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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Jun 07. 2023

어떻게 해도 싫은 사람

진정한 마흔 살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떻게 해도 싫은 사람'은 여전히 있다.


나는 첫인상으로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최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첫인상으로 많은 것들을 추측하게 되고 '어떤 사람일 거야.'라는 판단을 내리고 만다.


첫인상이 별로이거나 나랑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한 번 두 번 만나면서 인상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또 반대로 너무 재미있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남이 거듭될수록 점점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사람은 함께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면서 알아가는 거지 한눈에 무언가를 알아보거나 파악하기는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도 싫은 사람'은 있다.


내 기준에 어떻게 해도 싫은 사람은 쿨한 것과 예의 없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흠집 내면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류의 사람이다.


최근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이 무척이나 불편하고 싫었다.

피할 수도 없는 관계라 그냥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자존감은 낮고 자의식은 과잉되어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잘하면 이 사람도 바뀌지 않을까 하면서 노력해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사람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교만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나에게 예의 없이 대할지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예의를 버리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서로 맞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누군가 떠나거나 멀어지게 될 텐데, 그때 남겨진 내가 여전히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인생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싫은 사람 때문에 받은 대로 되갚아주려고 벼르고, 날 세우고, 예의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요즘엔 받은 대로 되갚아주지 못하면 바보로 여겨지지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나는 나 자신의 품위와 선을 넘지 않는 것이 결국엔 나에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싫은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어린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이고 전투에서 이긴 후,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다윗에 대한 불같은 질투에 사로잡힌다. 다윗이 아니었으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음에도.

다윗은 사울 왕과 이스라엘 전체를 구하고도 사울의 질투로 계속된 생명의 위협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윗에 대한 질투와 왕위에 대한 집착, 불안으로 미쳐버린 사울은 어느 날 다윗에게 창을 던진다. 다윗은 창을 피했고, 자기 옆에 떨어진 창을 주워 바로 사울을 향해 던져서 그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다윗은 사울의 공격을 피하기만 한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비록 사울이 광인이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택하고 세우신 왕을 자기 손으로 치지 않는다. 사울이 불쌍해서도 아니었고 무서워서도 아니었다.

다윗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아닌 그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봤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는 억울하고 힘들기만 했을 다윗의 그 시간들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인내와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훈련의 시간으로 사용하셨다.

다윗에게는 훈련의 시간이었고, 사울에게는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그 오랜 훈련의 시간이 끝났을 때, 끝내 돌이키지 않았던 사울은 그 죄의 값을 받는다.

 

많은 관계들 속에서 힘들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나라를 구하고도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다윗만큼 내가 힘든가, 억울한가?'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다윗이 겪었을 그 시련과 처참함, 두려움, 고립...

그에 비하면 내 힘듦과 억울함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다윗의 믿음이 더욱 빛나 보인다.

시련의 깊이는 다르지만 나도 다윗처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싶다.

다윗이 했던 것처럼,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으신 걸까?'

'내가 돌이켜봐야 할 내 잘못은 없었을까?'



나를 힘들게 했던 '어떻게 해도 싫은 사람'은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볼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큰 과제를 주셨다.

바로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그 사람의 모습을 말해주고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정말로 싫었다. 싫다고 했다.

그 사람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인정할 것 같지도 않았고 고쳐질 거라는 생각도 안 들었고, 무엇보다

그런 조언을 해줄 만큼의 애정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야기를 했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함께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길 바란다고. 그게 없다면 OO 씨 주위 사람들도 힘들고, 결국 OO 씨도 힘들 거라고.

내 예상대로 그 사람은 내 말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중에라도 내가 어렵게 한 이 말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심으로 조금은 그 사람을 걱정해 준 것 같다.


하기 싫었고,

하기 힘들었고,

능숙하게 말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니 잘했다 싶다.


이것 또한 나를 더 단단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이고,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저 '싫은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고,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진심으로 대할 수 있어서,,, 내가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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