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들도 물론 스트레스가 되지만 편집자의 멘털을 가장 갉아먹는 것은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이다.
기획부터 글, 삽화, 디자인, 교정의 모든 순간순간… 편집자들은 스스로의 의심과 싸운다.
내가 정말 맞는 걸까?
이게 최선일까?
더 좋은 방향이 있는데 내가 찾지 못한 거 아닐까?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수백 번 질문한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그 모든 일들에 정답이 있다면 편집자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찾아낼 것이다. 왜냐하면 편집자들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무엇인가 공부하고 찾는 일을 좋아하며, 악착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들에 애초에 정답은 없다.
게다가 누가 뭐래도 확고했던 신념이 수십 번의 기획안 수정과 회의를 거치면서 사라져 버린다. 신기루처럼…. 남들보다 뭐든지 늦된 나는 10년 차가 되어서도 내 기획에 자신이 없었다. 물론 처음엔 멋지고 새로운 것이라는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비슷한 카테고리의 책들을 조사하면서 ‘아, 이미 이 세상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좋은 책들을 만들었구나.’ 하며 서서히 좌절해간다. 섭외하고 싶은 저자는 일 년, 이 년씩 스케줄이 차 있어서 못하겠다고 하고, 내 의욕도 점점 사그라든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자기혐오에까지 다다른다.
‘이건 처음부터 세상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기획이었어. 애꿎은 나무만 희생시키고 종이 낭비, 잉크 낭비, 시간 낭비였던 거야.’
그렇게 오래 애를 끓이던 기획을 버릴 때도 있다.
그 단계를 어렵게 지나 기획을 진행하더라도 글이 기획한 방향대로 나오기까지는 계속된 설득의 연속이다.
순수 창작인 아닌 기획물일 경우 섭외한 저자를 설득하고, 마케터를 설득하고 함께 일할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를 설득한다. 이 책이 가진 새로움과 특별함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기획자인 내가 자신이 없으면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고 일이 진행될 수도 없다.
그러다가 일이 진행되면서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오면 또 멘털은 정신없이 흔들린다. 나 혼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새롭고 도움이 되는 책이다.’라고 악을 쓰며 똥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가 싶은 멍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 태클들은 이 기획이 처음부터 가진 위험요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어떻게 더 잘 다듬어지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인가에 대한 한 팀으로서의 고민들이다. 오히려 하나하나 잘 짚고 넘어가면 내가 진행하는 그 일이 훨씬 더 빛을 발하게 될,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그땐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획 초반의 멘붕은 이때의 멘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초반엔 아직 나온 게 없으니까 막막하지만 자유롭다. 그런데 이때쯤에는 뭔가 되어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근데 그렇게 뭔가가 되어가는 게 무섭다. 내가 생각한 게 이게 맞았나? 갑자기 모든 게 낯설어지는 것이다.
기획자인 내가 다음 목표와 방향을 말해주길 저자, 삽화가, 디자이너, 마케터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 막막해진다. 나도 어떻게 앞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모르겠다고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길을 떠났고 함께 힘들게 산을 오르는 중이다.
책이 나올 때까지 이런 몇 번의 위기들을 거친다. 어떻게 어떻게 그 단계를 지나왔다면 이제 외부의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서점의 MD들과 독자들. 그들에게 내가 만들어 낸 것을 전하고 평가를 받는다. 보통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때쯤은 거의 멘털이 털릴 대로 털려서 앞의 과정을 어떻게든 마쳤다는 안도감밖에 없다.
보도자료를 돌리고 홍보 계획들을 세우면서 물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손을 거쳐서 나온 책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잘 팔리기를 기대하지만 ‘이제는 너를 떠나보낸다.’하는 허탈 하면서도 시원한 감정이 된다.
‘넓고 넓은 콘텐츠의 바닷속으로 책이라는 어엿한 꼴을 갖춰서 내보낸다. 이만하면 나도 내 할 일은 한 거지? 잘 살아남아 보렴. 파이팅!! 그럼 난 이만.’
잠시 잠깐 이렇게 쿨한 척하지만, 사실 하루도 안 지나서 판매량은 어떤지, 서평은 어떻게 달렸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예전에 만들었던 책이라도 최근 이슈와 관련이 있는 주제면 다시 홍보할 방법을 찾고 계속 여러 채널에 노출하려고 수시로 홍보, 마케팅팀들과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난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그 수백 번의 고민의 결과물이 100퍼센트 만족이었던 적은 없다. 기획자이자 편집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인지도 모른다.
선명한 정답이 없던 고민과 질문들…. 나는 그저 의견 하나를 답이라고 정했고, 그게 정말 최선의 답이었는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내가 만든 책을 펴면 그 수많았던 질문들이 여전히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이 방향이 맞나요?
이 문장에 정말 만족하나요?
여기에 이 그림이 이렇게 배치된 게 맞는 건가요?
너무 평범한 레이아웃 아닌가요?
그 많던 표지 시안 중에 이게 최선이었나요?
아직도 답을 알지 못하는 그 질문들이 무섭다. 그 질문들이 내 선택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만든 책들은 부끄럽게도 모두 그렇게 질문만 가득하다.
연차가 쌓일수록 좀 나아지지 않느냐고? 아니 여전히 나는 정답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차가 알려준 것이 하나 있다면 내가 정답을 못 찾은 게 아니고 이 일은 ‘정답이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정답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정답이 없는 일이다.
그 수많은 질문에 나만의 대답을 한다. 그러면 된다. 물론 내 마음대로 책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답을 찾아야 하고 회사에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더 고민이 깊어진다.
'이 기획이 나보다 더 좋은 기획자를 만났다면 더 날카롭게 다듬어졌을 수도 있다. 나보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을 만났다면 더 멋진 표지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생각할수록 자신은 없어진다.
그럼에도, 쭈뼛쭈뼛 거리며 어리숙하게, 어떻게든 답을 찾아왔던 과정이 나의 자산이 된 것 같다. 최선은 아니라도 나만의 대답을 찾으며 그 수많은 질문들에 대답을 해 왔다. 그런 시간들을 거쳐 내가 용감하고 지혜로운 전사가 되어 지금쯤 말이라도 타고 내달리는 모습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좌충우돌하면서 그 엄습하는 질문과 모호함 들을 뚫고 계속 가고 있다. 그래도 이 일이 괴롭지만은 않은 것은 그 과정이 두려움과 함께 설렘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계속 그 길을 간다는 것. 나는 그것이 다시 질문 앞에 설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정답을 찾아서가 아니라 그 질문들에 함몰되지 않고 그 무게를 감당하면서 걸어온 나의 시간들이 나에게 이 일을 할 자격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내 자신감은 누군가의 평가도 아니고 내 감정의 상태도 아니고 내가 살아온 시간이니까 누가 가져갈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정답이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내 선택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져야 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자유롭고 멋진 일이기도 하다. 정답이 없으니 자신만의 대답을 해도 된다는 뜻이니까. 매 순간 그게 정말 최선이냐고 집요하게 물으며 괴롭히는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의 무게감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답한다. 어떤 것은 혼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또 어떤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답을 찾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