가족 중에서 옷에 제일 관심이 많고 멋 내기를 좋아하는데, 집에 왔을 때 멋은커녕 아무거나 입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화장도 하지 않은 것 같았고. 그랬지만 무심하게 넘겨버렸다. 그럴 수도 있지. 피곤한데.
그래, 그랬지.
-2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