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균 Jun 19. 2020

이야기 #3. 브레인 투어 1/2

<하이프사이클> 초단편소설집 프로젝트

“시우야, 이번 기회에 한몫 챙기고, 다 접자.”

“싫다니까! 내 머릿속을 남들이 헤집고 돌아다니게 내가 놔둘 것 같아?”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너 광고도 이제 다 끊겨가고, 팬클럽 멤버수도 뚝뚝 떨어지고 있어. 솔직히 이번에 낸 싱글도 반응 엉망인 건 너도 알잖아?”


퇴물이 되어가는 아이돌 시우와 소속사 대표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식회사 브레인투어의 정실장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대략적인 수익을 얘기해주셨겠지만, 제가 한 번 더 정리해드리면 대략 이렇습니다. 1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골드티켓은 한 장에 29만 원, 시간당 50명분의 티켓을 판매하는데, 하루에 8시간을 자니까 하루에 총 400명에게 판매합니다. 30분을 여행하는 실버티켓은 한 장에 19만 원, 시간당 100명, 하루에 8시간을 자니까 하루에 총 800명에게 판매하고요. 이렇게 한 달 동안 여행을 돌리면 총 매출이 대략 80억 원 정도 됩니다.”

“그래 시우야. 80억을 브레인투어와 반씩 나누고, 거기서 회사 몫으로 10억 떼고 나면, 네가 한방에 30억을 당기는 거야. 이런 장사가 어딨냐? 너는 그저 한 달 동안 하루에 8시간씩 편하게 잠만 자면 되는 건데.”


잠든 사이, 누군가의 머릿속에 접속해서 그의 과거 기억을 낱낱이 둘러보며 탐험하는 브레인투어가 시작된 지 일 년여가 되었다. 탐험 대상자의 건강을 고려해서 동시접속을 100명까지로 제한하고 있으며, 하루에 8시간 동안 운영이 가능하다. 통상 1시간 탐험이 가능한 골드티켓, 30분 탐험이 가능한 실버티켓으로 나눠서 판매되고 있다.


“그게 문제라고! 그 말대로면 하루에 1200명, 한 달이면 3만 6천 명이 내 머릿속을 다 뒤지고 다니면서 내 기억을 죄다 들여다보는 거잖아.”

“시우야, 그래그래 네 말이 다 맞아. 근데 뭐 그게 대수냐? 네 개인정보나 일상생활은 이미 관찰카메라다 뭐다 해서 팬들에게 다 공개됐잖아. 거기에 네 기억을 좀 얹어서 보여주는 게 뭐 어때서 그래?”

“말이면 다야. 형이면 자기 머릿속을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다 까발릴 수 있겠어?”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나라고 꼭 이게 좋아서 그러겠냐. 아, 그리고 그 뭐야 메모리커튼이라고 했나요? 일부 기억을 못 보게 막을 수 있다고 하셨죠? 그것 좀 설명해주세요.”

“네, 시우씨께서 분명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 부분을 메모리커튼으로 가릴 수 있습니다. 대략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브레인투어 준비 단계에서 저희가 시우씨의 뇌를 스캔할 텐데 그때 시우씨가 감추고 싶은 기억에 관한 단어를 집중해서 떠올리시면 됩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그때 활성화되는 부분을 체크했다가 저희 쪽에서 여행객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식입니다.”

“그래 시우야. 너 지난번에 마약 스캔들 터졌었으니, 마약 관련된 기억을 팬들이 들춰보지 못하게 막으면 되지 않겠어?”

“뭔 소리야! 나 마약 한 적 없다는데, 형도 나를 못 믿고 있었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얼마 전에 저희 브레인투어에서 히트쳤던 여배우 J씨의 경우는 부모님에 관한 기억을 메모리커튼으로 막으셨었어요. 시우씩도 그런 식으로 막아두시면 됩니다. 무엇을 막으시는지는 저희도 알 수 없으니 안심하시고요.”

“그래 시우야, 그렇게 하자. 네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잖아. 이번 기회에 네 빚도 다 해결하고, 너도 그냥 나랑 헤어져서 너 하고 싶은 음악 편하게 하고 그렇게 지내면 좋잖아.”

“…….”


### 한 달 뒤 ###


“대표님, 티켓은 예상대로 다 판매되었습니다.”

“아이고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VIP티켓은 어떻게…….”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한 장당 2억, 총 10명에게 판매되었고요. 저희 측과 대표님이 반반 나눠서 10억씩 가져가면 됩니다.”

“와, 그게 팔리네요. 아니 어떤 사람이 시우의 기억을 한 시간 동안 들여다보는 데 2억이나 낸 거죠?”

“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메모리커튼으로 가려진 기억까지 은밀하게 다 들춰본다는 게 큰 매력이죠. 그래서 저희와 대표님이 이면으로 비밀 계약을 한 거고요. 물론 VIP티켓은 100% 현찰로만 판매하고, 구매한 고객분들도 저희 브레인투어와 거래한 사실은 비밀로 하실 겁니다. 안 그러면 저희도 그렇지만 그 고객분들도 골치가 아프게 되니까요.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면 계약 내용은 시우씨에게 절대로 말하시면 안 됩니다.”

“아, 그야 당연하죠. 그런데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 여배우 J는 VIP티켓이 더 비싸게 팔렸다면서요?”

“네, 그때는 좀 경쟁이 붙어서 한 장당 3억씩 나갔습니다.”

“대체 J가 감췄던 게 뭐길래……. 하긴 나는 우리 시우가 뭘 감췄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부분은 다음 주에 브레인투어가 시작되면 알 수 있겠죠. 늘 그래왔지만, VIP 투어에는 제가 동행하거든요.”


정실장의 눈가에 무겁고 서늘한 미소가 어둡게 감돌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