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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0. 2019

손에 남은 온기를 쥐고

  



  지갑이 없어졌다.

  방금까지 모든 게 좋았다. 덴덴타운에 가던 중이었다. 점심때가 되어가니 배가 고팠다. 가는 길에 구로몬 시장이 있었다. 잠깐 들러서 점심이라도 먹고 갈까.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 한쪽에 위치한 장어덮밥집은 양도,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게 딱 좋았다. 밥을 먹고 나오니 원두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지갑을 꺼내려했다.

  그런데 지갑이 없었다. 가방 곳곳을 아무리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지갑에 든 돈이야 얼마 되지 않고, 카드는 정지시키면 된다. 머리로는 애써 침착하게 생각해도 당장의 충격에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다.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 앞에 섰다.

  “이거 놓고 갔어.”

  장어덮밥집 주인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의 손에 들린 내 지갑이 보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머릿수건까지 그대로 쓴 채였다.

  “멀리 안 가서 다행이네.”

  그러고는 내 손에 지갑을 쥐어주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황급히 아주머니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천만에. 여행 잘해요.”

  아주머니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셨다.  

  점심시간대라 바쁘셨을 텐데. 지갑을 찾아주러 일부러 나오다니.

  그 뒷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저런 사람이 있는 시장을 그냥 나가고 싶지 않아 졌다.  

 
 





  


  구로몬 시장 구경을 시작했다.

  구로몬 시장이 정식 시장이 된 것은 메이지 35년, 1902년이었다. 백 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문호 중 한 명인 오다 사쿠노스케의 소설 『부부 단팥죽』에도 구로몬 시장이 나온다.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물씬 나는 골목. 오다 사쿠노스케는 구로몬 시장을 그렇게 표현했다.

  구로몬 시장은 규모가 크진 않다. 아케이드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시장에는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뒤섞여 북적거렸다.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과 반찬 가게들이 주를 이룬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면 몇 종류 사갔을 텐데. 반찬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가리비 꼬치와 주스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서성거렸다. 벚꽃무늬 손수건과 아기자기한 장식이 달린 머리핀을 샀다.

  시장의 골목 끝, 토토로가 서 있었다. 고소한 빵 냄새가 토토로 주변을 맴돌았다. 배는 이미 빵빵한데도 냄새에 이끌려 빵집에 들어갔다.  

  작은 빵집 안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작은 샌드위치와 토토로를 닮은 빵을 샀다.  

  손에 옮겨 온 빵의 온기. 지갑을 전해주던 아주머니의 손도 그렇게 따뜻했다.  

  아마 나는 이 시장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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