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내가 짠테크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하여
1. 인간과 쓰레기통의 평행이론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쓰레기통을 열어보라.
쓰레기는 당신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20대 후반경 어디선가 듣고 무릎을 탁 치며 정말 재밌고도 정확한 말이라며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쓰레기통을 열어보라니, 더럽게! 하지만 우리는 늘 매 순간 온몸으로 쓰레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대부분 생산력을 다 쓰고 나서 버려지는 쓰레기와 유사한 것들이 아닌가? 화장실에서 내보내는 고체와 액체, 여름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 2,3주마다 깎아주는 손톱과 발톱, 미용실에서 예쁘게 커트해 주는 머리카락까지. 우리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물질 중 깨끗하고 쓰임이 남은 물질을 생각해 보라. 나는 10살 때 뽑았던 유치와 인생 처음으로 뽑고 나서 소원 빌려고 보관해 둔 흰머리를 생각해 봤는데, 이것도 남들에게 선물 못할 쓰레기에 가까운 게 맞긴 하더라. 누구 가지고 싶은 사람 계세요? 물어보는 게 더 미안해진다.
그럼 인간의 몸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쓰레기공장일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에 달려있는 한, 세포가 살아있는 한 쓰레기가 아니라 내 몸을 구성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손톱과 발톱도 몸에 달려있을 때는 예쁘다고 칠해주고 반짝반짝 파츠도 붙여주지 않나. 그래서 인간의 몸이 지닌 생명력과 자생력이 신기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인간이 자꾸만 쓰레기공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기한 생명체라고 한 게 누구더라? 인간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인간중심적인 행동들이, 자꾸만 같은 인간인 나를 놀라게 만든다. 특히 여름이면 인간의 무심한 듯 잔인함에 깜짝 놀란다. 들어가면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백화점 내부, 가게 창문 폴딩도어로 활짝 열어놓고 에어컨 풀가동하는 술집, 길빵하며 담배 피우고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개저씨'까지. 원래 이 세상이 인간이 주인공인 세상이었을까? 인류의 기원이니 지구의 첫 생명체니 이런 건 모르겠고, 그저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지구는 인간중심적이어도 괜찮은 걸까?
2.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은 씁니다
우리 가족은 비건이다. 아니 정확히는 엄마와 언니, 형부까지, 아빠와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5년 전부터 비건이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연약하게 태어난 우리 강아지 니코가 아무래도 펫샵에서 교배되어 태어난 것 같다고 의견을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동물보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나에게 유난히 애정과 소유욕이 많았던 언니는 "너도 오늘부터 비건해"라고 강요했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너도 오늘부터 고기 먹지 마. 1년 후부터는 계란과 해산물도 먹지 마"이다. 언니는 하라면 해,라고 우기는 강인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그 강요를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결혼을 핑계 삼기로 결심했다. 결혼식보다 6개월 빨리 신혼집을 구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강요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멀어지게 된다는 말을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내 '의식'만큼은 우리 가족과 다르지 않았다. 당장은 입에서 고기를 떼지 못하더라도, 기초화장품과 클렌징제품을 비건으로 바꾸었고, real leather 가방 대신 fake leather 가방을 샀다. 오히려 비건인 경우 자연유래 성분이라 피부에 트러블도 안 나고 더 저렴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디자인이나 성분에 더 신경 쓴 제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여러분은 동물성을 좋아하시는 걸 잘 알지만, 식물성이더라도 이렇게 좋을 수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건이면 오히려 더 신경 쓸 게 더 많고 공정도 훨씬 까다로운 거 아니야? 일부러 더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남는 것도 없는데 가격까지 낮춰야 하지? 이것이 내가 비건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3. 엄마를 닮아가는 나
비건 화장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화장품 구매비용은 똑같이 사도 덜 나가기 시작했다. 비건 화장품 회사들이 MZ세대를 겨냥해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가를 맞춘 덕분이었다. 그리고 7년간 다니던 직장생활을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짠테크 생활에 접어들었다. 고정수입이 사라지면서,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를 제외한 변동비를 줄이기 위해 물건도 거의 사지 않았다. 오죽하면 하루에 1번 하던 샴푸도 2일에 1번으로 주기를 늘렸다(이것은 꼭 짠테크를 위해서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논비건(non-vegan)에서 의식적 비건이 되어가던 시간만큼, 엄마와 언니는 환경 애호가가 되어 있었다. 비건인은 자연스럽게 환경보호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에서 동물성이 아닌 것들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환경 제품들을 사용하게 되고 나아가 물건을 정말 필요한 것 말고는 사지 않게 되었다.
그런 엄마와 통화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나의 짠테크 생활패턴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아직 5월밖에 안 됐는데 사람들은 왜 에어컨을 트냐고 놀라워하기, 스타벅스에서 커피 살 때 텀블러 가져가기, 안 쓰는 가전제품 플러그 뽑아두기, 심지어 샴푸를 2일에 1번 한다는 것까지! 최근 엄마는 배우 조인성이 다닌다는 법륜스님의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면서부터 진정한 환경애호가로 거듭나고 계시다. 20여 년간 아빠와 가게를 운영하다 은퇴하셨는데, 일명 '정토'를 만나고 여러 방면에서 삶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배우시는 듯하다. 그런 엄마와 나의 짠테크 패턴이 비슷하다니, 엄마는 나름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노후를 즐기고 있는 60대고 나는 겨우 갓서른인데?
4. 지금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나는
짠테크의 핵심은 이렇다. '더 벌고 덜 쓰자'. 나는 지금 벌지 못하기 때문에 쓰지 말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짠테크 하면서 기본에 가까운 생활로 나아가다 보니 저절로 환경보호를 하고 있더라. 이제는 오히려 인간이 추구하는 과도한 편리함, 행복감, 아름다움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 조명은 꼭 24시간 켜져있어야 할까? 우리나라 지하철 약냉방칸은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연말만 되면 꼭 멀쩡한 보도블록을 부수고 새로 깔아야 할까?
어쩌면 나는 반대로 누군가에게 보기 불편한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질문을 반대로 내가 맞을 수도 있겠지. '쟤는 꼭 저렇게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하지만 지금 기후위기를 맞은 환경은 우리 인간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환경은 미래세대에게 빌려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 만큼 환경을 아끼고 있는 게 맞을까? 어쩌면 걸어 다니는 쓰레기공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