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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06. 2019

한밤중 다툼 후엔 포도주






  친구와 싸웠다. 파리의 숙소에서. 그것도 밤 열 시에.

  싸움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이나 말싸움을 벌였다. 서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사과도 했다. 요약하니 참 깔끔한 과정이다.  

  하지만 싸움은 싸움이다. 어떻게 화해를 했든지 간에 당장 깔끔해질 리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와 친구는 싸웠다. 마이너스 감정을 쌓아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누구와 여행을 함께 가는가. 내 기준은 단순하다. 싸우고 화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루나 이틀의 짧은 여행이라면 싸우지 않고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사흘이 넘어가고 일주일이 되어가는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취향이 비슷해도 일행과 불만이 생기게 되어 있다. 뇌가 텔레파시로 이어져 있어도 그럴 터다.  

  처음 여행을 할 때에는, 일행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싫었다.  

  서운한 일이 생겨도 참았다.  

  내 쪽에서 좀 더 참고, 상대방에게 맞추어주면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참으며 여행했던 사람들 중, 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여행에서의 감정은, 여행지에서 정리하고 와야 했었다.

  “… 술 한잔하러 나갈래?”






 




  친구가 어색한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여름, 파리는 해가 늦게 졌다. 밤 열 시를 넘기고서야 어둠이 깔렸다. 나와 친구는 숙소 근처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낮에는 한적하던 식당 안이 늦은 저녁과 술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파리 사람들은 술을 즐긴다. 한국보다 술을 많이 소비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한 곳이 프랑스다. 전통적으로는 와인이 강세다. 파리를 여행하다 보면 이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식당마다 술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내 오는 것이 와인이었다. 그다음이 칵테일. 맥주는 가장 나중에서야 명단에 올랐다. 이렇든 와인 사랑이 확고하고, 유럽 전역에서 맥주 소비량이 28위밖에 되지 않는 프랑스지만 여기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수제 맥주의 유행과 함께 맥주 시장도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와인과 맥주. 이론적으로는 맥주가 주가 되는 곳을 브라스 리 brasserie, 와인이 주가 되는 곳을 비스트로 bistro라고 한다. 나와 친구가 밤에 찾아간 식당은 명실상부 비스트로였다. 파리의 식당들 중에는 저런 분류와 상관없이 와인과 맥주, 칵테일을 모두 취급하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그 식당에는 오직 와인뿐이었다.  

  나는 메뉴판을 펼쳐 들고,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친구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친구는 여행 중에 술 자체를 즐겨하지 않았다. 여행의 자유 중 하나가 한낮에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행 중에까지 굳이 술을 마셔야 하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내가 전자라면, 친구는 후자였다. 그나마 친구가 마시는 건 맥주 한 캔, 딱 그 정도였다.

  “다른 데로 갈까?”

  “왜? 좋은데. 안 하던 싸움 후에 마시는 안 마시던 술.”

  친구의 너스레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보들레르가 그랬었던가.

  술과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화해하는 사이좋은 투사와 같다고. 

  진 쪽은 이긴 쪽을 포옹한다고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도 그와 같을지도 모른다. 싸우고,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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