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출근은 해야겠고 동생 혼자 두기는 불안하고,
그래서 큰딸은 출근하기 전, 동생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점심시간에 다시 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실험실에 갔다가 여섯 시쯤 부리나케 퇴근한다던가.
주말에는 전시회장으로 산으로 호수로 나갔다가 근처 맛집에서 밥을 먹고 예쁜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다던가. 인터넷으로 초 만드는 재료를 주문해 좋아하는 향을 듬뿍 넣어 향초를 만들었다던가.
언니는 동생에게 세상에는 멋지고 예쁘고 재밌고 맛있는 게 많다는 걸 기억나게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잘 웃고 까불던 동생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애틋한 언니의 정성은 메시지가 되어 동생에게 날아든다.
넌 혼자가 아니다.
넌 소중하다.
동생은 그 메시지를 받았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험실에서 퇴근한 큰딸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걸음에 달려와 언니 보고 싶었쪄, 내가 많이 기다렸쪄,라는 혀 짧은 소리를 낼 리가 없겠지.
혼자였던 작은딸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믿음직한 언니에게 의지한다.
맘껏 기댄다.
이제 언니 옆에 달라붙어 언니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다. 손톱을 물어뜯지 말라고 했으니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나에게 길을 알려준다. 언니가 하는 말은 모두 옳다.
고마운 언니.
사랑하는 언니.
작은딸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몇 주 동안 시간과 노력을 작은딸에게 쏟아 부었고, 큰딸의 실험은 하염없이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럼 어쩌니? 핸드폰에 대고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했고,
큰딸은 동생 때문에 속상해해하기만 했다.
얘가 자꾸 눈치를 봐, 내가 출근한 동안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
자기 땜에 언니가 돈도 많이 쓰고 실험도 못 한다고 미안해하고.
뭘 하라고 하면 싫다,를 안 해. 그래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가끔 싫다,고 했으면 좋겠어.
오늘 저녁은 초밥 먹으려고. 잘 하는 데가 있거든.
그렇게까지 해야 돼?
뭐라도 먹이려고. 너무 안 먹어.
큰딸이 덧붙였다.
사 줄 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차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낯설었다.
큰딸에게 이토록 살갑고 다정한 면이 있었던가?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표현은 안 해도 속 깊고 따뜻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동생에게 관심이 없다고 단정했던 난 얼마나 섣부른가.
미안했다.
섣부르게 단정해서,
혼자 동생을 돌보게 해서.
동생을 데리러 간 그날 밤, 엄마인 나는 세상모르고 자던 그날 밤,
긴장한 상태로 열 시간도 넘게 운전하게 해서.
그때 큰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던가?
나중에는 여러 번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아주, 많이많이 고마웠다. 백 번이고 큰딸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고마운 마음을 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 고맙다는 말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날 밤, 왜 엄마 아빠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언제라도 어디라도 달려갈 걸 너무 잘 아는데.
엄마 아빠가 괜히 걱정할까봐 말 안했지.
내가 이러려고 차를 샀나봐.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으면서 큰딸이 말했을 때
나는 도무지 웃어지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포스트잇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쉽게 뗄 수 있는.
두 딸은 끈끈한 자매애로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바라던 대로.
그러나 나는 큰딸이 전해주는 몇 마디로 두 딸의 상태를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매일 큰딸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숨이 편하게 쉬어지는 시간이면서도, 막상 전화벨이 울리면 천천히 숨을 고르고 더디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행간에 흐르는 미묘한 거리감은 뭔가를 놓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으니까.
나는 좀 불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작은딸의 아픔을 몰랐던 것처럼 큰딸이 동생에게 그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처럼,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