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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3. 2019

파리를 닮은 맛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그 나라의 전통 요리를 하나쯤은 꼭 먹어보려 하는 편이다. 

  그것은 복합적인 재미를 준다. 맛뿐만이 아니다.   그 음식을 먹는 특유의 방법, 음식을 파는 곳 고유의 분위기, 그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 등 식당 하나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많다. 다행히 나는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는 편이다.

  프랑스의 도시들 중 파리는 ‘모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자 가장 프랑스다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귀족 계급이 몰락했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귀족들의 요리사들은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레스토랑을 열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요리를 선보였다. 식탁 위에도 민주주의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지에서 겪는 딜레마가 하나 있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때문에 쫓기듯이 여행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몸을 긴장시키고 아무리 여유로운 시간도 빠듯하게 만든다. 

  그래도 유명하다는 음식은 한번 먹어보고 싶다. 그런 상반된 마음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파리에서는 절충안을 택했다. 식당 딱 한 곳만 찾아가기로.  

  그렇다면 파리에서는 에스카르고를 먹자.  

  18세기경 프랑스 왕정 시대에,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의 골칫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달팽이였다. 부르고뉴 달팽이가 포도나무의 잎을 먹어도 너무 먹어댔던 것이다.  

  그러기에 나온 묘책. 잡아서 먹어 버리자! 어디까지나 이랬을 수도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지역 민담일 뿐이다. 하지만 부르고뉴 지방의 달팽이들이 19세기부터 레스토랑의 고급 식재료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요리법이 정착된 것은 1814년, 당대의 유명 셰프인 앙투안 카렘이 레시피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에스카르고를 먹을 식당으로는 ‛르 프로코프’를 골랐다. 이곳에는 나폴레옹 1세가 외상값 때문에 맡겨 놓았다는 모자가 전시되어 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수고는 감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식전 빵에 칵테일. 에스카르고와 뵈프 부르기뇽, 디저트로는 수플레와 티라미수. 가게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달팽이 여섯 마리가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난감해졌다. 달팽이 껍데기 안에서 달팽이를 꺼내는 건 초보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둥그런 달팽이 껍데기는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헬프 유 Help you.”

  옆자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던 노부인이 내 자리로 왔다. 그녀는 직접 달팽이 한 마리의 속살을 꺼내 보였다. 내 손에 집게와 포크를 돌려주더니, 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녀가 했던 것을 떠올리며 달팽이를 들어 올렸다. 노. 노. 노부인이 내 손을 잡고, 집게 잡는 법을 고쳐주었다. 엄숙하고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한 번에 쏙, 달팽이 속살이 빠져나왔다.

  “땡큐, 메르시.”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무뚝뚝했다. 그리고 친절했다.

  낯설지만, 그 향과 맛에 익숙해지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입안을 풍부하게 해주는 에스카르고의 맛은 그런 파리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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