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의 시대와 '헬창'의 시대
피트니스 열풍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헬스장으로 불리던 피트니스 센터는 거리를 걷다 보면 하나씩 눈에 뜨이고 이용객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꾸준히 ‘쇠질’을 하며 몸을 만들고 식단까지 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유행은 SNS의 일상화와 맞물려 있다. 공 들여 만든 몸이 자기 관리의 표상처럼 통하고, 사회적 네트워크에 사진을 올려 지인은 물론 세상을 향해 진열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건 20년 전 웰빙(Well-being) 유행이다. 웰빙은 행복, 삶의 만족, 질병 없는 상태를 포괄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행복하고 튼튼한 삶을 위해 몸을 움직이고 먹거리를 가리는 것이 키워드로 떠오른 시대가 있었다. 웰빙 유행의 중심에는 건강한 삶을 위한 신체적, 정신적 균형이 있었다. 채식과 유기농 식품을 찾고, 규칙적인 운동과 명상, 스파와 요가를 즐기는 것이 새로운 소비 패턴으로 제시되었다.
20년 전과 지금은 차이가 미묘한 듯 뚜렷하다. 피트니스 열풍에서 건강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표면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신체 조형에 중점이 있다. 육체의 완성을 목표로 삼으며 근육의 크기와 체지방률을 숫자로 평가한다. 영양 밸런스보다는 단백질 섭취가 우선시되는 식단을 짜고, 몸이 회복될 텀을 두지 않은 채 날마다 근육을 쥐어짠다. 이런 행태가 ‘운동 중독’이라고 회자되며 근면한 귀감처럼 찬탄을 얻는다. 웰빙의 키워드가 조화와 균형이라면, ‘헬창’(헬스에 중독된 마니아를 일컫는 비속어)의 세계관은 강박과 과잉이다.
자기 전시가 일상이자 미덕이요 영업 수단이 된 SNS 시대에 운동의 목표가 육체 조형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처럼 보인다. 운동의 성과는 바디 프로필 촬영으로 이어진다. 날씬하고 탄탄한 육체가 개개인의 인간적 품질을 과시하는 인증서가 되었다. 인증이 목적이기에 프로필 사진을 보정해 운동의 과정은 건너뛴 채 결과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 고된 일을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꾸준히 해내는 사람들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피트니스 열풍은 바로 그 ‘존중받을 자격’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운동을 통해 자존감을 배양하고, 잘 조형된 육체로 외형을 관리하고, 나아가서 타인들에게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자의식을 갖춘다.
어떤 의미에선 자기 계발 담론의 끝간 데를 보는 기분이 든다. 십여 년 전 유행한 '노오력'이라는 단어는 노력에 대한 사회적 강박과 강요를 상징한다. 노력을 통해 각자의 삶을 건사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자기 계발로 이어져 왔다. ‘노오력’은 노력이 과잉된 버전으로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그에 따른 대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그것이 자격 없이 나의 몫을 축 내는 타인을 향한 날 선 정서와 사회적 혐오로 발전했다.
피트니스는 노력의 결과가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분야 중 하나다.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키우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결과는 뚜렷하다. 피트니스는 노력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자기 계발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운동하는 몸을 전시하며 '노력하는 주체'라는 인준을 얻고, 그 결과 '존중받을 자격'을 획득한다. ‘노오력’을 해 봐야 더 이상 “여러분 부자 되세요”의 희망을 품기 요원한 현실에서 이보다 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은 자기 계발 수단을 찾기도 힘들다.
운동을 통한 자기 계발은 육체로 드러나기에 그 뉘앙스는 사회적이라기보다 원초적이다. 나의 자존감과 자의식을 우월한 육체로 전시하는 이념은 숱한 범인들에 대해 탁월한 개개인을 ‘알파메일’ ‘인자강’ 같은 생물학적 단어로 칭하는 세태와 연결된다. 노력을 통해 승자가 되자는 담론의 종착점은 타고 난 인간적 퀄리티 혹은 남성성의 환상을 후천적으로 구성하는 허위의식이다. 신자유주의 도래 이후 저성장과 저출생이 일상화된 낭떠러지 사회의 포스트 자기 계발 담론이다.
웰빙이 신체의 지속성을 추구하는 개념이고 현재를 절제해서 미래를 대비한다면 '헬창'은 신체의 과시성에 집착하고 현재를 불태워서 가시적 성과를 얻으려 한다. 유기물로서의 신체와 조형물로서의 신체다. 몇 년 전 유행한 ‘욜로’, 지금 사회를 맴도는 레트로 유행과 한 패의 현상이다. 오늘만 보고 살거나 어제의 유토피아를 소환해 그 속에 갇힌 채 살아간다. 미래가 삭제된 사회의 증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