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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송이 Nov 06. 2018

#30화 눈물의 받아쓰기

 “앗싸! 나 백점이다!”

 “아, 나 오늘 나머지야.”

 “선생님, 연지 울어요.”

 받아쓰기 시험이 끝나고 각자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던 중, 서윤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연지 주변에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있었다.

 “다들 자리로 가서 앉으세요.”

 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고, 앞자리에 앉은 서윤이는 계속해서 연지를 달래주었다.  

 “자 모두 일어섯!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건강하게 오세요. 차렷, 인사!”

 “안녕히 계세요.”

 받아쓰기를 하느라 길어진 수업시간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집에 보냈다. 그리고 여유 있게 연지를 불렀다.

 “연지, 잠깐 이리 와 보세요.”

 연지는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 훌쩍이고 있었다. 나는 오렌지 주스 하나를 연지에게 건넸다.

 “자, 이거 마시면서 잠깐만 기다려. 선생님이 문 닫고 올게.”

 나는 연지의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 때까지 교실 정리를 마무리했다.    

 

 “연지야, 아까 왜 울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지금까지 본 중에 제일 못 봤어요.”

 “아,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봐서 그랬구나?”

 “네, 원래는 항상 80점이나 90점이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60점이에요.”

 “에이 괜찮아. 다음에 또 잘하면 되지.”

 연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애들이 자꾸 몇 점이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정말 알려주기 싫은데 승빈이가 뺏어가서 다 말했어요.”

 창피해서 시험 점수를 숨기고 있었는데, 반에 있는 개구쟁이 녀석이 공책을 뺏어간 모양이었다.

 “아, 연지가 그래서 속상했구나. 그런데 아까 보니까 친구들이 막 달래주던데 누가 달래줬어?”

 연지는 금세 친구들 생각이 났는지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서윤이가 제일 많이 토닥여줬어요.”

 “그랬구나. 준영이랑 주호도 달래준 것 같던데.”

 “네, 준영이랑 주호도 와서 달래줬어요.”

 “뭐라고 달래줬어?”

 “준영이는 그냥 그거 찢어서 불태워버리라고 했어요.”

 역시 준영이는 시원시원한 성격만큼 멋진 위로를 해줬다.

 “주호는?”

 “주호는, 음... ‘울지 마, 나는 30점이야.’ 그랬어요.”

 “뭐? 하하하.”

 정말 아이라서 할 수 있는 위로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게 순수하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한 마디씩 던진 것뿐인데, 누군가에겐 그 말들이 다 위로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 우와, 연지는 좋은 친구가 참 많구나? 슬플 때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몰려와서 위로도 해주고.”

 “헤헤, 네.”

 아이나 어른이나 고난을 극복하는 힘은 역시 ‘내 곁에 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라는 느낌인 것 같았다.


 “연지, 주말엔 뭐 할 거야?”

 “토요일에 숙제하면 일요일은 자유시간이고, 토요일에 자유시간하면 일요일은 숙제해야 돼요.”

 “음...... 선생님이 보니까 연지가 다 알고 있는데 띄어쓰기만 조금 헷갈렸구나, 그치?”

 나는 연지의 받아쓰기 시험 공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에잇, 이번에 연지는 틀린 문제 써오기 숙제 해오지 마! 그럼 연지는 숙제가 하나 줄었으니까 자유시간 더 많이 가질 수 있겠다.”

 “헤헤, 네.”

 “그래, 이제 좀 괜찮아졌어?”

 “네, 공책 가방에 넣어도 돼요?”

 연지는 많이 안정된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자 이거 가면서 먹어.”

 나는 초코바 하나를 연지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연지가 가방을 메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선생님!”

 “응?”

 “주말에 그림 그려서 선생님 가져다 드릴게요.”

 연지는 수줍게 이야기했다.

 “그래, 조심히 가고.”

 “네에.”     


 초코바를 들고 총총 걸어가는 연지의 뒷모습을 보며, 귀여움에 몸이 바르르 떨렸다. 선생님께 감사함을 느낄 줄도 알고, 천둥벌거숭이 인 줄로만 알았던 남자아이들이 친구가 슬퍼할 때 위로해줄 줄도 아는 것을 보니 그 마음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만나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을 때, 난 연지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받았다.

연지가 준 사탕과 그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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