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의 뜰 Jun 28. 2023

실패 앞에서도 당당할 것.

[안온한 편지]


지난달

"어머니,  저 면접 보러 서울가요"

"잘 댕겨 오너라.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또 떨어졌어요."

"그려, 고생혔다."


이번 달 

"어머니, 면접 보러 또 서울 가요. 다음 주에나 내려올게요"

"그려, 조심해서 댕겨오너라."


요즘 고창 시어머니와의 대화다. 


두 달 동안 몇 차례 서울로 면접 보러 다녔다.  갈 때마다 어머니는 또 면접 보냐, 또 떨어졌냐, 고창에도 일자리는 많은데 왜 서울만 쳐다보냐 등 궁금하시기도 할 텐데 한 번도 묻지 않으셨다.  


동네 어르신들은 '신랑 혼자 놔두고 뭣하러 서울 가냐' '부부가 같이 살아야지' '시골에 일손도 부족한데 하나라도 돕지. 우라질  서울은' 하시면서 수군대셨다.


맞는 말씀이다. 어머님과 남편은 요즘 24시간이 모자라다.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없이 하루종일 밭일을 하신다. 허리를 필 날이 없다. 고추밭에 풀 뽑고, 비료 주고, 농약뿌리고,  땅콩밭 솎아내고, 잡초 뽑고, 복분자 따고, 콩밭 다듬고, 개밥 주고 산책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손이 모자란다. 꽃구경 할 겨를도 없다.


귀농하겠다고 6개월 전에 짐 싸고 내려왔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내 일이 더 하고 싶어졌다. 간호사로, 심리상담사로, 원예치료사로, 글 쓰는 사람으로, 사진과 영상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더 머물고 싶고 더 배우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수많은 직장에서 실패하고 버티지 못했지만 지금은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실패한 사람' '한 우물을 파지 못한 사람' 어쩌면 내가 만들어 놓은 이런 프레임에서 한 번은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동네 어르신들 들으시라고 어머님은 큰소리로

 "서울서 많이 배웠으니 니 하고 싶은 거 맘껏 해야재"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지. 성공, 뭐 지가 꼭 꼭 숨어봤자 어쩔겨. 계속하다 보면 다 찾아지는 겨" 


아,  이 얼마나 낭만적인 말씀인가!!  

배움도 없는 시골 노인인 줄만 알았는데, 매번 면접에서 떨어져서 아예 기대도 안 하실 줄 알았는데, 남편 밥 제때 챙겨줄 생각 안 하고 취직하려 든다고 속으로 원망하시는 줄만 알았는데... 공부하며 일하는 며느리를 응원하고 계셨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꼭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만 낭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에도 낭만은 있다.  

성공에는 어린아이처럼 뛸 듯 행복해할 줄 알고, 실패에는 세련되고 우아하게 실패의 맛을 경험하는 것. 실패는 GAME OVER, 끝났다는 말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겠냐고 질문하는 거다. 너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또 도전하겠냐는 의지를 묻는 거다. 

미래를 위해 계속 기대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것, 버텨내는 것, 그래서 나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 

그래, 이것이 바로 낭만이지.




"어머니, 저 합격했어요. 월요일부터 출근하래요"

"축하한다. 그럴 줄 알았다. 참, 읍내에서 너 좋아하는 맥주 사다 놨다." 

이전 02화 식물의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