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서른여덟 살
옷과 패션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본 시기도 있었다. 내 취향이 아닌 옷도 두루두루 입어봐야지 생각하면서, 혼자서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옷을 친구의 추천으로 사보기도 했다. 악세사리도 이것저것, 머리 모양도 이것저것 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기. 그중에는 몇개 성공해서 '오, 내가 이런 것도 좋아하네!' '이런 것도 잘 어울리네!'하면서 취향이 된 것들도 있다. 대부분은 '역시, 이건 좀 아닌 듯.' 하면서 금새 접어버렸지만.
아무튼 그런 시간들을 거쳐 지금은 소소하나마 패션에 대한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어디에 자랑할만한 대단하거나 특징적인 취향은 아니다. 오히려 내 취향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전혀 눈에 띄는 부분이 없는, 지극히도 무난한 취향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취향에 만족한다. 왜냐하면 그 취향은 오랜 나의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시시각각 변해서 도대체 언제 바뀌는지도 모르겠는 유행에 떠밀려 가지 않을 수 있어서. 또 수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시간을 절약해주기 때문에. 세 번째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서 좋다.
어울리지도 않고 편안하게 즐기지도 못하는 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붙잡고 있을 때도 있었다. 분수에 넘치게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손에 넣은 듯했지만 그걸 유지할 수 없다면 취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다만 지금의 취향이 변하지 않을 철칙같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어느부분에서든 조금씩의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또 나이니까.
모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실용적인 버킷햇을 하나 마련해 볼까 싶기도 하다.
악세서리도 별로 관심이 없지만 여름에는 왠지 팔찌하나 정도는 해볼까 싶기도 하고.
평상시에는 절대 입지 않겠지만 휴가용으로 귀여운 트로피컬 문양의 반바지 점프수트도 사고 싶다.
그런 호기심들이 또 다른 취향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또하나의 시행착오로 끝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여지들이 남겨져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세상은 계속 변하고 내 생각도 물흐르듯 변하는 게 당연하니까 말이다.
아, 최근에 옷에 대해 하나 실천해보고 싶은 원칙을 정했다.
텔레비전에서 환경에 관한 다큐를 보다가 헐리웃의 한 여배우가 환경운동에 앞장서며 '앞으로 평생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접했다.
문득 나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옷을 아예 안살수는 없을 것 같아서 한 계절에 딱 한벌의 옷을 사는 것으로 원칙을 정해볼까 싶다. 그걸 올 여름에 생각하고 아직 가을이니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지는 적어도 1년은 지나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딱 하나만 사기로 했으니 '정말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서 좋은 걸로 사야겠다.
진정한 서른여덟 살의 옷
-물리적, 정신적으로 나를 평안하게 해 주는 옷
-순간적인 느낌이나 단순한 직관이 아닌 그동안의 시행착오의 경험들을 종합해 얻은 데이터를 믿을 것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올드한 방법일지 몰라도 옷과 신발은 무조건 직접 착용해보고 산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관심과 호기심을 굳이 억누르지 말 것. 궁금한 것은 찾아보고 경험해 보자.
성공하든 실패하든 경험치가 쌓이게 된다.
-한 계절에 한 벌만! 꼭 필요한 것을 좋은 것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