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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Jun 30. 2023

밴댕이

[이 땅의 아버지들은 밴댕이를 닮았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그리고 병원에 가야죠"

"아까 먹었는데 또 먹어?"

"7시에 드신 건 아침이고요, 지금은 12시니까 점심이에요. 얼른 식사하셔야 머리검사 늦지 않게 갈 수 있어요"

"인하대병원으로 가냐? 밴댕이회도 먹고?"

"아니, 아버지는 이대서울병원 다니시잖아요. 그리고 왜 뜬금없이 밴댕이회에요?"

"네가 검사 잘 받으면 밴댕이회 사준다고 그랬잖아!"


아, 아버지.  

인하대병원은 내가 20년 전 근무했던 병원이다. 




 아버지가 검사실로 들어가셨다.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진단을 위한 방사성 양전자 단층촬영(PET) 검사였다. 2시간 넘게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2008년 5월, 아버지와 함께 밴댕이회를 처음 먹었다. 10년 무사고  중고차 엑센트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맞이하던 날, 아버지는 고사를 지내야 한다며 내가 근무하는 인하대병원까지 오셨다. 막걸리를 다 붓고 나서 ‘요즘 인천엔 밴댕이가 한창이래요. 한 잔 하고 가실래요?’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좋아하셨다. 연안부두에서 가장 소문난 밴댕이 횟집으로 모시고 갔다. 처음에는 밴댕이가 통째로 회쳐져서 나왔다. 그리고 매콤하고 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회무침과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는 밴댕이구이까지 한상 가득 차려졌다. 


 '오뉴월 밴댕이'리는 말처럼 제철인 밴댕이가 영양분을 한껏 비축한 듯 살이 탱탱했다. 감이 연하면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착착 감겼다. 감히 누가 이 맛있는 밴댕이를 두고 소갈딱지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나 싶었다. 아버지를 대접해 드린다고 해놓고는 정작 나만 정신없이 허우적대며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잔뼈가 많은 밴댕이구이를 손수 발라서 내 밥 위에 올려주셨다. 




 어린 시절 서울 신월동에 살았다. 여름 장마가 오면 슬라이브 지붕이 새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냈고, 겨울에는 아궁이 솥 뜨거운 물 한 바가지로 언니, 나, 남동생이 세수를 해야 했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아랫목은 항상 아버지 밥그릇 차지였다. 


 아버지는 늘 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 칙칙한 땀 냄새가 싫었다. 리어카를 끌로 고무대야 장사하는 게 너무 창피해서 친구들에게는 아버지 직업이 회사원이라고 속였다. 중학교 때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데 아버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눈치라도 챌까 봐 못 본 척하고 지나쳤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는 바보처럼 퍼주기만 하셨다. 대학 등록금은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 1998년 내가 언니보다 먼저 결혼하던 날, 얼마나 우시는지 신부입장을 한참 동안 못했다. 결혼 3개월 만에 역대급 태풍으로 8평 지하원룸이 모두 잠겼을 때 새벽 2시에 주무시다 말고 달려오셨다. 온갖 가전제품이며 신혼살림들을 모두 버리고 돈이 없어 갈 곳이 없을 때 아버지는 엄마와 상의하시고 안방을 내주셨다. 3번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을 때도,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암 수술받을 때도 아무도 모르게 내게 봉투를 주고 가셨다.


 20년 전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받았는데, 그 결과  중뇌동맥이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다. 담배도 끊고 술도 끊어야 했다. 그때 아버지의 삶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강원도 평창 산골로 떠나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봄에는 고사리 뜯고 취나물 뜯고 소나무 햇순 자르고 엉겅퀴 뽑아서 데치고 씻고 말리셨다. 5월에는 고추와 오이와 토마토 모종을 심었고, 감자와 고구마도 땅속에 묻었다. 언젠가 잘 익은 오이를 따시면서 말씀하셨다. 

“현경아, 여기 노란 오이꽃을 봐라. 이 꽃이 진 자리에 오이가 열린단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도 없는 거야. 그런데 꽃을 피우기까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꿔주고 물을 주고 바라봐주고 기다려 주어야 하지. 많이 힘들지! 꽃을 피우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렴. 여기에 네 서재를 만들었단다. 언제든지 글 쓰고 싶을 때 오렴” 

고된 병원근무에 지칠 대로 지친 나의 꿈을 아버지는 늘 기억하고 계셨던 거다.



 

 검사실 문이 열렸다. 구부정하고 처진 어깨를 지닌 노인 한분이 한쪽 신발을 질질 끌면서 걸어 나왔다. 바로 아버지였다. 저 작고 마른 체구에 식구들 다 들여놓느라 심장이 쪼그라들 대로 좁아진 나의 아버지! 


 그러고 보니 작고 보잘것없는 생선인 줄만 알았는데 맛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만큼 특별한 밴댕이가 무뚝뚝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셨던 아버지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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