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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01. 2024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날

카티의 행복 Happiness Of Kati : 코코넛 빵



친구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 전철은 적막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문득 떠올렸다.

처음 장례식에 갔던 날이 언제였더라, 하고.

어렴풋한 기억은 어릴 적으로 돌아갔다. 열 살 때쯤이었다. 친척 아저씨의 장례식장. 상복을 입은 어른들 사이에 어색하게 껴 있던 기억이 났다. 어른들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장례식에 만연한 슬픔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에도 확실하게 죽음이 무엇인지, 장례식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을 하느라, 주변 어른들의 기대에 맞추어 슬프지 않은 척을 하느라 더 힘들었다. 

어린아이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카티의 행복』의 주인공 카티. 본명은 ‘나까몬 폿짜나윗’ 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카티라고 불린다. 코코넛을 으깨서 만드는 달콤하고 하얀 즙의 이름이기도 한 카티. 이것은 주변 사람들이 카티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보여주는 호칭이다. 카티는 태국 사람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존재’ 이기 때문이다. 

코코넛은 열대 지방인 태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나무로, 코코넛 밀크는 태국에서 단맛, 쓴맛, 짠맛, 신맛 중 단맛을 담당하는 재료로 꼽힌다. 때문에 태국에서 요리를 배울 때에도, 코코넛 과육을 짜는 법부터 배운다. 과육을 물에 짜 거르면, 코코넛 밀크가 된다. 

처음 태국을 여행했을 때, 나는 이 코코넛 밀크에 푹 빠졌다. 길거리 어디에든 코코넛 밀크로 만든 간식거리들이 널려 있었다. 혀에 닿자마자 단 맛이 확 올라오는 설탕과 달리,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음식들은 목 아래를 통과하고 나서 서서히 올라오는 단 맛을 가지고 있었다. 설탕이 뜨거운 단맛이라면, 이쪽은 서늘한 단맛이랄까. 더운 태국의 날씨와, 코코넛 밀크의 단맛은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은 단연 코코넛 밀크 음료와 아이스크림이었다. 빵 중에서는 ‘카놈 크록(Khanom Krok)이라 불리는 코코넛 빵이 으뜸이었다. 코코넛 밀크를 둥그런 구움 틀에 채워 넣고 동글동글 굴려가며 굽는 빵이다. 우리나라의 호두과자나 일본의 타코야끼를 굽는 듯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구워지는 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카티의 행복』 에서 마을 사람들은 코코넛 젤리를 만든다. 카라마(Kalamae)라고 불리는 태국식 캐러멜이다. 새해나 축제 등 기념일에 많이 먹는 디저트로, 태국 남쪽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이다. 카티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아유타야는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곳 중 하나로, 소설 속에서는 송크란을 대비하기 위해 이 캐러멜을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모여 앉아 코코넛을 깎는다. 카티는 코코넛을 깎는 것을 ‘토끼 깎기’라고 부르는 이유를 궁금해하면서, 카놈똠(Ka Nom Tom)을 먹는다. 동글동글한 찹쌀가루 반죽 안에 카라마를 넣고, 겉에 다시 코코넛 가루를 묻혀 만드는 떡이다. 그날 만든 코코넛 젤리를 넣어 만든 떡의 맛은 각별하지 않았을까. 

커다랗게 뜬 둥근달을 보면서, 안과 밖 모두가 코코넛으로 이루어진 흰 떡을 먹는 카티. 카티는 ‘토끼 깎기’를 궁금해하면서 달에 사는 토끼를 떠올린다. 그리고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가 있는 곳에도 달은 뜨겠지, 하고. 

카티의 엄마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카티를 낳아 기르면서도, 카티의 엄마는 한 번도 카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병에 걸려,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어 가면서도 카티와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그 애정이, 카티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카티를 자신의 부모님에게 맡기는 선택에 동의한다. 본인의 그리움보다, 딸의 안전이 중요하기에.

달콤함을 상징하는 과일즙의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 카티.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온 카티의 매일은 그리움으로 차 있다. 주변 어른들은 그런 카티의 삶이 달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카티의 어머니를 대신해 카티를 돌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카티의 아버지처럼 모든 걸 챙겨주는 쿤 아저씨, 늘 카티와 함께 놀아주는 동네 오빠 통. 그들은 카티가 겪게 될 슬픔을 미리 알고 있기에, 카티를 카티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쓰고 힘든 일이 닥쳐도, 달콤한 이름을 가진 아이답게 버텨내라고 말이다.

코코넛을 깎는 것이 왜 ‘코코넛 깎기’라고 불리는지는 알 수 없어도, 카티는 코코넛을 깎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카티가 이해하지 못해도, 카티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카티는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한다. 카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어째서 엄마가 죽은 후에야 엄마가 좋아하던 하늘 꽃이 꽃을 폈는가 하는 것이다. 카티는 꽃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계속 꽃을 바라보다가, 그리움을 긍정하게 된다.

카티의 어머니는 카티를 위한 미션을 준비해 놓았다. 카티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 때, 카티와 어머니가 단 둘이 살았던 도시의 아파트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카티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것 역시 그리움으로 바꾸어 차곡차곡 가슴에 쌓는다. 그리움이 언젠가 달콤함으로 바뀌어, 앞으로의 날도 버텨낼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때로는 나와는 만난 적 없던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삶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가끔은 그 그림자 안에 갇혀서, 나올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질책하지 말자. 그림자에서 나오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모두가 다르다. 누군가에게 왜 그렇게 긴 시간,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냐는 질책도 하지 말자.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죽음을 이해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그리움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그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필요한 것은 누군가 건네주는 달콤한 위로일 것이다.

겉에도 안에도 달콤한 코코넛으로 가득한 카놈똠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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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귤한 표지의 단편집!! 

찬바람 불 때 따뜻한 이불 안에서 귤 까먹으며 읽어도 딱 어울리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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