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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06. 2019

할머니의 사과 사탕

  

  웨이하이의 시골 마을, 웨이웨이巍巍村에 간 건 해초방을 보기 위해서였다. 해초방은 말린 해초로 지붕을 덮는 웨이하이의 전통 건축양식이다. 중국에서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에 한 번쯤 꼭 보고 싶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드디어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이어지는 긴 밭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집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구멍가게였다. 슈퍼마켓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옹색했다. 구멍가게 앞에 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느닷없는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골목길 끝에 자리 잡은 집 앞, 작은 텃밭에 재래식 작두펌프가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시골집 마당에 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 집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데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매달려 온 몸으로 손잡이를 눌러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서너 번 만에 물을 끌어냈는데 어린 내 눈에, 그건 어떤 마법보다도 멋져 보였다.  

  슬쩍 펌프의 손잡이를 눌러보았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안 되는구나. 걸음을 돌리려는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집 밖으로 나오셨다. 나는 흠칫 굳었다. 혼이 나려나. 어색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내 쪽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타박타박 걸어오셨다.

  마법이 일어났다.




  


  


  펌프에서 울컥 솟아오른 물이 텃밭의 흙을 적셨다. 내 입에서 저절로 우와, 소리가 튀어나갔다. 할머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 번 더 펌프질을 하셨다.  

  나는 펌프 끝에서 떨어지는 물에 손을 대 보았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내 등을 뻣뻣하게 만들고 있던 긴장을 적셔 나갔다.

  물줄기가 멈췄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자는 듯, 손짓을 해 보이셨다. 나는 망설이다 할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망설임 속에는 낯선 사람을 쉽게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상식이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집 대문 문턱을 넘었던 건, 그때까지도 물방울이 손톱 아래 맺혀 마음을 간질이고 있어서였다.

할머니는 마당 한쪽에 놓인 커다란 포대기를 풀었다.  

그러더니 비닐봉지 안에 척척, 포대 안에 든 것을 옮겨 담았다.

사과였다.

할머니는 비닐봉지를 내 품에 쑥 안겼다. 함박웃음을 띤 얼굴로 사과를 베어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엉겁결에 사과를 품에 안은 채 꾸벅, 허리를 숙였다.  

할머니는 내가 입은 옷을 툭툭 건드리며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곤 무언가 말씀하셨다. 나는 중국어를 모른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목소리 톤과 손짓까지 친할머니가 그렇게 말할 때와 똑같았다. 나중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일행분이 오셔서 몇몇 말을 통역해주셨다.  

  내가 할머니의 손녀딸과 참 많이 닮았다는 거였다.  

  할머니는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내내 손을 흔드셨다.  

  버스에 올라타 마을을 떠날 때 문득 알았다. 

  할머니가 안겨주었던 사과는 사탕이었다. 우리네 할머니들은 처음 본 아이 손에 사탕을 쥐어주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변변한 가게가 없는 시골에서, 그 사탕을 사과가 대신했던 거다.

  사과 사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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