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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7. 2019

시타마치에서, 따듯한 말 한마디


  “신호가 바뀌는 동안만이라도, 같이 써요.”

  양산 아래 얼굴이 웃었다. 보라색 꽃이 그려진 하얀색 양산. 생각지 못한 친절함이었다. 

  시타마치 산책에 나선 날이었다.

  늦은 아침, 아사쿠사 근처에 잡은 숙소를 나왔다. 아사쿠사는 시타마치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다. 가미나리몬에서 호조몬 까지 이어지는 300미터의 참배 길을 나카미세라고 하는데,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상점가다. 나는 잠시 나카미세로 들어갔다. 멜론 빵 하나를 사 덥석 물고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사쿠사가 아니었다. 야네센이다.

  야나카. 네즈. 센다기를 묶어 야네센이라 부른다. 

  이중 가장 유명한 마을이라면 야나카 긴자일 것이다. 이 마을은 ‘고양이 마을’이라는 애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상점가가 침체기를 겪기 시작하자, 도쿄예술대 학생들이 곳곳에 고양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부터 길고양이가 많던 동네였다. 그에 맞추어 상점에도 고양이 장식이 늘어났다.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먹거리들도 속속 만들어졌다. 고양이 그림과 상품이 가득한 거리에서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고양이 마니아들의 천국과도 같은 마을이 된 것이다. 

  아쉽게도 방문객이 늘면서 길고양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게 돼버렸지만 말이다. 내가 빙수 한 그릇을 다 먹고, 고양이 꼬리 도넛을 손에 들고 상점가를 빠져나올 때까지도 고양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야나카 긴자의 상점가를 지나 센다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점가에 복작이던 사람들은 골목 하나를 지나자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수국이 핀 골목길은 한적했다.  

  골목길 곳곳에 작은 카페와 이발소가 숨어 있었다. 집의 담벼락은 낮았다. 창문 밖으로 햇빛에 말리려 널어놓은 이불의 색이 선명했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네즈 신사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6월 말, 도쿄의 햇살은 따가웠다. 양산이든 모자든 가져올걸. 후회를 하며 멍하니 횡단보도 건너편을 봤다.  

  란도셀 ランドセル 을 맨 초등학생이 폴짝폴짝, 언제 신호가 바뀌나 기다리는 듯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깜짝 놀라 옆을 봤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노부인이 서 있었다.  부인의 고운 양산이 내 머리로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주었다.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너는 동안, 노부인은 그렇게 자신의 그늘을 나누어주었다.

  나와 노부인은 횡단보도를 건너 꾸벅, 서로 목례를 나누었다. 노부인은 상점가의 카페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노부인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시타마치下町. 말하자면 서민 동네다. 에도 시대 때부터 도쿄는 부유층이 사는 동네를 야마노테, 서민들이 사는 동네를 시타마치라 불렀다. 시타마치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면이 있지만 ‘에도 시대의 모습과 풍물을 간직한 서민적인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쿄에서 이 ‘시타마치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다. 아마존 서점에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타마치 여행에 대한 책도 몇 권이나 나와 있었다. 어떤 곳이기에 인기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도쿄에 갈 일이 있으면 하루쯤, 시간을 비워 시타마치 산책을 해보자 생각했었다.

  ‘그렇구나. 다들, 그리워하는 건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어.’

  네즈 신사로 향하며, 나는 괜히 머리 위로 손차양을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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