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동생한테 전화 좀 해 봐.
가끔 나는 큰딸에게 넌지시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지가 알아서 하겠지, 심드렁한 큰딸.
물론 동생에게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가기까지 가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을 터였다. 그럼에도 내 말을 단박에 거절하는 큰딸이 야박해보였고 동생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둘은 뭔가 잘 맞지 않았다.
한 배에서 나왔는데 어쩌면 성격도, 취향도, 살아가는 방식도 너무 다른지. 언젠가 큰딸이 그랬다. 어휴, 쟤는 이해가 안 돼. 동생이 아니면 만나지도 않을 유형이야. 감정이 풍부한 작은딸도 그랬을까? 이성적인 언니와 친해질 수 없다고? 그렇게 둘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이 될 때까지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 딴에는 작은딸이 태어났을 때 신났었는데.
같은 여자니까 한 마디만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저절로 감정이 공유 될 거야. 둘은 따뜻한 위로와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을 테고. 친구보다 더 친밀하고 끈끈한 자매애를 상상했었다.
사소한 일상을 주고받으며 재잘재잘 떠드는 그림. 그러나 그 파스텔 색조의 화사한 그림은 나의 바람일 뿐 현실의 그림은 무채색이었다.
나는 그게 늘 아쉬웠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그날 밤, 작은딸로부터 언니, 나 직장 관둘까?라는 카톡을 받았을 때 큰딸은 평소와 달랐다. 내가 아는 큰딸은 심드렁한 반응이어야 맞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었고 뜬금없는 내용이라 해도.
그러나 큰딸인 언니는 즉시 동생에게 전화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별 기대 없이 던진 카톡이었는데 뜻밖의 전화에 동생은 조금 당황한다. 왜? 무슨 일이야? 따뜻한 언니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몇 마디를 하더니 울먹이는 동생. 언니는 동생이 보내는 신호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언니, 도와 줘, 언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데리러 갈게. 기다려. 동생에게 말하면서 차 열쇠를 챙긴다. 마음이 급해진다.
동생도 언니가 보내는 신호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괜찮아, 넌 혼자가 아니야.
언니의 신호는 꾹 누르고 있던 감정을 들어 올리고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린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감정은 격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언니가 온다. 나를 위해 언니가 오고 있다.
동생이 불안한 언니는 동생과 계속 통화하며 다섯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차를 산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초보운전이라는 건, 혼자 다섯 시간을 운전해 본 적이 없다는 건, 복잡한 서울 도심을 통과하고 어둠에 묻힌 도로 표지판이 흐릿해 길을 헤매는 건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언니는 동생 자취방에 도착해 동생을 차에 태우고 다시 다섯 시간을 달려 자신의 자취방으로 간다.
그날 밤, 새벽의 시간.
나는 잠들어 있던 그 시간에.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언니는 동생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
침대에 기대 앉아 동생 말을 듣는다.
주변에 우울증과 공황을 겪는 사람들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을 적용해 보고 관찰하고 간간히 질문하면서. 잘 웃고 까불던 모습은 사라지고 우울하고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흘깃거리는 동생.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가장 피하고 싶은, 그러나 꼭 필요한 질문을 한다. 마른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죽고 싶니? 동생의 대답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 몸이 좀 떨린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봤어. 언니는 안도한다. 안 해봤대, 안 해봤대, 속으로 여러 번 되뇐다. 됐다. 됐어. 죽지만 않으면 된다. 다른 건 치료 받으면 나아질 거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빨리 병원에 데려가자,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억지로라도 데려가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동생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가볍게 말한다.
병원가자. 내일 병원 알아볼게.
내가 병원 가야 돼?
응,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알았어. 갈게.
다행이다. 순순히 간다고 해줘서, 복잡하게 꼬인 성격이 아니라서.
언니는 속으로 생각한다.
동생은 속으로 생각한다.
병원에 가야되는구나.
언니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야.
2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