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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ug 02. 2024

오타쿠가 되고 싶은 '영피프티'

일본의 문화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70년대에 태동했고 60년대 생이 오타쿠 일 세대다. 일본 사회는 호황과 군국주의 거세 이후 국가적 목표를 상실한 상태였는데, 근대적 거대 서사를 보충하는 가상 세계가 애니메이션 같은 서브컬처였다고 설명한다. 대의를 위해 개인을 바치거나 우주에서 전쟁을 벌이는 식의 우익적 정신성이 깃든 작품들이다. 물론 아즈마 히로키는 이후 ‘커다란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일본 사회의 포스트모던화와 함께, 오타쿠 문화는 표층의 작은 이야기와 심층의 ‘커다란 비이야기’의 2층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오타쿠 문화는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넘어온 90년대에 태동했다고 봐야 한다. 이 시기에 유년기를 보내 서브컬처를 읽는 리터러시가 형성된 70년대 후반~80년대 초중반 생이 오타쿠 일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오타쿠로 만든 대표적 매개체는 에반게리온 시리즈다. 자신이 오타쿠라고 꾸준히 소개해 온 방송인 데프콘 같은 사람이 한국형 오타쿠 일 세대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국가적 목표의 상실'이 일어나고 거대 서사의 종언이 도래한 때 역시 90년대다. 일본과 20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한국의 70년대는 너무나 숨 가쁘고 너무나 척박했고 병영국가의 이념이 사회를 압제했다. 그에 대항한 학생운동 역시 민주화와 사회주의라는 또 다른 거대 서사를 추구했다. 서브컬처는 메인스트림 문화의 번성 이후에 따라오는 세계고, 취미 세계에 몰두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 또한 필요하다. 원자화될 수 있는 개인의 도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타쿠는 확실히 근대 이후의 존재 양식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2001년 출간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오타쿠계 문화가 젊은이 문화로 생각되곤 하지만, 실제 소비자의 중심은 50년대 후반~60년대 전반에 태어난 세대이며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중장년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문화 소비 계층에서 이 위치에 대응하는 세대는 60년대 후반~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신인류', 이른바 ‘영피프티’다.
 
현재 언론은 영피프티의 특성에 관해 문화 소비와 전자 미디어 사용 능력을 배양한 첫 세대란 관점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내면화했다는 사실도 강조된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건 내가 이미 10년 전에 했던 이야기다(‘90년대의 귀환, 노스탤지어란 이데올로기’). 여기선 비슷한 얘기를 각도를 바꾸어서 풀어보려 한다.  

   

‘영피프티’는 한국 사회가 포스트 모던화하는 과도기에 성장했다. 오타쿠가 될 수 있는 환경 속에 자아가 조립되었지만, 오타쿠가 되기 위해 제공받아야 하는 서브 컬처는 넘어오거나 자생하지 않았다. 일본 문화가 찾아온 90년대 중후반에 이들은 10대를 넘긴 20대였다. 그것들을 수용하는 유전자를 형성하기엔 머리가 굵은 상태였다. 즉, 현재까지 형질이 이어지는 글로벌 메인스트림 문화에 대한 적응력은 계발 됐지만 오타쿠가 될 수 있는 자질은 부족하다.


한국에서 오타쿠는 일본과는 뉘앙스와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 일본에서는 80년대 후반 오타쿠 기질을 가진 미야자키 쓰토무란 인물이 유아들을 연쇄적으로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 이후 한동안 오타쿠는 입 밖에 꺼내기도 힘든 정체성이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오타쿠는 어느 정도 희화화된 존재고 어느 정도 낭만화된 존재다. 일본보다 엄격한 성 상품화 검열 체계와 ‘왜색’ 문화 유입에 대한 사회적 견제로 반사회적 오타쿠 물이 수입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일본과 달리 오타쿠가 자폐적 개인의 존재 양식으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재패니메이션을 매개로 형성돼 취향적 주체로서의 성격이 좀 더 짙다.     


