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눈이 좋다고 했다. 그는 눈이 오는 날의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그는 눈 오는 겨울 밤, 거리의 분위기에 금방 행복해진다고 했다. 눈을 밟을 때 나는 자박자박 소리를 들을 때, 내리는 눈에 물방울이 맺힌 머리카락을 볼 때 마음이 간질간질 해진다고 했다.
그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슬퍼할 줄 몰랐다.
슬픔으로 가득 찬 나는, 기쁨으로 가득 찬 그에게 물들었었다. 시종일관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를 볼 때, ‘그래, 이렇게 살아야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거야.’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도 그처럼 기뻐할 수 있었으면…’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나는 눈이 싫지 않았다. 뭐든 제대로 싫어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슬플 뿐이다.
눈 오는 날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길고양이가, 내리는 눈 사이로 위태롭게 나는 벌레 한 마리가, 퇴근길 힘없이 걷는 가장이 어깨에 쌓인 눈이 내 마음을 하염없이 밑으로 이끌었다.
추위의 결정체인 눈마저 따듯한 마음으로 녹여버리는 그가, 나에겐 내 추운 삶의 유일한 한 줄기 햇빛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의 마음을 이끄는 것에 기쁨을 느꼈고,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에 슬픔을 느꼈다. 어쩌면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기쁘게 해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정해져 있는 것들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기쁨은 이기적인 기쁨이었고, 그의 사랑은 그를 위한 사랑이었다.
내가 살아온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슬픔을 느낄 때 그는 그녀의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했고, 나의 마음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갈가리 찢어졌지만 그의 관심은 그 동사자 위에 내리는 눈에 온통 가있어 동사자에게 가마니 한 장 조차 덮어줄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에게 슬픔을 느끼기보다, 그의 입 안 가득한 음식으로부터 느껴지는 행복이 더 중요한 사람. 삶 속에서 지친 부모를 보살피기보다, 부모에게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의 마지막 기쁨까지 느끼려 발버둥을 치는 사람.
나의 슬픔은 그의 기쁨이 무시하는 것들로 인해 더욱 가중되었다. 내가 그의 곁에 있을 때 나는 그저 그의 감정이 무시한 다른 것들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쓰레기통에 불과 했다.
그의 기쁨은 순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어서, 그것이 나의 슬픔을 중화시켜 주지 못했다.
나는 전에 보지 못했던 그의 기쁨에 잠시 앞에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지, 결코 그의 기쁨에 섞여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이제 그에게도 슬픔을 주고 싶다.
그가 느끼는 기쁨보다, 사랑보다 더욱 소중한 슬픔을 주고 싶다.
나의 슬픔이 길가의 한낱 미물에게까지 평등한 얼굴을 보일 때, 세상 곳곳의 어둠 속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때, 오로지 자신을 위해 웃어보였던 그를 위해. 무관심한 그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그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그에게도 기다림을 주고 싶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고,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내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그와 함께 걷고 싶다.
그와 함께,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고 싶다.
(원작: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