한국에서 오타쿠 혹은 ‘덕후’는 메이저와 구분되는 마이너의 자의식이다. 특정한 관심사가 없는 '대중'과 구분되는 취향의 전문가 같은 라벨이다. 각종 컬렉션을 모아 '취미방'을 꾸미며 사회경제적 높낮이를 전시하는 '구별 짓기'의 수단이다. 한국에도 일본의 히키코모리에 대응하는 ‘아싸’ ‘찐따’가 존재하고, ‘쿰척쿰척 파오후’처럼 오타쿠의 외양과 성격에 관한 스테레오 타입의 관념이 퍼져 있다. 오타쿠에 아무런 경멸적 어감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특수한 개인'으로서의 명찰 노릇도 한다.      


요즘처럼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들의 관심사가 맞춤형으로 제공되고 서브컬처가 분화된 상황에선 인터넷 사용자 계층 대부분이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선 오타쿠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미디어 콘텐츠에 특화된 연예 커뮤니티 '더쿠'의 성장,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에 관한 하위 게시판을 거느린 커뮤니티 ‘디씨’와 ‘펨코’의 거대화는 그를 반사하는 현상이다. 소수 문화와 개인적 삶을 향한 폐쇄적 몰두는 근대가 정착하지 않은 시기에 자란 산업화 세대와 그 아래 세대를 구분 짓는 절취선이다.     


말하자면, 90년대에 새로운 사회문화적 주체로 호명된 사오십대가 나는 여전히 '신인류'라고 자임하고 젊은 세대에 얹혀 갈 수 있게 해주는 정체성이 이런저런 문화에 천착하는 취향적 주체로서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같은 날 것의 서브컬처보다는 지위재로 통하는 고급화·세련화된 상품에 대한 취향과 일반적으로 동 세대에게 소비되지 않는 젊은 문화에 탐닉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 문화재가 케이팝이다.


그중 뉴진스는 팔구십 년대 한국과 일본, 북중미의 문화적 유산을 긁어모아 중년 층의 노스탤지어를 연성하는 그룹이다. 저들의 취향과 욕망에 정확히 부응하는 기획물이다. 거의 허황해 보이는 말들로 민희진의 예술 세계가 격찬되는 것은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고급 예술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는 강변의 다른 표현이다. 아이돌 소비에 뒤따르는 '십덕'의 이미지를 분리하고 취향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챙기려는 반사적 몸짓이라고 할까.


이 글의 맥락에서 뉴진스의 콘텐츠는 실제로는 오타쿠 일 세대 이전의 세대였던 ‘영피프티’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오타쿠의 기억'을 이식하는 문화적 대체 기억이다. 내가 뉴진스의 노스탤지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소진된 과거')라고 말했던 것은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세대론이 그렇듯 ‘영피프티’ 근처에는 세대를 일반화하는 함정이 파여 있다. 중산층 이상의 반질반질한 삶을 살고 아파트 소유권을 독점한 채, 문화적 교양을 과시하고 젊음의 양식을 흉내 내는 50대가 과연 얼마나 보편적인 주체일지는 미심쩍다. ‘영피프티’라 불릴 만한 특수한 주체들은 상대적으로 이용자 연령대가 높은 SNS 페이스북과 역시 연령대 높은 커뮤니티에 머물며 자신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소리 높여 떠든다. 이들은 글쓰기, 출판계, 전문직 등의 종사자로서 사회적 명망가의 상징 자본과 언론 지면ㆍ팔로워 많은 SNS 계정 등 발언대를 소유한 이들이 많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가시화하고 자기 세대를 대표하는 입지를 확보하려는 담론 투쟁을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선 중년 남성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줄 지어 감격을 고백한 '푸른 산호초' 해프닝이 있었다. 미디어 생태계가 닫힌 채 미분화된 당대에는 접할 수 없었던 마츠다 세이코란 표상을 통해 70년대 생들이 집단적 가상기억을 인스톨하며 오타쿠로서 사후적으로 정체화한 사회문화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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